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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세계 농약·종자산업 재편…미·중·독 과점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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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농업권력 구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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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종자기업 몬샌토의 유전자변형작물 콩 ‘라운드업 레디 2’를 재배하는 미국 일리노이주의 한 농장. 몬샌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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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사상 최악의 대기근이 중국을 덮쳤다. 학자들은 이 기간 동안 굶어죽은 사람이 2000만~45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 정부 공식 통계에 기록된 숫자만 해도 1500만명이다. 2008년 생존자 증언과 각종 자료를 토대로 당시의 참상을 폭로한 홍콩의 한 작가는 사망자 수를 3600만명으로 추정했다.

이 시기에 대홍수나 가뭄 같은 자연재해가 중국을 덮쳤기 때문일까? 아니었다. 원인은 놀랍게도 참새 소탕 작전이었다. 당시 중국은 대약진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산업화를 위한 총동원 정책을 펼치던 중이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배고픔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식량이 충분하지 못했다. 식량을 약탈해 가는 주범으로 참새가 지목됐다. 당국은 참새만 없다면 수십만명분의 일년치 식량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억마리가 넘는 참새를 소탕하는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오히려 식량 부족 사태는 더 심해졌다. 천적인 참새가 사라지자 해충들이 마음껏 활개를 쳤다. 중국 정부는 뒤늦게 땅을 쳤지만, 이미 숱한 인민들이 굶어죽은 뒤였다.

2050년 지구촌 인구 100억 육박
세계 식량 수요 70% 증가 예상
종자·농약·GMO 시장 놓고
농화학 대기업들 주도권 다툼

듀폰-다우, 합병으로 선수 치자
중, 농약 1위·종자 3위 업체 매입
바이엘은 ‘종자 1위’ 몬샌토 인수
미·중·독 3사가 시장 60% 장악

농민들, 거대기업 종속 심화 우려
힘의 불균형이 식량 불안 키우나


중국이 마침내 뿌리깊은 식량 트라우마를 떨쳐내려는 것일까? 농약과 종자, 유전자변형작물(GMO)을 둘러싼 세계 농업 시장에 중국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이 세계 농화학산업의 지형을 바꿀 기업 인수합병 전쟁에 뛰어든 것. 중국 기업이 포함된 초대형 거래 3건이 잇따라 성사되거나 성사를 앞두고 있다. 합병이 최종적으로 성사되면 중국은 미국, 독일과 함께 세계 농업 권력을 거머쥐게 된다. 주인공은 중국의 켐차이나(중국화공집단)와 미국의 다우케미컬, 독일의 바이엘이다.

단연 관심을 끄는 건 중국 쪽의 움직임이다. 중국 최대 국영 화학기업 켐차이나는 스위스의 농약·종자 대기업 신젠타를 먹잇감으로 삼았다. 신젠타는 세계 1위 농약 생산업체이자 세계 3위 종자기업이다. 켐차이나는 6월 현재 신젠타 주주의 95%로부터 동의를 받아내 사실상 합병 승인에 필요한 절차를 마무리했다. 중국은 이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역대 해외 기업 인수합병 중 최대인 430억달러(49조원)를 쏟아부었다.

중국 정부로선 이번 거래가 갖는 의미가 자못 크다. 만성적인 식량 적자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미래 식량 안보의 든든한 원군을 확보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식량 부족은 중국 정부가 1970년대 초반 인구 억제책을 도입하기 시작한 주요 배경이기도 하다. 경작지 부족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중산층이 급증하면서 고기와 유제품 생산을 위해 농경지가 속속 목축지로 바뀐 탓이 크다. 코트라 보고에 따르면, 1978년과 2012년 사이에 중국의 쌀 재배 면적은 12.5%, 밀은 16.5%나 감소했다. 인구와 1인당 소비가 늘어나면서 중국은 2004년부터 식량 순수입국으로 전환했다. 중국은 현재 세계 1위의 대두 수입국, 세계 7위의 옥수수 수입국이다.

켐차이나의 신젠타 합병은 이런 흐름을 바꿔보려는 전략의 산물이다. 중국 당국이 가장 기대하는 것은 신젠타의 농업기술을 활용해 농업생산성을 크게 높이는 것이다. 특히 신젠타의 유전자변형작물(GMO) 기술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지엠오 옥수수와 대두의 상업적 생산을 허용할 계획이다. 신젠타가 바로 지엠오 옥수수 종자 생산업체다. 중국 정부는 2014년 식량안보를 경제정책의 중점과제로 내세우고, 유전자 변형 식품을 포함한 생명공학 분야 투자 확대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기술을 확보한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중국 소비자들의 마음이다. 중국 소비자 역시 다른 나라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유전자변형작물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 밑바탕엔 정부의 식품안전 정책에 대한 불신이 있다. 중국에선 2008년 멜라민 분유 파동, 2011년 수박 폭발, 2012년 노란색 지엠오 쌀 소동 등 일련의 사건이 이어지면서 불신의 벽이 높아진 상태다. 중국 정부는 6월 중 전국적인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소비자 대응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초대형 인수합병 시리즈의 물꼬를 튼 것은 미국의 화학기업 다우케미컬과 듀폰이다. 2015년 12월 합병을 선언한 두 회사는 올해 3월 유럽연합으로부터 합병안을 승인받았다. 합병이 확정되면 연간 매출 900억달러(102조원)의 세계 최대 화학기업이 탄생하게 된다. 새로 출범하는 통합기업은 세계 농약 시장 점유율 16%를 차지하게 된다.

이들의 인수합병 과정을 들여다보면 기업 생존경쟁의 세계엔 적과 동지, 갑과 을이 따로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세계 최대 종자기업인 미국의 몬샌토가 독일 최대 제약업체인 바이엘에 흡수된 사건이다. 침체의 돌파구를 찾고 있던 몬샌토는 원래 신젠타를 인수하려 했다. 종자업계 1위와 농약업계 1위가 의기투합하면 그야말로 농업분야의 절대 강자가 탄생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협상은 2015년 5월 결렬됐다. 고민에 빠진 몬샌토에 독일의 바이엘이 접근했다. 제약이 주력인 바이엘은 세계 농약시장 점유율 17%로, 신젠타에 이은 세계 2위 농화학기업이다. 두 회사는 세 차례 협상 끝에 지난해 9월 협상을 타결했다. 몬샌토 주식을 바이엘이 660억달러(75조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합병이 성사되면 바이엘은 세계 종자·농약 시장 점유율을 각각 25% 이상으로 끌어올리게 된다. 두 회사는 현재 당국의 합병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몬샌토와 신젠타의 협상이 결렬된 바로 그날, 중국의 켐차이나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신젠타에 손을 내민 것도 이번 인수합병 드라마의 흥미로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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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건의 인수합병이 마무리되면 세계 종자·농약업계는 기존 6개사(신젠타, 바이엘, 바스프, 다우, 몬샌토, 듀폰) 체제에서 3개사(다우-듀폰, 바이엘-몬샌토, 켐차이나-신젠타) 체제로 단순해진다. 합병 후 세 초거대기업의 세계 종자·농약시장 점유율은 각각 60%를 웃돌게 된다.

하지만 농민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전미농민연합은 몬샌토와 바이엘 합병 발표 직후 “거대한 회사가 농업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미래 세대를 위해 허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미 정치권도 독과점 심화는 가격 인상과 실업을 부를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들의 과점체제가 강화되면 농민들은 이들 기업의 종자와 농약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독과점은 또 생산자 시장에서 힘의 불균형을 가속화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의 전통 농업 방식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 병해충에 강한 지엠오와 병해충을 죽이는 농약은 식량이 부족한 개도국이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2050년 지구촌 인구는 95억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100억에 육박하는 인구를 먹여 살리려면 지금보다 70%가 더 많은 식량이 필요하다고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추정한다. 늘어나는 식량 수요와 극심해진 농업 권력의 불균형 사이에서 세계 식량 시장의 불안지수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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