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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기술이 발전할수록 노동자의 입지는 축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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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HERI의 눈] 4차 산업혁명과 노동



한겨레

금속노조 산하 노동연구원이 지난 21일 <디지털 시대 노동의 대응>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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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화가 자본의 독점과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하고 노동권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공정한 전환(Just Transition)이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디지털화로 특징되는 4차 산업혁명은 노동환경에 거대한 위협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노동의 양은 물론 질(숙련)도 위협할 것이다. 하지만 기술변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그 사회의 대응 방식에 의해 달라질 터, 결국 관건은 기술변화에 맞서 노동의 인간화를 이루는 ‘정책적 개입’에 있다.

디지털 기술 변화에 맞서는 노동의 정책적 개입, 대응은 어떠해야 할까? 금속노조 산하 노동연구원(이하 금속연구원)이 지난 21일 <디지털 시대 노동의 대응>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노동의 인간화’와 ‘공정한 전환’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 논의에 노동은 없다

한국에서 디지털화는 무인 자동화로 여겨왔다. 엔지니어와 로봇의 주도, 비정규직 투입 등 외주화는 그 주요한 특징이다. 이러한 노동 배제적 과정은 산업 4.0에 대응하는 노동 4.0을 통해 기술정책을 사회적 아젠다로 만든 독일과 대비된다. 논의 테이블에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해 사회적 공동체프로젝트로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노동사회부가 노동 4.0을 이끌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노동 4.0이란 기술적 측면을 넘어서 새로운 디지털 시대 양질의 노동, 노동의 인간화를 위해 노사정, 학계, 시민이 참여하는 대화의 플랫폼을 의미하는 노동정책적 개념이다. “자본에 휘둘리는 고삐 풀린 산업 4.0이 아니라 합의가 바탕이 되는 조절된 4.0”을 지향하는 시도다.

2010년 벤츠가 노사가 함께 전기차와 고용관계에 관한 프로젝트를 주도한 것, 폭스바겐이 ‘전략 2025’를 발표하면서 향후 2025년까지 노동의 디지털화와 전기차 생산으로 인한 고용감소 효과를 사전 공유하고 대처한 것 등이 모두 이 흐름 위해 있다.

이처럼 독일에서는 노사가 미래의 기술과 경영전략을 공유하면서 고용의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대처한 반면 한국에서는 노조가 회사의 전략에 대한 정보조차 받지 못하는 등 철저히 배제되어왔다. 그러다 보니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노동자의 입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이 현장 노조 간부들 사이에 팽배해졌다.

신자유주의가 주도하는 디지털 경제의 미래는 디스토피아

“한국은 신자유주의가 주도하는 디지털 경제로 그 미래는 ‘렌트사회’가 될 공산이 크다.” 1%에게 자산과 부가 집중되고 99%는 ‘부스러기 사용권’ 정도만 임대형식으로 가지는 사회로 갈 위험성이 크다고 김장호 금속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전망했다. 국가주도, 대기업 중심성이라는 과거 한국의 경제 거버넌스 패러다임이 반복되면서, 디지털화가 급속히 일어나고 있는 몇몇 영역에서는 대기업의 생산성과 수익성은 높아지는데 노동자들은 노동에서 소외, 고용 불안에 떨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 디지털화가 신자유주의 흐름과 결합한 결과라는 것이 토론회에 참가한 연구자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과거 민영화, 자본시장 자유화, 복지 축소와 같은 신자유주의 규범을 무조건 수용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보았던 IMF 시대 논리와 매우 흡사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디지털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기술결정론적, 노동배제적 경향이 지배적인 가운데, 노동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은 그 자체로는 재앙이 될 수도 있지만 선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결국 어떤 사회적 제도, 맥락과 결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쟁력, 노동의 파편화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과거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노동권 강화, 포용성 등을 강조하는 일련의 흐름이 200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러한 흐름이 디지털화라는 변수와 결합하면서 신자유주의의 일방적 강화로 귀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공정한 전환을 위한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디지털 시대 노동의 대응을 위한 실마리는 독일에서 노동 4.0을 만들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4월 방한해 노동 4.0과 4차 산업혁명 국제콘퍼런스에서 발표한 나니엘 부어 독일 튀빙겐대 교수(정치경제학)는 “노사는 사회적 동반자로서 공동결정과 참여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의 도전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와 노동의 인간화를 중시, 직접민주주의 강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노조의 참여와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한 노조총연맹과 산하 노조들, 특히 제조업 사업장 중심의 금속노조가 사회적 합의 과정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또한 노조와 전문가,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노동의 변화에 대해 논의했고, 그 결과는 <노동 4.0> 백서 발간으로 이어졌다. 백서에는 새로운 고용형태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경우 사회보장제도를 제공하는 등의 파생될 문제들에 대한 고민과 대책이 담겨있다.

토론회에 참가한 연구자들도 디지털 시대에는 위협요소와 기회 요소가 공존하는데, 위협요소는 제거하고 기회 요소는 살리기 위한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한국의 구조적 조건이 ‘디지털 전환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유연하고 능동적이고 전개해나갈 역량이 부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디지털 시대 노조의 개입 전략은?

디지털 시대 노조의 정책적 개입을 위한 구체적 전략은 무엇인가? 김성혁 금속연구원장은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 발생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구체적 방안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교대제 개선으로 일자리를 유지 확대하고 완전 무인화가 아닌 인간과 로봇의 협업을 추구해야 할 것을 제안한다. 교육훈련과 재취업에 노조가 개입하고 중소기업이 혁신주체로 설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경제적 풍요를 공유할 수 있도록 소득과 부의 재분배를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도 중요한 과제다. 아울러 이해당사자 간 새로운 거버넌스 구축으로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도 노조의 중요한 개입 전략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장호 금속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더 많은 민주주의가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을 노조의 정책적 개입을 위한 담론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 전략으로는 ‘인간존중 디지털 노동’을 목표로, 일자리 감소에 대한 불안감을 제거하고 노동자와 기업, 사회의 이익을 상호 존중하며, 노동 기간의 손실 없는 고용유지, 전환 비용이 일방적으로 노동자나 지불능력이 없는 기업에 전가되지 않고 공정하게 사회 전체에 분배되어야 한다는 점 등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침 지난 1월 정세균 국회의장이 <디지털 기본산업 경쟁력 제고 및 육성에 관한 기본법>을 발의하면서 이해당사자 거버넌스를 구축해 작업장 공동결정제도와 직접민주주의 확대 등을 모색할 것을 촉구했고 양대 노총도 지지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이라는 우호적 환경 속에서 디지털 시대 노동의 정책개입을 위한 사회적 환경은 서서히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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