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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겨울왕국` 만든 거장 "한국형 애니로 새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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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디즈니서 20년간 활동한 애니메이터 김상진씨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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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칸 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빨간 구두와 일곱 난쟁이'(가제) 광고가 외모 비하 논란에 휩싸이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엔 배운 것이 더 많은 경험이었습니다. 세계를 겨냥한 영화라면 감수성을 비롯해 무엇을 더 고민해야 하는지 깊이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미국 디즈니에서 주토피아, 빅히어로, 모아나 등 흥행 대작들의 애니메이터로 20년간 활약하다가 지난해 한국에 돌아온 김상진 로커스 이사.

그는 수많은 고민 끝에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한국형 애니메이션 '빨간 구두와 일곱 난쟁이'에 중간에 합류하며 캐릭터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인류 보편적 스토리를 담고 있는 이 애니메이션이 칸에서 외모 비하로 곤욕을 치른 건 바로 포스터에 담긴 문구 때문이었다. '백설공주가 더는 아름답지 않고 일곱 난쟁이의 키가 작지 않았다면 어땠을까?(What if Snow White was no longer beautiful and the 7 Dwarfs not so short)'라는 표현이 문제가 됐다.

백설공주 역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클로이 머레츠가 "광고 문구와 달리 영화의 진짜 내용은 어린 소녀들을 위한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일단 수그러들긴 했지만 작업을 맡아온 이들에겐 아픈 지적이었다. 2010년부터 기획된 이 작품은 내년 초 개봉 예정으로 현재 총작업의 30% 정도 진행됐고 스토리도 수정 중이다.

젊은 시절 적록색약으로 미술에 대한 꿈을 접고 경제학을 공부한 김 이사는 오로지 그림에 대한 열정 하나로 애니메이터로는 디즈니에 최초로 입성한 한국인이다. 그는 디즈니에서 캐릭터 작업 전체를 지휘하는 슈퍼바이저까지 맡으며 소위 '최고의 자리'를 경험했다. 한국에서 1000만명을 돌파하며 애니메이션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운 '겨울왕국'도 그의 손을 거쳤다. '라푼젤'은 그가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이렇게 거장의 자리까지 오른 김 이사가 지난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건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도전의 동기를 찾기 위해서였다.

"디즈니에서 오랜 기간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다소 정체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후속 작품으로 잡혀 있는 것들은 대부분 기존에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의 시퀄들이었는데 캐릭터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늘 새로움을 원하죠. 한국에서 새 길을 걷는 게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한번 같이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의 시장 환경이 너무나도 다르지만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근간이 되는 애니메이션 작품이 없었다는 것을 가장 안타까운 점으로 꼽았다.

"이는 관객이 흥미를 갖게 만드는 질 좋은 무언가가 나오지 않았다는 걸 의미합니다. 아마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 될 겁니다. 한두 작품이 큰 성공을 거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고 성공하는 작품이 연달아 계속 나와야 합니다. 변화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빼어난 한국 아티스트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지만 기본기와 창의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경쟁력이 부족한 현실도 꼬집었다. 이는 전 세계 인재가 몰리는 디즈니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부분이라고 했다.

"창의성은 개인이 타고나는 재능이지만, 꼭 이 차이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놀랐던 것은 조직도, 사회도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일을 하던 수십 년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이죠. 인재를 키워내려면 훨씬 더 자유로운 환경이 주어져야 합니다."

그림으로 정규 교육을 한번도 받지 않은 그에게 세계적 애니메이터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을 물어보니 수많은 대가와 다르지 않은 답변이 돌아왔다.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결국 열심히 꾸준히 하게 됩니다. 열정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윤재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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