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8 (토)

"내 스타는 내가 키운다"…팬덤의 진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슈퍼주니어 팬들이 멤버 퇴출을 요구하며 만든 포스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 "성민 OUT" 슈퍼주니어 팬 사이트 중 하나인 온라인 커뮤니티 DC인사이드의 '슈퍼주니어 갤러리'는 지난 10일 '성민 아웃. 더 이상 이성민의 팬 기만행위와 팀을 고려치 않은 독단적 행동을 지켜볼 수 없다. 이성민 퇴출을 요구한다'는 문구가 담긴 포스터를 게재했다. 앞서 이들은 반복된 음주 교통사고를 낸 강인에 대해서도 퇴출을 촉구한 바 있다. 'H.O.T 갤러리'도 지난달 문희준 지지 철회 성명서를 내고 향후 모든 활동에 보이콧하겠다며 다섯 가지 이유를 공개했다.

#2 "저희 단 한 번만 살려주세요."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서 101'의 한 참가자의 호소다. 팬들의 관심 한 번에, 문자 한 통에 애태운다. 팬이자 그들은 곧 자신을 데뷔시켜 줄 '국민 프로듀서'이기 때문이다.

먼발치에 서서 사랑하는 가수의 미소 한 번에 울고 손짓 한 번에 환호하던 팬들이 달라졌다. '팬덤 없이는 인기도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팬클럽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요즘, 잇따른 보이콧으로 팬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교석 문화비평가는 "팬들의 위상 변화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프로듀스 101'이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가 6~7년 계속되면서 시청자들은 방송을 만들어가고 스타를 만들어가는 자신들의 역할에 대한 자각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SNS 발달이 주효했다. SNS로 팬들이 스타 혹은 기획사와 직접 소통할 창구가 생겼고 또 기존의 입소문보다 더 큰 대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차트 수상 비결에는 팬덤의 적극적인 활동이 있었다. 팬들은 방탄소년단이 SNS에 올린 글들을 실시간으로 영어로 번역해 퍼뜨렸고 덕분에 해외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인지도를 쌓을 수 있었다.

매일경제

팬들의 관심을 호소하는 `프로듀스 101`의 한 참가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보이콧의 주축이 되는 'DC인사이드'는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다. 모두가 아무런 제약 없이 볼 수 있는 이곳에 올라온 글들은 실시간으로 이슈화되면서 팬들의 '발언장'이 됐다. 또 팬들은 이곳에서 자유롭게 헤쳐 모여 '조공(팬들이 돈을 모아 스타에게 주는 고액 선물)'이나 보이콧 같은 집단행동을 한다. 스타들 중 몇몇은 이곳에 직접 글을 쓰며 팬들과 소통하기도 한다. 김연수 문화평론가는 "SNS로 인해 팬들과 연예인들이 직접 소통하는 통로가 열렸다. 더 이상 아이돌은 하늘에 떠 있는 스타(별)가 아니다. 그들(스타)이 내게 소중하듯 나(팬)는 그들에게 중요한 존재란 인식을 가지게 됐다. 실제 내가 키우고 지켜줘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기까지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팬의 사랑은 인기고 곧 돈이다. '팬덤' 위상 변화에는 '돈'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사랑에는 조건이 없듯 팬들은 돈에도 아낌이 없다. 일례로 지난달 27·28일 이틀간 콘서트로 EXO가 티켓 매출로만 벌어들인 돈이 77억원에 달한다. '프로듀스 101'의 경우 아직 데뷔하지 않은 아이돌도 팬덤이 생기자 지하철, 시내버스, 영화관 등 곳곳에 투표 독려 광고 등이 붙고 있다. 300만~400만원짜리로 추정되는 이 광고가 서울 지하철 1~4호선에만 30건 가까이 된다. 실제 한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팬들은 굉장히 큰 고객이고 소비자다. 그들과 소통하고 관리하기 위해 소속사마다 팬클럽을 담당하는 부서를 별도로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팬덤의 위력을 자각한 팬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현상은 '아이돌 민주주의'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더 이상 스타와 팬은 갑을관계가 아니다. 이제 팬들은 정치인에게 표를 행사하듯 연예인들의 면면을 살펴 애정을 줄 대상인지를 판단하고 스타의 언행으로 지지하기도 하지만, 지지를 거두기도 한다. 일례로 '프로듀스 101'을 보면 단순히 외모나 실력뿐만 아니라 행동이나 성격 등도 인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연수 문화평론가는 "내 돈과 시간, 그리고 애정을 쏟는 대상인 만큼 기대에 부응하기 바란다"고 설명했다. 이어 "20대와 30대는 촛불 집회 등을 통해 점점 목소리를 내는 방식을 배우고 또 그것이 가져오는 변화를 경험한 세대다. 정치인의 표나 연예인의 인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이나 대중문화계에 이러한 '요구'는 계속 많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연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