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8 (토)

응답 없던 ‘최저임금 1만원’ 주장…세상을 움직인 알바연대 대변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권문석씨 4주기 추모제

경향신문

28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 인근에서 ‘최저임금 1만원’을 처음으로 주장하다 2013년 사망한 권문석 전 알바연대 대변인의 4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이준헌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0대 하청 노동자가 작업 중 전동차에 치여 숨진 ‘구의역 참사’ 1주기인 28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서는 또 다른 추모 행사가 열렸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만들어진 알바연대의 대변인을 맡았던 권문석씨(사망 당시 35세)의 4주기 추모제다. 권씨는 2013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최저임금 1만원”을 주창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비현실적인 얘기라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권씨는 그해 6월2일 아내와 딸을 남겨두고 집에서 심장마비로 돌연 사망했다. 4년이 흘러 ‘최저임금 1만원’이 정치권과 노동계에서 활발히 논의되면서 권씨의 주장과 활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권씨는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청소노동자 김순자 후보가 공약으로 ‘최저임금 1만원’을 제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013년 1월 사회운동가, 알바노동자 등 10여명과 함께 알바연대를 만들면서 ‘최저임금 1만원’을 들고나왔다. 그러나 노동계에서조차도 현실에 맞지 않다며 무관심했다. 최기원 알바노조 대변인은 “당시 권씨는 ‘최저임금 1만원’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논리를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며 “사망하기 전날에도 간담회를 열어 교육과 토론을 했다”고 회상했다.

권씨는 생전에 ‘알바노동자’라는 신조어도 만들었다. 아르바이트생의 준말로 ‘알바생’이라고 불리던 단기 계약직 비정규직 학생들도 엄연한 ‘노동자’라는 점을 주장한 것이다. 이에 더해 ‘알바’가 더 이상 학생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라도 겪어야 하는 고용형태가 됐음을 확인시키는 의미도 있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권씨는 성균관대 재학 중 전국학생회협의회 정책국장을 맡았고, 졸업 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사회당 기획위원장, 진보신당 전국위원 등을 지내며 사회운동가로 살았다. 2010년 1월 서강대에서 열린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에서는 기획단장을 맡아 행사 주최와 기획에 중심 역할을 했다.

권씨가 동료들과 함께 만들었던 알바연대는 현재 알바노조로 성장해 조합원 12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권씨의 ‘이상’은 점차 현실이 돼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권씨의 4주기를 5일 앞두고 28일 열린 추모제에는 권씨의 아내 강서희씨가 딸 도연양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알바상담소 소장으로 일하는 강씨는 “남편은 ‘최저임금 1만원’뿐 아니라 노동인권 문제를 극복하려면 중·고교부터 노동인권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권씨의 누나 은혜씨도 무대에 올라 “저도 비정규 노동직인 대학 시간강사다. 동생을 기억해주시는 젊고 아름다운 분들이 동생이 하던 일을 계속해 줘서 고맙다”며 울먹였다.

생전 권씨와 뜻을 함께했던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와 신희철 희망연대노조 조직국장의 추모 발언도 이어졌다. 알바노조 김진서·현은진씨가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 공연도 열렸다.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