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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북핵공조 파트너 한국에…트럼프 `사드 청구서`로 뒤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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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드비용 내라는 트럼프 ◆

매일경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강경대응으로 일관하며 한반도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막판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비용 청구서를 들이밀었다. 사드 한반도 배치를 놓고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무릅쓰고 철저한 한미 공조를 외쳐 온 한국 정부로서는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열흘 뒤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27일(현지시간) 취임 100일을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느닷없이 '사드 비용은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향후 한미 관계와 대북공조에 상당한 영향을 초래할 전망이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국내외 사드 반대론에 맞서 사드는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필수불가결한 방어수단이며, 관련 비용은 주한미군이 모두 부담한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결국 미국 군수업체의 새로운 무기를 한국이 구매하도록 강요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한국이 일종의 사드 '테스트베드'가 된 모양새다. 안보에 있어서 '찰떡공조'를 주장해 왔던 안보당국도 갑작스러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체면을 구겼다. 종국에는 비용을 떠안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미군의 사드 한반도 조기 배치에 부화뇌동했다는 비판을 피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가능성을 거론하며 긴장 국면을 조성했던 한미 군사당국의 신뢰에도 흠집이 났다.

당장 국내 사드 반대 여론이 다시 비등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한국 정부로부터 1조원이 넘는 사드 비용을 타내려는 의도로 북한의 핵 위협을 과대 포장하고, 대선 이전에 사드 배치를 서둘렀다는 식의 여론몰이다.

사드 배치에 줄곧 반대하며 경제적 보복조치도 불사했던 중국의 입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대선 판도에도 상당한 영향이 예상된다. 이 같은 부작용이 충분히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사드 비용 부담' 카드를 꺼내든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취임 100일을 맞아 자신의 공약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일종의 미국 국내용 전략이라는 분석이 강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취임 100일이 됐지만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최근 며칠 새 트럼프케어 표결을 재시도하고, 설익은 세제개혁안을 발표하고, 보호무역 관련 행정명령을 남발하는 등 초조한 듯한 행보를 보였다. 북핵 문제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사드 비용을 한국에 요청하는 것 역시 세계 각국에 방위비분담금을 인상하겠다는 자신의 대선 공약을 실천하는 일환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 따라서 사드 비용 청구는 궁극적으로 주한미군 분담금 인상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해석은 미국 군수산업을 측면 지원하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국방비 지출과 무기 수출이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또 미국 군수업체는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세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첫 예산안에서 외교·환경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국방예산을 10% 확충했다. 늘어난 예산은 미군 장비 현대화 사업에 대부분 투입할 예정이다. 이들 비용은 미국 군수산업으로 흘러들어간다. 비슷한 시기에 국방부 부장관에 군수업체인 보잉의 부사장 출신 인사를 지명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 내 일각에서는 미국 우선주의를 천명하며 해외 문제 불개입을 선언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내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킨 것이 미국 군수산업 지원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부동산 재벌 출신 트럼프 대통령의 본성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모든 국정 사안을 기업경영의 수익, 비용 개념으로 연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맹의 가치보다는 금전적 유불리를 우선적으로 계산하며, 사드 비용 부담을 거론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는 설명이다.

외교부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유엔 북핵회의와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참석을 위해 방미 중인 상황에서 터진 트럼프의 '폭탄 발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미 간 '물샐틈없는' 공조를 강조한 외교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측과 조율도 없이 "사드 배치 비용을 한국 측이 부담하라고 한국에 알렸다"는 식의 얘기를 함으로써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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