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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Cover Story] 대선공약 보면 `마스크 없는 봄날` 곧 올 것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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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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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세, 4세 남매를 둔 30대 회사원 김 모씨는 일어나자마자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한다. 그의 스마트폰에는 기상청 예보 수치 외에도 미세먼지 애플리케이션이 3개나 깔려 있다. 김씨는 "큰 아이가 약한 천식이 있고, 둘째도 호흡기가 약해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면서 "PM10까지는 나오지만, 초미세먼지인 PM 2.5 수치는 나오지 않는 적도 많아 크로스 체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세먼지가 나쁨인 날에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거나 마스크를 씌우고 본인도 마스크를 챙긴다. 김씨는 "마스크를 쓰고 다닌 날은 확실히 나은 것 같은데, 정말 도움이 되는 건지 심리적 효과일 뿐인지는 잘 모르겠다"며 "아이들을 밖에 내보내지 않는다 해도 집안 공기가 더 나쁜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 50대 자영업자 이 모씨는 가족들에게 부쩍 서운함을 느낀다. 호흡기가 좋지 않아 공기청정기를 구입하자고 했더니 가족들이 본인들은 아무렇지 않다며 흘려듣고만 있어서다. 이씨는 "별 일 아닌데 나만 유난을 떠는 것 같지만 정말 심각하다. 왠지 몸이 안 좋고 짜증이 난다 싶으면 미세먼지가 나쁨이더라. 내가 '인간 미세먼지 예보기'가 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호소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가게를 찾은 손님 10명 중 7~8명이 밭은 기침을 해댄다. 단골들을 위해 유자차와 생강차를 비치해 놓았지만 미세먼지에는 소용이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는 "마땅한 대책도 없고 이게 10년 20년 몸 속에 계속 쌓인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서 잠도 안온다. 가족들이 괜찮다며 마스크를 할 생각도 안하니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금 같은 미세먼지 농도가 몇 년만 지속되면 호흡기 환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겁니다. 다른 관련 질환들도 급증하겠지만, 미세먼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야 밝혀지겠죠. 지금 당장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이러다 정말 큰일납니다."

국내 종합병원 한 호흡기질환 전문의의 말이다. 위중한 환자들이 많이 찾는 대형병원 특성상 아직 미세먼지로 인한 환자 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몇 년 후가 걱정이라고 했다. 일부 전문의들 사이에서는 현재로선 유일한 대책이나 다름없는 마스크 착용과 관련해 '무용론'도 나온다. 불안한 소비자들이 마스크와 공기청정기 등을 구매하며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은 채 개인적으로 대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장재연 아주대 의대 교수는 "마스크나 공기청정기 등은 특수한 상황에서 잠시 사용하는 것이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 심장·폐질환 환자, 산모들은 의사의 상담을 받고 착용해야 한다. 일반인도 호흡이 불편하면 즉시 벗어야 한다"면서 "미세먼지 같은 환경 문제는 개인적인 대비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고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미세먼지의 원인 파악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가 지난달 국내 미세먼지의 '국외 영향'이 최대 86%에 달했다는 분석 보고서를 내고 사실상 중국을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원자료(raw data)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작년에는 고등어를 미세먼지 주범으로 지목하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최근에는 홈페이지에 게시한 백령도 미세먼지 수치 중 1년6개월 분량에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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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발표하는 미세먼지 지수를 못 믿겠다는 사람들은 스스로 정보를 찾아나서고 있다. 시민단체들도 적극 대응에 나섰다. 환경연합은 최근 미세먼지 특별위원회를 꾸리고 중장기 대책 마련을 고민하고 있다. 10만명 청원운동에도 나섰다. 차기 대통령 임기 내인 2022년까지 초미세먼지 농도를 연평균 15㎍/㎥까지 낮추자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대통령선거일 전날인 다음달 8일까지 '미세먼지 안녕'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서명을 받고 전국 지자체 단체 회원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오프라인 서명을 함께 진행한다.

미세먼지를 걱정하는 민심을 잡기 위해 대선후보들도 앞다퉈 관련 공약을 내놨다. 환경연합은 미세먼지 개선을 위한 7대 제언을 하며, 문재인·안철수·심상정 후보의 관련 대책을 비교평가했다. 환경단체들이 미세먼지 대책의 구체적 방안으로 제안한 것은 △미세먼지 관리 기준을 WHO(세계보건기구) 권고기준 잠정목표 3단계로 강화 △대기환경보전법을 수도권대기환경특별법 수준으로 강화 △석탄화력발전소 축소 및 신규 계획 중단 △자동차 교통수요관리 정책 강화 △어린이, 노인 등 취약계층 미세먼지 별도 기준 및 대책 수립 △산업 부문의 에너지 수요관리와 재생에너지 확대 △동북아 공동연구를 통한 대기오염 상호영향의 과학적 규명 등이다.

환경연합은 대통령후보 환경정책 평가와 관련해 논평을 내고 캠프별로 보완해야 할 점을 제시했다. 대선국면에서 미세먼지 정책경쟁의 포문을 연 것은 '마스크없는 봄날'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안철수 후보다. 환경연합은 당진 에코파워 석탄발전소 신규 승인 취소와 미세먼지 고농도 시기인 11월부터 4월까지 석탄발전소 가동률을 70%로 낮추겠다는 공약을 높게 평가했다. 다만 자동차, 산업, 생활주변 오염물질 발생량을 줄이는 장기 저감대책이 없는 것은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문재인 후보의 공약은 지금까지 제시된 모든 대책을 망라했지만, 합리적 공약의 틀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임기 내 미세먼지 배출을 30% 감축하겠다는 정책목표를 제시하고 석탄발전과 관련해서도 가장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자동차 교통 수요관리 정책이 전혀 없이 경유차 퇴출과 친환경차 확대만 언급한 것과 재정낭비 여지가 있는 공약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환경연합은 지적했다.

심상정 후보의 미세먼지 관련 공약은 실현 가능한 재원 확보 방안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지언 환경연합 미세먼지특별위원회 국장은 "어느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좋은 공약을 벤치마킹해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기를 바란다" 고 말했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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