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8 (토)

"문화 공약 사라진 이상한 大選… 황당할 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문학비평가, 시대를 評하다] [3] 김종회 경희대 국문과 교수

"대선 후보 문화 인식 검증 필요

한국문학 번역하는 외국인에게 집필실 제공하는 정책 내놨으면

논술 폐지? 오히려 강화해야… 답안 요령만 가르치는 게 문제"

김종회(62) 경희대 국문과 교수는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과 한국비평문학회장을 맡고 있다. 1988년 비평가로 등단해 아홉 권의 평론집을 냈고 문학관 건립에도 적극 참여해왔다. 경기도 양평의 소나기 마을(황순원 문학관)과 경남 하동의 이병주 문학관 건립을 주도했다. 북한을 비롯해 재외 동포 문학을 아우르는 '한민족 공동체 문학' 연구도 이끌어왔다. 기독교 신자로서 최근 산문집 '기독교 문학과 행복한 글쓰기'(바이북스)를 펴내기도 했다.

조선일보

김종회 경희대 교수는 "요즘처럼 현실이 어지러울 때는 '정치는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는 소설가 이병주 선생의 말씀이 자주 떠오른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통령 후보 토론회를 어떻게 봤나.

"후보들에게 특별히 '창의적 유머'를 보여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유머 감각이 없는 정치인은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대인(大人)의 여유를 보여달라. 후보들이 '당신의 생각도 옳다. 다만 이런 문제가 있지 않으냐'는 화법으로 토론하길 바란다. 안창호 선생은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그대가 먼저 건전한 인격이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대선 후보들의 구호는 어떤가.

"문재인 후보의 '나라를 나라답게, 든든한 대통령'은 대세론을 내세우지만, '안보 불안'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의 '국민이 이긴다'는 국민을 설명할 '새 정치의 수사학'이 허약하다. 홍준표 후보의 '지키겠습니다 대한민국'은 과거의 보수적 가치와 현재의 서민을 통합할 언어가 부족하다. 유승민 후보의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보수의 새 희망'은 경제와 안보 이외엔 다른 전망을 찾기 어렵다. 심상정 후보의 '노동이 당당한 나라, 내 삶을 바꾸는 대통령'은 다른 진영의 마음을 견인할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김종회 교수는 "이번 대선에선 문화 정책에 대한 공약이 보이지 않는다. 황당할 뿐이다"라고 했다. 김 교수는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을 엉뚱한 사람들이 손대는 일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대선 후보들의 문화 인식도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 주자들에게 문화·교육정책의 아이디어를 준다면….

"한국 문학을 번역하는 외국인에게 집필실을 제공하는 '번역가 레지던스'를 세워달라. 독일과 프랑스에선 이미 운영 중이다. 한강의 소설을 영역한 데버러 스미스가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외국인 학생의 하숙집에서 더부살이했다고 하더라. 대학 교육에선 교양과목의 90%를 시간 강사에게 맡기는 풍토부터 뒤집어야 한다. 교양과목은 인생 경험이 많은 교수가 가르치면서 인성 교육도 하는 게 옳다."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똑같이 논술 폐지를 주장한다.

"논술 제도는 고치긴 해야 하지만 폐지할 게 아니라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 미국 대학처럼 수험생의 '에세이 쓰기'를 주요한 평가 자료로 삼아야 한다. 현재 사교육은 논술 답안 쓰는 요령만 가르친다. 앞으론 공교육이 정신 교육의 차원에서 글쓰기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기독교 신자로서 최근 정치의 메시아주의를 어떻게 보나.

"기독교의 메시아주의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출발해서 저 높은 천국을 제시한다. 대선 주자들도 국민 입장에서 합리적 상식에 기반을 둔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요즘 생각나는 문학 작품이 있나.

"이병주 선생이 남긴 한국 근현대사 3부작 소설('관부 연락선' '지리산' '산하')이 떠오른다. 일제강점기부터 제1공화국까지 시대상을 고통스럽게 되돌아본다. 이 소설 속 지식인들의 실패는 격동하는 시대에 대한 준비가 없었기에 예정된 것이었다. 이병주 선생은 "정치란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란 격언을 자주 언급했다. 그렇기에 같은 빨치산을 다뤄도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계급적 시각을 반영했다면, 이병주의 '지리산'은 인간애의 관점을 보여줬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