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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새 대통령이 재벌개혁 못할 땐 큰 위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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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부-재벌 중심’ 박정희 체제

이제는 경제 발전 ‘걸림돌’ 신세

“재벌개혁으로 박정희 체제 극복해야”


한겨레

왜 지금 재벌 개혁인가-박정희 개발체제에서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로
박상인 지음/미래를소유한사람들·1만4000원


“굿바이 박정희!”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에서 가장 큰 성과는 ‘박정희’가 비로소 과거형이 된 것이라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박정희는 1970년대 산업화 성공의 대명사로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이윽고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에 이르렀지만,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이제는 무엇을 푯대로 삼아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왜 지금 재벌개혁인가>는 박정희 개발체제를 극복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부제도 ‘박정희 개발체제에서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로’이다.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로서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2016) 등을 내놓은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썼다.

책은 지은이의 예전 저작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재벌개혁의 필요성과 방법을 정조준하고 있다. 사실, ‘삼성 공화국’과 땅콩 회항, ‘3-5 법칙’(재벌 총수는 무슨 범죄를 저지르든 3년 징역에 5년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관행) 등 일반인들도 재벌 체제에 문제가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는 등 정경 유착의 민낯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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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사태를 통해 정경유착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박정희 체제 ‘이후’는 재벌개혁을 통해 비로소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달 19일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출석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모습이 승강기 벽에 비쳐 보인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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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은이는 책에서 단순히 재벌 일가의 불법행위를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1부에서부터 박정희 개발체제의 본질을 ‘정부 주도-재벌 중심’의 발전전략으로 파악하고, 이제는 그런 전략이 수명을 다했을 뿐 아니라 경제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실을 차분히 짚어 간다. 이를테면 엘지그룹이 처음 화장품을 만들 때 이를 담을 플라스틱 용기가 없어 그것도 따로 만들었던 사례를 들면서, 당시 재벌의 수직계열화가 긍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제 수직계열화는 시장의 공정한 경쟁과 혁신의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

지은이는 이어 한국 경제의 위기를 분석한다. 제조업 경쟁력 저하와 만성적 한계기업(좀비 기업)의 양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등에서 비롯된 양극화 등 세 가지 문제를 주요하게 짚는다. 경제와 사회 전체가 병들고 있다는 진단인 셈인데, 모든 것의 뿌리에는 재벌 체제(재벌 세습, 과도한 수직계열화, 일감 몰아주기 등)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정부의 역할도 박정희 때와 달라져야 한다고 봤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정부 주도 발전전략으로 차세대 성장동력이나 연구개발(R&D) 정책을 추진해 왔다. 매년 10조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이에 지은이는 말한다. “정부는 ‘스티브 잡스’를 발굴해 육성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정부는 스티브 잡스를 찾으려는 역할을 버리고 누군가가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면 재벌개혁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의 재벌은 소유 구조(순환출자, 지주회사체제)가 재벌마다 각양각색이고, 사업 구조(수직계열화, 문어발식 다각화)의 양상도 복잡하다. 그만큼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지은이는 지주회사체제 지정 제도의 변경, 사업영역 규제 등을 통한 소유지배구조의 개혁과 유럽에서 이미 보편화한 ‘근로자 이사제’ 등의 도입을 통한 기업 거버넌스 개혁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복잡한 경제 관련 법률이 나열되는 대목이지만, 재벌개혁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일독해도 괜찮을 듯하다. “재벌개혁이 시행된다 해도 삼성그룹이나 현대차그룹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삼성은 삼성생명 중심의 금융부문과 삼성전자 중심의 실물부문으로 계열 분리될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력 집중이 약화된다. 더 많은, 더 전문화된 기업집단이 생성될 것이다.”

지은이는 재벌개혁을 통해 박정희 체제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로 이행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약자가 보호되는 온건한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이 구축된 새로운 경제·사회 체제이다. 그러나 재벌개혁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올해 선출될 대통령이 재벌개혁을 실제로 추진할 수 있을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개연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야당이 집권하고도 제대로 된 개혁을 못 한다면 한국은 경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이렇게 덧붙였다. “재벌개혁 여부는 결국 국민의 손에 달렸다. 정치인은 국민의 도구일 뿐이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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