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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잘 지는 법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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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한겨레

플레이 볼
이현 지음·최민호 그림/한겨레아이들(2016)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장을 자아의 발달로 파악했다.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 곧 자아의 발달이다. 그래서 아직 자아가 미숙한 유아기는 자유롭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엉뚱한 상상을 하며 하루가 다르게 배워간다. 부모들이 잠시 ‘내 아이가 천재는 아닐까’ 하고 꿈을 꾸는 때다.

물론 이런 시절은 오래가지 않는다. 십대가 되면 유아기의 반짝거림은 서서히 빛이 바랜다. 부모들에게 “아이가 평범해졌다고 느낀 순간이 있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중학교에 입학해 첫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 왔을 때”라고 해서 웃은 적이 있다. 우스개 삼아 한 말이지만 시기는 얼추 맞다.

드물게 이런 순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이현의 <플레이 볼>도 그랬다. 야구 이야기를 담았지만 동화는 그 이상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앞으로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할, 자신의 한계를 빤히 바라봐야 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든 걸 다할 수 있을 것 같은 유년기를 막 벗어난 십대의 당황스러움, <플레이 볼>은 이 순간의 이야기다.

동구가 속한 구천초등학교 야구부는 지역 예선에서도 떨어지는 약체다. 6학년이 된 동구는 마음이 급하다. 명문 야구 중학교에 가려면 지금처럼 해서는 곤란하다. 마침 새로운 감독이 오고, 영민이가 합류하며 야구부는 변한다. 감독은 이제껏 재미있어서 야구를 했다면 지금부터는 이기는 야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동구의 친구인 푸른이를 비롯해 야구를 포기하는 아이들이 생긴다. 동구에게도 위기가 다가온다. 이제 막 야구를 시작한 영민이의 야구 실력이 동구를 추월한다. 급기야 동구는 영민이에게 4번 타자도, 주전 투수 자리도 모두 내주고 만다. 어렵사리 진출한 준결승에서 어이없는 실책까지 하자 동구는 처음으로 야구가 싫어졌다. 영민이의 활약 덕에 구천초는 결승전에 진출했다. 하지만 동구는 결승전이 열리는 구덕구장이 아닌 사직구장으로 향한다. 과연 동구는 이대로 야구를 포기하고 마는 걸까.

이현은 십대의 작가다. 어린이보다 어른 쪽에 바짝 다가간 청소년들의 좌절과 갈등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스포츠와 사람살이를 엮어낸 솜씨도 뛰어나다. 때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너무 분명해 자칫 메시지가 과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만큼 이야기와 메시지 사이에서 솜씨 좋게 줄타기를 한다.

패할 게 뻔한 경기에서 끝까지 마운드를 지킨 동구에게 아람중 감독이 이런 말을 해준다. “잘 지는 법을 알아야 한다. 이기는 거야 다 잘하지. 그렇지만 야구 하는 건 내내 지는 일이다. 잘 질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은 토너먼트가 아니라 리그다. 리그.”

어른의 세계로 나아가는 일은 말하자면 인생은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지는 게임이라는 걸 깨닫는 일이다. 다만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고 인생 역시 그러하다. 초등5~중1.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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