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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리타 선생님과 도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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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책거리

한국의 자연과 사람들을 누구보다 깊이 사랑한 스위스 태생 캐나다 영문학자가 있었습니다. 11년 동안 한국에 머물렀던 그는 감나무에 까치밥을 남겨두는 문화에서 베풂과 생명의 몸짓을 읽어 냈습니다. 지율 스님과 천성산을 만났고, 청도 운문사, 지리산 실상사도 찾았습니다. 한국 문화와 불교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지만 이 땅의 속도전, 토건사업, 영어숭배에 대해선 단호한 비판을 가했습니다. 지난해 3월 다른 세상으로 떠난 리타 테일러(1941~2016)의 1주기를 맞아 그가 2009년 영어로 쓴 책이 <감의 빛깔들>(정홍섭 옮김, 좁쌀한알)이라는 제목을 달고 한국어로 나왔습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우리는 할 수 있다’며 붉은 물결이 온 나라를 뒤덮었을 때, 리타 선생님은 실상사 작은학교를 찾아 도법 스님에게서 우주 만물이 연결돼 있다는 ‘인드라망’ 개념과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도법 스님의 삶과 사상을 다룬 <길과 꽃>(김왕근 지음, 불광출판사)도 이번에 나왔습니다. 스님은 생명평화 사상을 전하는 활동가이자 수행자로서 순례길을 걸어왔습니다. 화려한 강론보다 소박한 자비심을 강조하는 가르침에 끌렸던 젊은 시절, 간디의 자서전을 읽고 지금까지 ‘사회적 삶’이란 시각에서 불교를 재해석하고 실천해 왔다는 그. 2014년 말부터 <한겨레>에 20회에 걸쳐 쓴 세월호 관련 칼럼에서 “3년상이 되는 날 유족과 시민이 얼싸안고 한이 녹아내려 여한이 없는, 희망의 ‘사람 꽃’을 피워내자”고 했습니다.

이 땅의 나무에 물이 올랐습니다. 산수유와 생강나무에도 노란 꽃이 피었구요. 노란 리본을 달고 기다렸던 사람들의 눈앞에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3년상은 얼마 남지 않았고, 봄은 참 더디게도 옵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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