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타사 슬래브 매입 가공판매
웃돈 지출은 기본, 품귀 땐 못 구해
12년 노력 끝 작년 브라질에 제철소
지난주 자체 생산 제품 처음 들여와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이 22일 당진공장 ‘브라질 CSP 제철소 슬래브 입고식’에서 브라질 CSP슬래브로만든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장 부회장은 ‘후판 공장이여 영원하라’고 적었다. [사진 동국제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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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혹은 전기로가 없으니 다른 제철소의 슬래브를 사다 가공하는 방식으로 철강 제품을 만들어 왔다. 슬래브는 쉽게 말해 녹인 쇳물을 굳힌 것이다. 철강사의 각종 열연·냉연제품의 재료가 된다. 직접 슬래브를 만들지 못하는 서러움은 컸다. 다른 제철소에서 만든 슬래브엔 웃돈이 붙는다. 수요가 많으면 구하기 힘들 때도 있다. 고로가 없는 철강사의 한계에 봉착한다.
자료: 동국제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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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공식 인터뷰와 간담회를 일절 하지 않아온 장세욱 부회장은 이날만큼은 기자들 앞에 섰다. 장 부회장은 “아버지(고 장상태 회장)와 형(복역 중인 장세주 회장), 나까지 3대에 걸친 염원을 드디어 이뤘다”고 기뻐했다.
2005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CSP 프로젝트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제철소 유치 열의가 강했던 브라질 세아라 주와 150만t급 전기로 직접환원 제철소를 세우기로 합의하는 것 까진 쉬웠다. 하지만 2007년 남미의 자원 전력화 바람이 불면서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다. 전기로는 수지에 맞지 않았다. 기술을 제공하기로 돼 있던 이탈리아 파트너 업체가 두 손을 들고 포기했다. 동국제강은 다시 브라질 정부를 설득해 이번엔 세계 최대 철강석 수출 회사 발레를 참여시켰다. 계획은 연산 300만t급 고로제철소로 수정됐다.
이후에는 지분 협의가 문제였다. 프로젝트가 아예 무산될 위기까지 간 적도 있다. 브라질과 한국을 잇는 세계 철강사에 유례없는 최장 거리의 철강 벨트를 구축하는 작업이라 서로 오해도 많았다. 발레와 이야기가 정리되자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사업은 또 멈췄다. 고로를 제작하기로 협의 중이던 일본 철강사가 더 이상 회신하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던 동국제강은 이번엔 포스코를 설득해 지분 참여 방식으로 프로젝트에 끌어들였다.
2012년 7월 본공사를 시작해 2015년 1월에서야 고로 정초식(고로 내부에 내화벽돌을 쌓는 것을 기념식)을 치렀지만 위기는 또 찾아왔다. 2014년 경영위기가 찾아와 동국제강을 뒤흔들면서 건설 비용 대출이 지연되더니 장세주 회장의 원정 도박 사건으로 경영 공백까지 생겼다.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고 뼈 아픈 구조조정도 이어졌다.
그럼에도 지난해 6월 10일 고로에 불을 넣는 화입(火入)식을 치러낼 수 있었다. 그 후 이틀 뒤엔 첫 쇳물(용선)이 쏟아져 나왔다. 한 달 간 시범 가동을 거쳐 24시간 가동 체계로 전환했고, 지난 2월 말 기준 140만t 생산과 124만t 이상의 슬래브 판매를 기록하며 1년도 채 되기전 하루 7500t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자동차 강판용 슬래브와 유정관용 슬래브와 같은 고부가가치 고급강을 잇달아 생산하는 계획도 무난히 진행됐다.
자료: 동국제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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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제강의 상황은 여전히 불안하다. 아직 올해 갚아야 할 사채(약 2000억원)도 남았다. ‘한국산업은행 자회사’라고 할 정도로 대출도 많다. 물량 공세를 펼치던 중국 철강 업체의 감산 효과가 본격화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다만 상황은 많이 호전됐다. 지난해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흑자로 돌아서 한숨 돌렸고 업황도 개선되고 있다.이젠 고로도 있다.
장 부회장은 이날 형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드러냈다. 그는 “회장님이 지난해 브라질 입화식을 봤더라면 참 좋아했을텐데도 서운한 내색을 안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장 회장이 출소한 뒤 동국제강의 경영은 어찌되는지를 묻는 기자들에게 “형을 매우 좋아하고 1주일에 한번씩 지금까지 약 147번의 면회를 했다”며 “매번 자문도 구하고 잔소리도 듣는다”는 대답으로 대신했다.
당진=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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