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8 (토)

[월드 톡톡] "트럼프, 도청 막으려 전화기 은박지로 싸라 지시"… 中언론 誤報 망신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뉴요커誌 풍자 기사 코너 오해… 진짜 뉴스로 알고 인용 보도

미국식 유머·반어법 잘 몰라 '김정은이 섹시男 1위' 오보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도청을 막기 위해 백악관 전화기를 은박지로 싸라고 지시했다."

중국 일간지 참고소식(參考消息)은 지난 7일 미국 잡지 뉴요커에 게재된 '보로위츠 리포트'를 인용해 이렇게 보도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보로위츠 리포트는 코미디언 앤디 보로위츠가 2001년부터 뉴요커에 게재하는 코너로, 기사 형식을 따르는 풍자 콘텐츠다. 기사 형태로 제공하지만, 유머일 뿐 진짜 뉴스는 아니다.

중국 언론이 속아 넘어간 보로위츠 리포트는 "오바마가 나를 도청했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풍자했다. "이른 시각인 토요일 오전 6시, 트럼프는 (백악관 보좌관) 켈리언 콘웨이와 숀 스파이서를 소집해 백악관 내 전화기를 모조리 감쌀 수 있을 만큼 은박지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불면의 밤을 보냈다고 알려진 트럼프는 목욕 가운을 걸친 채 보좌관들에게 '(은박지를) 더 단단히 싸란 말이야!"라고 윽박질렀다"는 내용이다. 참고소식은 이 내용을 그대로 기사에 반영했다.

조선일보

‘트럼프가 백악관 전화기를 은박지로 싸라고 지시했다’는 풍자 코너가 실린 뉴요커 매거진(오른쪽)과 이를 사실로 믿고 보도한 신화통신 기사(왼쪽). /워싱턴포스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 언론이 미국의 풍자 기사에 속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013년 보로위츠 리포트를 번역해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CEO가 '실수로' 워싱턴포스트(WP)를 인수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아마존의 WP 인수가 화제였는데, 보로위츠 리포트는 "베조스가 '마우스를 잘못 클릭하는 바람에 WP를 샀다"고 풍자했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012년 미국 풍자 뉴스 매체 어니언을 인용,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선정됐다"는 오보를 내기도 했다.

중국 언론이 미국 매체의 풍자에 자주 속는 이유는 신랄한 유머와 반어법을 즐겨 쓰는 미국 문화와 보도에 익숙하지 않은 데 원인이 있다. 6일 보로위츠 리포트는 "오바마가 기자들에게 '내가 그 멍청이(트럼프)의 말을 더 듣고 싶어 도청까지 했겠습니까?'라고 의혹을 부정했다"고 썼는데, 이 역시 실제 뉴스가 아니라 트럼프를 풍자한 내용이다.

뉴욕타임스는 "각종 음모론과 가짜 뉴스가 만연한 중국에서 언론 매체가 (미국 매체의) 풍자에 자주 속아 넘어가는 것은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오윤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