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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송희영·정규재·문창극…언론사 ‘주필’ 수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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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22

박근혜 대통령 탄핵국면 논란의 중심에 선 주필들

조선일보 송희영·한국경제 정규재·중앙일보 문창극

기득권에 안주·정치권력과 결탁 끊임없이 경계해야



주필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한자로는 주필(主筆), 영어로는 에디터 인 치프(editor in chief), 치프 에디터(chief editor), 매니징 에디터(managing editor) 등으로 표기합니다. 신문사에서 편집 방향을 결정하는 최고 책임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정기간행물법의 편집인을 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신문사에 주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겨레신문에 편집인은 있지만 주필은 없습니다.

제가 주필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역사 교과서에서 <황성신문>(皇城新聞) 장지연(張志淵) 주필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배웠을 때였습니다. 시일야방성대곡은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이 1905년 을사늑약을 통렬히 비판한 논설입니다.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라는 자는 각자의 영리만을 생각하고, 위협에 벌벌 떨면서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어, 4,000년 역사의 강토와 500년 종사를 타인에게 바치고, 2000만의 영혼을 모두 타인의 노예로 되게 하니, 저 개돼지만도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朴齊純)과 각 대신은 족히 엄하게 문책할 가치도 없거니와, 명색이 참정대신이라는 자는 정부의 우두머리임에도 불구하고, 다만 ‘부(否)’자로서 책임을 면하며 이름만 팔려고 꾀하였다.”

장지연 주필의 피를 토하는 모습이 떠오를 정도로 격렬한 문체입니다. 장지연은 일본 헌병대에 의해 투옥됐고 황성신문은 3개월간 정간됐습니다. 장지연은 1921년 병사했는데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습니다. 훗날 친일 논란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랐고 국가보훈처가 서훈을 취소하는 등 곡절을 겪었지만, 그가 쓴 시일야방성대곡만큼은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논설입니다.

갑자기 주필 얘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뉴스의 중심인물로 떠오른 세 사람의 주필 때문입니다.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 <한국경제> 정규재 주필, <중앙일보> 문창극 주필입니다.

주필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그 신문사에서 최고의 언론인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세 사람이 쓰는 글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들이 가진 사고의 깊이와 역량에 대해서는 상당한 존경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제가 조금씩 안면이 있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나중에 뉴스의 중심인물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한겨레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4월4일에 열린 제58회 신문의 날 기념 축하연에 참석, 참석자들과 함께 건배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이웅모 한국방송협회장, 송필호 한국신문협회장, 박 대통령, 송희영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 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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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인물은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입니다. 송희영 주필은 1월17일 배임수재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1월17일 <한겨레> 기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송희영(62) 전 <조선일보> 주필이 홍보대행사의 기업 고객에 유리한 기사를 써주는 대가로 홍보대행사 쪽으로부터 5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대우조선에 우호적인 사설 및 칼럼을 실어주고 남상태·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한테서 유럽여행 비용 제공 등 5600만원의 재산상 이익을 취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부패범죄수사단(단장 김기동)은 홍보대행사 뉴스커뮤니케이션즈 박수환 대표와 남 전 대우조선 대표, 고 전 대우조선 대표로부터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는 칼럼·사설·기사를 <조선일보>에 게재해 달라는 청탁을 받고 총 1억여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송 전 주필을 17일 불구속 기소했다. 송 전 주필은 고 전 대표에게 부탁해 처조카를 대우조선에 취업시킨 혐의(변호사법 위반)도 받고 있다.


검찰의 기소에 대해 송희영 주필은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오늘 검찰은 무려 5개월(내사 포함 8개월) 가까이 진행된 저에 대한 수사를 마치고 법원에 기소하였습니다. 기소 내용에 대해서는 겸허한 자세로 정해진 법 절차에 따라 저의 무고함을 밝혀나갈 각오입니다.

그러나 검찰이 대우조선해양 부실회계 의혹이라는 수사 본류에 저를 억지로 끼워 넣고 범죄와는 아무 관련 없는 사생활을 언론에 대거 흘리며 언론인으로서 수십년간 쌓아온 명예와 자존심을 더럽힌 것에 대해서는 깊은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찰의 이런 무리한 수사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 측근이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 국정농단 세력의 치밀한 기획과 지시에 의해 자행되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어떤 이유로 제가 박근혜 대통령과 그 일파에게 미운털이 박혔는지 궁금하기만 할 뿐입니다.

저는 2004년 9월 ‘박근혜 버블’이라는 비판성 칼럼을 쓴 이래, 2016년 4.13 총선을 앞두고 조선일보 사설과 칼럼을 통해 친박들의 기괴하고 비정상적인 정치 행태를 끊임없이 지적했습니다. 이어 조선일보는 우병우 수석 처가의 강남땅 거래 의혹, 티비 조선은 미르재단 및 케이스포츠재단 설립 의혹을 특종 보도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비판적 보도들이 박 정권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을 뿐입니다.

언론인으로서 기업으로부터 다소 과도한 대우를 받아 국민 여러분께 실망감을 안겨준 것에 대해서는 평생 반성하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는 이 땅에 검찰 권력을 통한 언론 길들이기나 교묘한 언론 탄압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저를 향한 검찰의 표적 수사와 그 근원인 박근혜 정권의 불순한 의도에는 재판 과정을 통해 철저히 맞서 싸울 것입니다.



이 사건은 언론계에 상당히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첫째, <조선일보> 주필이 비리 혐의로 기소됐다는 것 자체가 우선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발행 부수가 많은 신문사입니다. 둘째, 송희영 주필이 검찰 수사의 배경으로 박근혜 정권의 언론 길들이기를 지적한 것입니다. 송희영 주필의 항변이 사실이라면 박근혜 정권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정하고 독립적이어야 마땅한 검찰권을 언론 탄압의 도구로 사용한 파렴치한 정권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법원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언론인 비리라는 검찰의 기소 내용이 옳았는지 박근혜 정권의 부당한 언론 탄압이라는 송희영 주필의 항변이 옳았는지 머지않아 가려질 것입니다.

한겨레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월25일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주필(왼쪽)이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 ‘정규재 티브이(TV)’와 인터뷰하고 있다.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뒤 박 대통령이 특정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규재TV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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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인물은 <한국경제>의 정규재 주필입니다. 그는 경제 분야에서 오랫동안 기자와 데스크, 논설위원을 지냈습니다. 공격적인 스타일로 보수 성향이 강한 논객입니다. ‘정규재 티비’라는 인터넷 매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규재 주필이 뉴스의 중심인물로 떠오른 것은 탄핵소추 상태인 박근혜 대통령과 지난 1월25일 1시간 동안 단독 인터뷰를 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규재 주필과의 인터뷰를 통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거짓말로 쌓아 올린 커다란 산”이라며 “이번 사태의 진행 과정을 추적해보면 오래전부터 누군가 기획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음모론을 제기했습니다.

인터뷰가 성사된 것은 청와대의 선택이었습니다. 정규재 주필은 “모든 언론이 인터뷰를 신청해놨고 정규재 티브이도 신청해 놓았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재판이 진행중인데 헌재 변호인단에서 대통령께 정규재 티비 나가보시면 어떻겠냐고 얘기한 거 같다. 그러면 대통령이 만나겠다고 해서 제가 불려들어가서 얘기를 듣고 왔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정규재 주필은 이 인터뷰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기업에서 자금을 모아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을 설립한 의혹에 대해서는 거의 질문을 하지 않고, 마약설, 굿판설, 정윤회 밀회설 등 탄핵의 본질과 관련 없는 자극적인 질문을 던져 결과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억울함만을 한껏 부각했기 때문입니다. 정규재 주필의 박근혜 대통령 인터뷰에 대한 평가는 탄핵 사태를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그치겠습니다.

한겨레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014년 6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자진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차에 오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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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인물은 <중앙일보>의 문창극 주필입니다. 문창극 주필은 2014년 6월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정홍원 국무총리의 뒤를 이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지만 친일사관 논란 등에 휘말려 14일 만에 자진해서 사퇴한 일이 있습니다. 그랬던 문창극 주필이 1월21일 탄핵반대 집회에서 단상에 올랐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조의연 판사에 의해 기각된 시점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는 어둠의 세력이 날뛰고, 망국 세력이 활개를 치고 있다.”

“뇌물을 줬다는 사람의 죄가 성립되지 않으면 받았다는 사람의 죄도 성립 안 된다. 국회 탄핵은 원천 무효다. 사법부 권위를 지켜 구속영장을 기각한 조의연 판사에게 박수를 보낸다.”

“지금 탄핵안은 헌법재판소에 가 있다.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1명의 임기가 곧 끝나 8명이 결정한다. 3명만 반대하면 탄핵은 기각되고, 우리 대통령은 살아난다. 설마 단 세 분의 의인이 없겠나.”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으로 시집와 식구를 위해 일하던 며느리다. 국회가 여소야대가 되자 야당이 시어머니가 돼 시누이인 새누리당과 합세해 며느리를 쫓아내려 하고 있다. 외로운 그 며느리는 차가운 뒷방에서 울고 있다. 그 며느리가 너무 불쌍해 우리는 나왔다.”

발언의 내용이 <중앙일보> 주필 출신이 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정치적 소신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문창극 주필은 “신문, 방송, 인터넷을 보면 이 나라에서는 사실이 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인터넷이 거짓을 더해 거짓 소문은 괴물이 되고, 괴물이 뉴스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휩쓴다”고 했습니다. 신문사 주필을 지낸 거물급 언론인이 우리나라 언론을 통째로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말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문창극 주필은 교회 장로입니다. 2월3일 서울 양재동 횃불선교센터에서 ‘민주시민과 크리스천’이라는 주제로 설교했습니다. 여기서 이런 발언을 했다고 <뉴스앤조이>가 보도했습니다.

“민주주의가 성공하려면 다수결을 하되 반드시 법치가 함께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국회 다수가 법을 무시하고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대통령을 무조건 변호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통령의) 죄가 있다면 임기가 끝난 후에 (시비를) 가려도 문제 될 게 없다.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든다고 다수당이 탄핵을 하면 나라는 혼란에 빠진다. 왜 이렇게 됐는가. 국회가 촛불 집회에 100만 명이 모인 걸 보고, 민심은 이미 판결이 났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건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대중 집회를 통해 유죄 여부를 결정하는 게 바로 인민재판이다. 이것이 바로 민중주의이자 포퓰리즘이다. 우리 국회는 촛불을 빌미 삼아 법치를 유린했다. 법을 만드는 기관이 스스로 법을 어긴 셈이다.”

“물론 탄핵을 찬성하는 모두가 그렇지 않겠지만, 그들의 구호를 보면 친북 용공 세력들이 분명히 있다. 선의로 촛불을 든 사람들이 그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내가) 경고의 태극기를 든 것이다. 태극기 집회야말로 민주 시민으로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태극기 집회에 도덕적 정당성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대한민국 시민인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민주 시민으로,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한다. 일반 시민보다 한 차원 더 높게 무엇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생각할 의무가 있다. 우리 하나님은 다수를 보지 않고, 남아 있는 한 사람을 본다. 100만 명을 보는 게 아니다. 그중 살아 있는 한 사람을 본다. 우리가 남은 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그럴 용기가 있는가. 하나님은 바로 남은 한 사람을 사용한다.”

주필은 기자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위직입니다. 그만큼 영예로운 자리입니다. 실력이 있어야 하고 청렴해야 합니다. 역사에 대한 인식과 원만한 인격까지 갖춰야 합니다. 권력과 맞서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합니다.

<조선일보> 송희영, <한국경제> 정규재, <중앙일보> 문창극 주필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국면 와중에 한꺼번에 구설에 오른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가히 주필 수난시대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언론계 전체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할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당사자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명예회복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주필들이 훨씬 더 많다고 저는 믿습니다. 지금 각 언론사 주필을 하는 언론인들은 대개 젊은 시절 박정희 전두환 정권과 맞섰던 세대입니다. 부당한 독재권력에 대한 분노와 투쟁의 기억이 가슴 한켠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변할 가능성이 높은 유약한 존재입니다. 언론인이라면 자신이 언론권력이라는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지, 정치권력과 결탁해 언론의 기본임무인 권력감시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지만 저 자신의 성찰을 위해서라도 다짐해봅니다. 독자의 사랑을 받는 명주필들이 많이 나타나 우리 언론이 신뢰를 회복하기 바랍니다. ‘주필 수난시대’는 가고 ‘주필 전성시대’가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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