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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되살아난 협서율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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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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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페이스 북에 참으로 신기한 사진 한 컷이 올라왔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김호일 사무총장이 직접 촬영해 올린 사진이다. 요즘 거의 볼 수 없지만 무척이나 익숙한 광경이었다. 굶주린 쥐 한 마리, 마우스가 먹잇감을 찾아 헤매다 그 사진에 놀라 급하게 멈췄다. 사진 장소는 유럽 어느 국가의 지하철 안이고, 피사체는 10여 명의 승객들이다. 앉아 있는 승객들은 모두 책을 보고 있었다. "뭔 이런 사진을 보고 놀라기는?" 하고 치부할 수 있다. 한 때 우리 지하철 안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사진 한 컷에 이렇게 호들갑을 떤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모습을 지하철 안에서 자주 보고 직접 경험한 사람들에겐 눈길이 멈추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책을 스마트폰이 대신하니 신문 가판대도, 아니 거저 볼 수 있는 신문도 자진 폐간된 상황에서 그 사진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과거에는 흔한 장면이지만 아주 먼 남의 나라 일이 되어 버린 지금, 이 사진에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음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아마도 사무총장이 이 그림을 올린 것은 필자와 같은 느낌에서 일 것이다. 책과 거리가 멀어져 가는 세태를 풍자하기 함이 아닐까?

책과 신문을 보는 독서 광경을 지하철에서 몰아낸 범인은 누구인가? PC의 소형화된 운영 체제를 탑재한 기기에 무선 전화와 통신이 가능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듈이 추가된 스마트폰이다. 종전의 휴대폰보다 강력한 무기를 장착하고 있다. 때문에 지하철 안 풍속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앉으나 서나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있고 엄지 방아가 요란하다. 옆에 앉은 친구와 대화도 입이 아닌 엄지로 한다. 게임에 눈알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카톡으로 안면 근육이 실룩거리고, 어느 무식한 인간은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지져댄다. 스마트폰이 무혈혁명으로 지하철 안을 점령한 것이다. 마치 책이나 신문을 들고 보고 있으면 경찰에 붙잡혀갈 분위기다.

책을 옆에 끼고 다니면 경찰이 잡아가 탄압했던 시대가 있었다. 아주 먼 중국 진(秦) 나라 때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기원전 213년 백성들이 책을 가지고 다니며 읽거나 소장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법을 만들었다. 바로 협서율(挾書律). '挾' 자가 '팔과 옆구리에 책을 사이에 끼고 다니거나 집에 서적을 소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시황은 분서갱유(焚書坑儒)로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협서율은 이 분서갱유의 일환이다. 책을 소장한 자는 책을 관에 제출하고, 그렇지 않을 사람은 묵형(墨刑)에 처해지거나 멸족을 당했다. 그러니까 아예 책을 보지도, 지니지도 못했다.

이처럼 법가 사상으로 중무장했던 진나라가 망했다. 진나라에서 10여 년이나 사상을 탄압했던 이 협서율은 한나라 왕조가 설립된 이후에도 10여 년이 더 지속됐다. 한 고조 유방도 일단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우려되는 백가쟁명의 사상통제가 필요했기 때문일까? 백수건달이었던 유방이 책을 통해 학식을 쌓는 일과 유식한 척하는 선비나 학자들과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다. 그러니 협서율을 정말 좋은 형법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나라 2대 황제이자 유방의 차남 혜제가 협서율을 과감하게 폐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혜제는 어리 섞고 우매해 책과 독서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이른바 백치다. 이 백치가 독서와 책 소장을 왜 허락했는지 의문이다.

똑똑한 신하를 만들어 정치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 일까 아니면 협서율을 폐지하라는 학자들의 등쌀을 못 이긴 것일까? 여하튼 협서율 폐지로 학자들은 물론 백성들도 자유롭게 독서를 통해 지식과 지혜를 쌓을 수 있었다.

중부매일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2천여 년이 지난 요즘 우리나라에서 협서율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책이 눈에서 멀어지고 있다. 삶은 삭막해지고 있다. 밥통만 채우고 있다. 머리는 갈수록 비우고 있다. 폼으로라도 책을 끼고 다녀라. 개권유득(開卷有得), '책을 펴기만 해도 이롭다'고 했다. 아니 책 제목만 읽어도 지식은 이미 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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