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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월드 톡톡] 가톨릭 자선단체가 콘돔을 나눠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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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 문책 해임 문제로 보수 몰타 기사단, 교황과 충돌

성스러운 가톨릭 교회가 '콘돔 게이트'에 휘말렸다. 사건은 가톨릭 보수파인 몰타 기사단 산하 자선단체가 3~4년 전 미얀마 빈민에게 콘돔을 나눠주면서 시작됐다. 콘돔 사용은 인공피임을 금하는 가톨릭 교리에 어긋난다. 가톨릭 전통을 중시하는 몰타 기사단 지도부는 격분했고, 작년 12월 그 책임을 물어 알브레히트 폰 뵈젤라거 부단장을 해임했다. 몰타 기사단은 1080년 성지 순례자를 돕기 위해 예루살렘에 세워진 병원에서 출발했으며, 십자군 전쟁 때 의료 지원으로 맹활약했다. 지금도 의료·구호 자선 활동을 주로 한다. 영토는 없지만 일부 국가는 몰타 기사단을 국가로 인정해 외교 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만큼 독자성이 강하다.

문제는 해임된 폰 뵈젤라거 부단장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교황청에 진상 조사를 요구하면서 물 위로 떠올랐다. 교황은 조사단 구성을 지시했지만, 몰타 기사단은 자주권 침해라고 반발하며 교황 조사단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1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로버트 매튜 페스팅 몰타 기사단장은 간부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황이 임명한 위원회는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풀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했고, 교황청은 '항명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이처럼 몰타 기사단과 교황청이 충돌하는 배경에는 보수 성향이 강한 기사단 지도부와 개혁적인 프란체스코 교황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있다는 분석이다. 교황과 몰타 기사단 사제인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은 이전부터 보수·개혁으로 대립했다. 작년 9월 버크 추기경은 교황에게 가톨릭 교리에 어긋나는 이혼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한 적도 있다. 교황은 "이혼과 동성애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얀마에 콘돔을 나눠준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으나, 양측이 기(氣) 싸움을 벌이면서 '게이트'로 번지는 양상이란 분석이 나온다.

[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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