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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월드 톡톡] "해외 은닉재산 330조원 끌어오자" 인도네시아·싱가포르 '세금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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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낮은 싱가포르로 돈 몰리자… 印尼 "세금 2~10%만" 당근 제시

인도네시아가 자국 부자들의 대표적 재산 도피처인 싱가포르와 '세금 전쟁'을 벌이고 있다.

탈세와 해외 재산 은닉으로 골머리를 앓아온 인도네시아는 지난 7월 '역외재산 자진 신고제'를 시행했다. 해외로 빼돌렸던 재산을 내년 3월까지 신고하면 조기 신고 여부 등에 따라 단계 부과하는 세금(2~10%) 외에 일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인도네시아 법인·소득세가 25~30%인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이 정책은 이웃해 있는 싱가포르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인도네시아 기업·부유층이 부동산·예금·채권 등의 형태로 싱가포르에 묻어둔 재산은 3000억달러(약 330조원)에 이른다. 인도네시아인 소유 해외 재산의 80%, 인도네시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에 달하는 금액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싱가포르 도피 재산의 상당량이 9월까지 신고·환수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때까지 신고하면 세금을 2%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적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9월 중순 현재 90억달러(약 9조8000억원)가 신고됐을 뿐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싱가포르 금융기관이 방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진 신고할 필요가 없으며 (신고 안 하면) 수수료를 깎거나 편의를 더 봐주겠다'고 고객을 설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진 신고하면 그 내역이 싱가포르 경찰에 보고돼 범죄 연관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루머도 돌았으나, 싱가포르 당국은 이를 부인했다.

밤방 브로조느고로 인도네시아 전 재무장관은 "(자진 신고를 무력화시키려는) 싱가포르 은행들의 움직임이 두렵지 않다. 싱가포르는 그저 작은 나라일 뿐이다"고 비판했다. 이에 K. 샨무감 싱가포르 법무장관은 "신고를 막은 사실이 없다"며 "근거 없이 싱가포르를 비방하지 말라"고 맞받아쳤다.

인도네시아가 이런 파격 조치를 내놓은 것은 탈세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을 정도로 심각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2억7000만명 중 실제로 세금 내는 사람이 1100만명에 불과하다. 원자재값 하락까지 겹치면서 지난해 최악의 재정 적자를 기록한 인도네시아 정부는 부자들에게 '당근'을 제시해 세수를 늘려보겠다는 계산이다. 25%인 법인세를 싱가포르 수준(17%)으로 내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싱가포르에 재산을 은닉하는 이유가 싱가포르의 낮은 세금 때문만이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사회·정치 불안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화교(華僑)가 경제권을 장악한 인도네시아에서 부유층 재산의 해외 은닉이 가속화된 것은 1998년 벌어진 반(反)중국계 폭동 때문이었다.



[싱가포르=최규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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