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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역기러기' 생활 7년 만에 집으로… 나를 불청객 취급하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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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다방으로 오세요!]

배우자에겐 상처가 될 것 같아,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이 여러분도 있으실 겁니다. 그럴 때 저희 별별다방 메일함에 속을 털어놓는 손님들이 계시지요. 그분들 중에는 배우자와 떨어져 각자의 공간에서 지내봤으면 하는 중년 남녀가 의외로 많으십니다. 연애 시절처럼 자유롭게 살며 가끔 만나면 그나마 다시 웃으며 눈 맞출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오늘 만난 손님은 전혀 다른 이야기로 우리의 배부른 푸념을 잠재웁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만고불변의 법칙 앞에 무너지는 현실의 부부들. 그들 마음의 거리를 좁혀줄 또 다른 만고불변의 법칙은 없을까요? 홍여사 드림

조선일보

김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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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제 자신의 인생을 결혼 전후로 나누어 생각하곤 했습니다. 미혼일 때는 이러이러했는데, 결혼 이후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그러나 결혼 생활 17년 차에 이른 지금, 저는 제 인생을 다른 방식으로 나누어 생각하게 됩니다. 해외 발령을 받은 2009년 이전과 그 이후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가족과 고국을 떠나 해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09년을 전후로 저희 회사가 해외 사업에 사운을 걸게 되면서 다수의 직원이 해외로 발령을 받았고, 싫든 좋든 저 역시 그 대열에 끼게 되었지요. 해당자가 된 사원들 중에는 내심 반기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해외 근무에 따른 특별 수당이 상당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는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가야 하는 나라가 영미권이나 기타 선진국이 전혀 아니기에, 가족을 동반하기에는 부담이 컸습니다. 치안이나 의료 시설도 좀 불안한 데다, 아이들을 데려가면 그쪽 외국인 학교에 입학시켜야 하는데, 사측의 학비 지원은 미미했습니다. 그래서 다들 가족을 두고 홑몸으로 떠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조건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유난히 아빠를 찾고, 아빠를 흉내 내는 판박이 아들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공주를 두고 발길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았습니다. 결혼 이후 십여 년 동안 두 아이 낳아 기르며 일심동체로 밀착되어 있던 부부가 이역만리 떨어져서 몇 년을 보내야 한다는 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죠. 그렇다고 회사의 해외 발령을 거부하자면, 부서 이동에 지방 발령까지 감수해야 했으니, 그러느니 차라리 이직을 해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생각은 다르더군요. 너무나 결연히, 다녀오랍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직이 말처럼 쉬우냐며, 회사가 가라면 가는 거라더군요. 기본적으로는 저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아내의 말을 서운하게 듣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남편 없이 아이 둘을 감당해야 할 아내가 걱정이었죠. 그래서 저는 큰 결심을 하고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우리 네 식구 같이 갈까?

그러나 아내는 고개를 젓더군요. 영어나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나라도 아닌데, 삼 년 이상 있다 오면 한국 교육에 재적응 못 한다고요. 그 밖에도 안 되는 이유가 많더군요. 아이들이 심각하게 아프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느냐, 그리고 난 체질상 외국 생활이 안 맞는 여자다, 말 안 통해 답답하고 외롭고, 우울증 걸릴 것 같다.

할 말이 없더군요. 같이 갔다가는 아이들 교육 망치고, 아내는 우울증 걸린다니까요. 하는 수 없이 저는 혼자 해외 근무를 떠났습니다. 가보니 아내 말이 맞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저는 그곳에서 일에만 매진했습니다. 공항에서 울며 매달리던 아이들과는 영상통화로 그리움을 달래고, 사오 개월에 한 번씩 한국에 나가 아내를 만날 날을 고대하며 살았습니다. 전화로 목소리를 듣는 아내는 보고 싶고, 푸근하기만 한데 실제 만나면 어딘지 모르게 서먹한 부분이 느껴졌죠. 아, 이래서 기러기는 안 되는 거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서글픈 역기러기 아빠 노릇을 한 지 칠 년. 이제야 그 터널의 끝이 보이는 듯합니다. 본사로 돌아오겠으면 신청을 하라고 하더군요. 저는 이 기쁜 소식을 아내에게 전했습니다. 그러나 소식을 접한 아내의 반응은,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이렇게 벼락 치듯이 통보를 하는 데가 어딨느냐며, 회사를 비난하는 척하더군요.

그 말에 저는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가장이 돌아온다면 그보다 좋은 소식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벼락이라니요? 아내에게 남편이 날벼락인가요?

혼자서 아내의 속마음을 짐작해볼수록 불쾌하고 서운합니다. 제가 돌아오면 당장 소득이 줄어든다는 게 문제일까요? 아니면 편안하고 자유로운 반(半)싱글 생활에 불청객을 맞는 느낌일까요? 저는 지금 아내의 생각을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본사 근무 지원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아내는 저의 귀국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다지 환영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대접을 받자고 지난 7년간 외롭게 살았나 싶으니 억울한 생각마저 듭니다. 애초에 어른들 말을 듣고, 가족을 데려가야 했습니다. 아니면 아예 사표 쓰고 붕어빵 장사라도 나섰어야 했습니다.

그나저나 귀국 이후 저희 가정이 다시 화합할 수 있을까요? 저에게 거리를 두는 아이들은, 제 노력으로 다시 끌어안는다 해도, 아내와의 관계는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더 많이 노력하기에는 서운하고 분한 마음이 너무 큽니다. 아내가 저를 따뜻하게 품어줘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런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이메일 투고 mrsh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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