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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 (금)

빙하 · 설산 1200㎞ 레이스 천국과 지옥이 번갈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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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밀레 공동기획 | 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를 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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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를 가다’를 진행하는 동안 착용한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의 옷과 신발.


‘올라가지 말고 걷자.’ 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인간의 본능인 ‘걷자’를 모토로 삼은 기획이었다. 14좌 베이스캠프는 해발 4130~5300m에 있다. 베이스캠프까지 가려면 걷는 기간만 보통 1주일 걸린다. 내려오는 길 역시 그렇다. 길에는 고달픈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소 증세와 불편한 숙소, 배고픔과 고독이 그것들이다. 하지만 삶에 대한 깨달음, 자연의 위대함 등을 느낄 수 있는 수행의 길이기도 했다.

글=김영주 기자 사진=이창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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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걷고 한 달 휴식…꼬박 1년 반 걸려

‘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를 가다’의 첫발을 디딘 곳은 안나푸르나(8091m)였다. 우리는 2012년 유월 첫날, 인천공항을 떠났다. 네팔의 유월은 우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렸다. 구슬처럼 굵은 스콜을 얼굴에 맞으며 긴 여정의 첫발을 뗐다. 트레킹 시작지인 포카라(Pokhara) 시내에서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4130m)까지는 5일 걸렸다. 첫 트레킹으로 이만한 데가 없었다. 마치 봄소풍을 나선 것처럼 가볍게 걸었다.

하지만 그해 여름 선택한 파키스탄히말라야는 ‘죽음의 여정’이었다. 세계 2위봉 K2(8611m)를 비롯해 브로드피크(8047m), 가셔브룸1(8068m), 가셔브룸2(8035m)까지 4개의 산이 몰려 있는 발토로 빙하를 꼬박 3주에 걸쳐 걸어야 했다. 사막과 같은 마른 빙하와 히말라야 트레킹 중 가장 악명 높은 곤도고라 패스(5700m)를 넘어 약 200㎞를 걸었다. 마치 지옥의 레이스 같았다. 그러나 해당화가 만발한 캠프 사이트에 내려오니 천국 같은 느낌이었다. 지옥과 천국이 하룻밤 간극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가을 ‘다섯 개의 보물 산’이라는 칸첸중가(8586m)를 다녀온 뒤, 다시 겨울 ‘영혼의 산’ 마나슬루(8156m)와 ‘흰 산’ 다울라기리(8167m)에 갔다. 한 달가량 준비해 산에 가고, 한 달을 산에서 걷고 그리고 다시 국내로 들어와 한 달간 몸을 추스르고 다시 길을 떠나기를 반복했다.

이듬해 우리는 마칼루(8463m)를 시작으로 낭가파르바트(8125m), 초오유(8201m), 시샤팡마(8027m)에 이어 에베레스트(8848m)와 로체(8516m) 베이스캠프에 올라 1년 반 동안 이어온 긴 여정을 갈무리했다.

이렇게 걸어간 길이 약 1200㎞다. 우리는 그 길에서 푸른 산천초목을 비롯해 황량한 빙하, 압도당할 것 같은 거대한 설산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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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여자들은 강인했다

가장 자주 만났고, 또 기억에 남는 사람은 네팔에서 만난 10대 소녀들이다. 그들은 당돌하고 야무졌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어김없이 “나도 한국에 가고 싶다”로 시작해 “내가 어떻게 하면 한국에 갈 수 있을까”에 이어 “나를 한국에 데려가 달라”는 부탁으로 끝이 났다. 그들은 ‘메이드 인 코리아’ 휴대전화와 전자제품, 드라마에 열광하는 소녀들이었다. 히말라야 심산에서도 한류(韓流)를 체감할 수 있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환경인 히말라야에는 강인한 여성이 넘쳐났다. 특히 어린아이를 품은 어머니들은 하나같이 강인했다. 출산하는 날 당일에도 도끼로 장작을 패며 땔감을 마련한 칸첸중가의 마야(20), 병원에서 아이를 낳자마자 며칠 동안 산을 거슬러 집으로 돌아온 치링(27)이 그랬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십수 명의 스태프를 대동하고 호강하며 걷는 우리가 부끄러웠다. 우리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또 히말라야가 낳은 사내아이들은 어김없이 ‘설산의 표범’이 됐다. 에베레스트 등 고산에서 등반 가이드 일을 하는 셰르파(Sherpa)들은 대부분 해발 3000m 이상 고산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지난해 티베트 초오유베이스캠프 가는 길, 아스팔트 위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삼바(43)를 만났었다. 그는 중국 칭하이(靑海)성에서 출발해 7개월째 길을 가고 있었다. 종착지인 티베트의 주도 라싸까지는 한 달은 더 가야 한다고 했다. 아스팔트에 대고 수만 번 절을 한 그의 이마에는 손가락 마디만 한 굳은살이 돋아 있었다.

그는 순박한 시골 청년이었다. 우리가 사진 촬영의 대가로 얼마간의 여비를 주려고 해도 한사코 받지 않았다. 거절하는 것 같아 억지로 찔러주고 왔다. 그의 순수한 마음을 훼손한 것 같아 며칠을 괴로워했었다.

우리 일행을 가이드한 스태프는 매번 15~20명 정도였다. 그중 네팔에서 5번이나 동행한 크리쉬나(33)는 형제 같은 사이가 됐다. 그는 지금도 e메일을 보내며 소식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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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 사가 갈릴 뻔했던 낭가파르바트

늘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다. 사실 제대로 못 먹고 못 씻고 밤잠을 못 자면서 걷는 길은 매번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몸이 고달픈 것보다 정신적인 것이 훨씬 더 힘들게 했다.

지난해 여름 파키스탄 낭가파르바트 북면 베이스캠프를 찾았을 때였다.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날 오전, 비극적인 소식을 들었다. 산 너머 남쪽 베이스캠프에서 탈레반이 외국 원정대 10명을 사살한 참극이 벌어진 것이었다. 우리는 이틀 뒤 그쪽에 가기로 예정돼 있었다. ‘죽을 수도 있는 길을 걷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은 헛헛해졌고 발걸음은 무거웠었다. 다시는 파키스탄에 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었다.

지난겨울엔 혼자서 25㎏ 배낭을 메고 2주 동안 에베레스트와 로체를 돌아다녔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다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는 호텔에 들어섰을 때는 천국에 온 것 같았다. 눈 덮인 빙하에서 스스로 길을 찾고, 혼자서 먹고 자고 하는 과정에서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이제는 전 세계 오지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가장 무서운 것은 고소 증세였다. 초기 감기 증세와 비슷한데 머리가 살살 아프다가 지끈지끈하고, 그래서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심장 박동 소리가 밤새 고막을 때린다. 고소 증세를 이길 수는 없었다. 참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그 고통을 이기고 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를 모두 올랐고 그 기쁨은 지금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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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두꺼운 침낭 필수 … 나머지는 평소 장비로

많은 사람이 ‘히말라야에 가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라고 묻곤 한다. 평소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딱히 준비할 것이 없다. 사실 해발 5000m 베이스캠프의 기후는 그렇게 혹독하지는 않다. 우리나라 겨울철 덕유산이나 태백산을 생각하고 준비하면 무방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히말라야 민가는 난방이 전혀 안 된다는 것이다. 돌을 쌓아 지은 로지(Lodge)에서 자는 날과 야영하는 날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두꺼운 침낭은 필수다. 물론 침낭 하나로 보온이 되는 것은 아니다. 침낭 안 공기는 자신의 체온으로 데워야 한다.

트레커들이 필수로 가져가는 스틱도 쓰지 않았다. 손에 카메라를 들고 걸었기 때문에 스틱을 잡을 손이 없었다. 스틱 없이도 큰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었다. 우기 때도 방수 재킷 하나로 버텼다. 산에서 우산은 거추장스럽기 그지없다.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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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 작가 ‘14좌 영원한 찰나’ 사진전

지난 1년 반 동안 히말라야에서 동고동락한 이창수(54) 사진작가는 경남 하동 악양에서 지리산과 더불어 사진 찍는 사람이다. 그가 처음 히말라야를 접한 것은 21년 전인 1993년이었다. 산에 다니는 친구와 함께 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 트레킹에 나섰다고 한다. 당시는 지금보다 트레킹 환경이 훨씬 열악했다.

그는 2011년 12월, 18년 만에 다시 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 바로 뒤쪽에 있는 언덕인 칼라파타르(5550m)를 찾았다. 그곳에서 우뚝 솟은 에베레스트를 보고 언젠가는 ‘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를 전부 가보자’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는 히말라야를 찾을 때마다 힘든 여정을 사진에 담았다. 그 결실이 바로 오는 6월 26일부터 8월 1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여는 ‘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를 가다’ 사진전이다. 지난 2년 동안 목숨 걸고 찍은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인다. 이 작가가 붙인 주제는 ‘영원한 찰나’다. 이 사진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영원하다. 한 걸음도 역시 영원한 찰나다. 그 찰나가 곧 영원성을 갖는다.”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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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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