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홍 기자] 재계에 '사과의 계절'이 돌아온 듯하다. 최근 한국 기업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쇄신과 책임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계열사 통신망 해킹 사고가 발생하자 직접 고개를 숙였다. 700만 명의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중대한 사안 앞에 그룹 총수가 직접 나서 "뼈아프게 반성한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KT의 김영섭 대표는 해킹 사태와 경영 리스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연임을 포기하기도 했다. 카카오의 김범수 창업자 역시 창사 이래 최대 위기 속에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그룹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인적 쇄신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단순히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제스처일 수 있다. 다만 그 보다는 근원적 성찰의 여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계열사 통신망 해킹 사고가 발생하자 직접 고개를 숙였다. 700만 명의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중대한 사안 앞에 그룹 총수가 직접 나서 "뼈아프게 반성한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KT의 김영섭 대표는 해킹 사태와 경영 리스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연임을 포기하기도 했다. 카카오의 김범수 창업자 역시 창사 이래 최대 위기 속에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그룹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인적 쇄신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단순히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제스처일 수 있다. 다만 그 보다는 근원적 성찰의 여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사과와 쇄신 약속은 면피를 넘어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부작용에 대해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무한 책임을 지겠다는 한국 재계 특유의 '사회적 계약'을 이행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최근 모 이커머스 업체를 둘러싼 잡음이 커지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의혹부터 정산 주기 문제, 그리고 국회 청문회 출석 요구까지 이슈는 산적해 있다.
이커머스 업체를 장악하고 있는 누군가는 '두문불출'이다. 과거 국정감사 증인 채택 때는 농구를 하다 다쳤다는 이유로, 혹은 해외 일정을 이유로 불참하더니 이번에도 국회의 부름에 응할지 미지수다. SK 최태원 회장이 APEC 행사와 겹친 일정에도 불구하고 대국민 사과를 우선했던 모습과 묘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물론 억울한 면도 있을 것이다. 사실 해당 업체는 분명 한국 유통 시장의 게임 체인저였다. 소비자가 주문하기도 전에 물류를 배치하는 과감한 데이터 혁신, 밤잠을 설치지 않아도 문 앞에 물건이 도착해 있는 '새벽 배송'의 기적은 우리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였다. 그들은 악당(Villain)이 아니다. 오히려 정체된 유통 시장에 메기를 넘어선 고래로 등장해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비자 후생을 증대시킨 '혁신 기업'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혁신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 그림자 또한 짙어지기 마련이다. 시스템의 효율성을 극한으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노동의 강도는 세어졌고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입점 업체와의 상생 문제는 화두가 됐다. 이는 성장에 따른 성장통이자, 거대 플랫폼 기업이라면 으레 겪어야 할 통과의례다. 정면으로 직시할 일이지 피할 일이 아니다. 소나기만 피하면 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기업 총수들이 포토라인에 서고, 국회에 출석해 쓴소리를 듣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를 곰곰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에 매어있는 몸이라서? 정답일 수 있겠다. 그러나 세상은 보이는 것 이상으로 정교한 윤리의 경제학을 따른다. 기업의 영향력에 걸맞은 책임을 최고 책임자가 직접 짊어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시장과 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함으로 봐야 한다.
해당 업체는 미국 증시에 상장된 미국 기업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매출의 99%는 한국에서 발생하고, 그들의 혁신을 가능케 한 것은 한국의 고밀도 주거 환경과 헌신적인 한국 노동자들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70%가 넘는 의결권을 가진 명실상부한 '오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공정위의 총수 지정은 피했을지 몰라도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실질적 경영 책임자로서의 의무까지 피할 수는 없다.
진정한 '글로벌 스탠다드'는 규제를 피할 때 쓰는 방패가 아니라, 책임져야 할 때 나서는 용기다. 최태원 회장과 김영섭 KT 대표, 김범수 카카오 위원장의 쇄신 의지와 사과가 새삼 대단해보이는 이 기묘하고 뒤틀린 세상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어떨까? 어설프고 웃길 수 있지만 그 순수하고 당연한 마음가짐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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