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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마이크 껐다→켰다→껐다→켰다…61년 만에 필버 중단

중앙일보 하준호.조수빈.양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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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마이크 껐다→켰다→껐다→켰다…61년 만에 필버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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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충돌로 인해 국회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중단되는 초유의 일이 9일 벌어졌다.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이날 여야는 당초 비쟁점 법안을 처리하려 했지만, 밀린 숙제도 끝내지 못한 채 극한 갈등 속에서 정기국회가 막을 내렸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당초 이날 본회의에서 62건의 비쟁점 법안을 처리하려 했다. 그러나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가 사법 제도 개편안, 필리버스터 중지법 등 쟁점 법안 8건의 연내 처리 계획을 철회하라는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모든 비쟁점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하기로 했고, 민주당은 본회의장에 들어서기 전 “민생 발목잡기를 넘어서 민생 탄압이고, 민생 쿠데타”(정청래 대표)라며 야당을 향한 규탄대회를 열었다.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가맹사업법 개정안에 대해 무제한토론을 하는 가운데 여야 의원들이 발언대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가맹사업법 개정안에 대해 무제한토론을 하는 가운데 여야 의원들이 발언대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진통 끝에 예정 시간보다 2시간 늦게 개의한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은 3건의 국가보증동의안을 처리한 뒤, 네 번째 안건인 가맹사업법 개정안이 상정되자마자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첫 토론자인 나경원 의원은 민주당의 야유를 한몸에 받으며 발언대에 올랐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나 의원이 의장석에 예를 표하지 않자 “인사 안 하느냐”며 신경전을 벌였다. 발언 전 의장에 대한 인사는 국회 관례다. 우 의장의 채근에도 나 의원이 무시하고 토론을 시작하자, 우 의장은 “인격의 문제”라고 쏘아붙였다.


양측의 신경전은 우 의장이 “의제에서 벗어난 발언”이라며 나 의원의 토론을 중단시키면서 재점화했다. 우 의장의 거듭된 경고에도 나 의원이 “이 법안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대상)에 올라간 법이라 의회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얘기해야 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의 일방적인 국회 운영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자, 우 의장은 “의도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한다”며 발언대의 마이크를 껐다. 국회법은 의제와 관계없는 발언을 금지하고 있지만(102조), 비교적 발언의 범위가 자유로운 필리버스터 중 의장이 토론자의 발언을 강제로 중지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1964년 4월 20일 당시 이효상 의장이 김대중 의원의 필리버스터(5시간 19분) 중 마이크를 끈 이후 61년 만의 일이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중 우원식 의장이 정회를 선포하자 항의하고 있다. 뉴스1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중 우원식 의장이 정회를 선포하자 항의하고 있다. 뉴스1



이후 여야 의원들은 발언대 주변에 모여 삿대질을 주고받으며 거친 설전을 벌였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우 의장을 향해 “제2의 추미애”라며 “우미애”를 연호했고, 민주당 측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내려오라”거나 “쇼츠 분량 다 땄으니 내려오라”고 소리치며 응수했다.

약 17분간 중단됐던 나 의원의 토론은 의제 내 발언을 약속한 뒤 재개됐지만, 우 의장은 “시간을 충분히 드렸는데도 가맹사업법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며 13분 만에 다시 마이크를 껐다. 그러자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이 나 의원의 옷깃에 무선 마이크를 달아줬고, 나 의원은 발언을 이어갔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유튜버”라며 “무선 마이크를 떼라”고 외쳤다. “끌어내자”(서미화 의원)고 소리치기도 했다.


나 의원의 마이크는 60분이 지나서야 다시 켜졌다. 우 의장은 나 의원에게 “회의장에서 유튜브용 개인 마이크를 착용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마이크를 켰으니 유감 표명을 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 의원은 “국회의장의 오늘 진행 방식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시한다”며 토론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2016년 2월) 때도 민주당 의원 발언에 대해 당시 새누리당이 이의를 제기하자 민주당의 이석현 당시 부의장이 ‘어떤 것이 의제 내이고, 어떤 것이 의제 외인지는 구체적으로 식별하는 규칙이나 법 조항이 없다. 간접적 관련성을 갖는 부분까지 봐야 한다’며 사과했다”며 “우 의장이 편파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민주당에서도 야유가 쏟아지자 우 의장은 결국 “국민 앞에서 국회의 모습을 보이는 게 너무 창피해 더는 회의를 진행할 수 없다”며 정회를 선포했다. 필리버스터 시작 1시간 50분 만의 파행이었다. 정회 후 국민의힘은 의장실을 찾아 “불법 정회”라고 항의했고, 우 의장은 “국회법 준수 요청에도 토론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소란스러워 국회법이 규정한 정회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정회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자유로운 토론을 보장할 것이나, 국회법을 위반하는 행위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는 의견문을 냈다. 본회의는 정회 2시간 10분 뒤인 오후 8시 32분 속개했다. 여야 의원들은 속개 뒤에도 정회의 적법성을 두고 다퉜고, 나 의원의 필리버스터는 그로부터 20분이 지나서야 재개됐다.

하지만 나 의원의 토론은 재개 62분 만에 또 중단됐다. “국회를 일부러 파행시키려는 것이냐”(우 의장) “파당적으로 하지 말라”(나 의원) 등 가시 돋친 설전을 벌이던 끝에 우 의장이 국회법 해설서를 꺼내 들고 “이렇게 할 수는 없다. 여야의 문제가 아니라 국회법을 지켜야 한다”며 35분간 마이크를 껐기 때문이다. 나 의원은 “합법을 가장한 불법이 횡행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회”라고 항의했다.


필리버스터는 정기국회 종료와 함께 끝나기 때문에 10일부터 소집된 임시국회 본회의가 열리면 이미 상정한 안건을 곧바로 의결할 수 있다. 민주당은 우 의장의 일정 등을 고려해 이달 21~24일 중 쟁점 법안 처리까지 마친다는 구상이지만, 국민의힘이 다시 필리버스터를 이어갈 경우 이 역시 장담할 수 없다.

하준호·양수민·조수빈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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