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배송 6일차 수면효율 68%로 ‘잠의 질’ 낮아… 야간 혈압 하강 폭 작아 수면 중 심혈관계 회복도 ‘위험’
류석우 기자가 신체 변화 측정을 위해 착용한 기기들. 손가락엔 반지형 ‘바이탈링’을, 손목엔 시계형 ‘액티그래프’를 착용했다. 24시간 활동혈압계의 커프는 팔에 착용했고, 단말기는 크로스백처럼 끈을 달아 어깨에 걸쳤다. 이종근 선임기자 |
새벽배송을 위해 연속으로 심야에 일하는 것은 몸에 어떤 영향을 줄까?
한겨레21 류석우 기자는 쿠팡 심야배송 노동이 몸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2025년 11월10일부터 22일까지 2주 동안 쿠팡 택배기사와 동일한 일정으로 일했다. 첫 주 6일은 밤 9시에 출근해 이튿날 아침 6~7시까지 심야배송을 했고, 하루 쉰 뒤 아침 7시30분부터 저녁 7~8시까지 주간배송 6일을 연속으로 경험했다. 류 기자는 신체 변화 측정을 위해 24시간 활동혈압계, 수면을 기록하는 액티그래프, 피부온도를 측정하는 바이탈링을 착용했다. 택배기사들은 업무 특성상 활동혈압계를 착용할 수 없어 수면 및 피부온도만 측정했다. 모든 생체 신호는 직업환경전문의 김현주 이화여대목동병원 교수의 조언을 받아 분석했다.
주간노동 전환하자 수면 안정성 빠르게 회복
2주간의 데이터가 보여준 심야노동과 주간노동의 수면 양상 차이는 컸다. 가장 먼저 드러난 차이는 수면의 질이었다. 수면 효율은 ‘누워 있던 시간 중 실제 잠든 비율’을 뜻하는데, 일반적으로 85% 이상이면 양호한 수면으로 본다. 기자의 심야배송 초반에 수면 효율은 80~84%로 시작했지만 4일차부터 74%, 5일차 72%, 6일차엔 68%까지 떨어졌다. 밤에 일하고 낮에 자는 생활이 반복되자 수면의 연속성과 깊이가 눈에 띄게 무너졌다. 주간배송으로 전환하자 상황은 빠르게 달라졌다. 첫날 80%였던 수면 효율은 이틀째에 바로 87%로 회복됐고, 이후 하루(72%)를 제외하고 모두 안정적인 80%대를 유지했다.
수면 중 깨어 있는(뒤척인) 시간(WASO·Wake After Sleep Onset)과 뒤척인 횟수는 그 차이를 더 극명하게 보여준다. 심야배송 첫 6일 동안 기자의 WASO는 평균 90분, 수면 중 뒤척임 횟수는 18회였다. 잠이 들어도 1시간30분 가까이 뒤척이거나 깨어 있었다는 뜻이다. 반면 주간배송으로 전환한 뒤에는 WASO가 평균 55분, 뒤척임 횟수가 11회로 크게 줄었다. 심야노동이 수면의 연속성을 심하게 깨뜨리는데, 주간노동으로 전환만 해도 수면 안정성이 빠르게 회복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심야배송은 혈관과 심장에도 영향을 줬다. 정상적인 수면 중에는 낮보다 10~20% 혈압이 떨어지는 ‘야간 혈압 하강(dipping)’ 현상이 나타난다. 이 하강폭이 작으면 심혈관계가 충분히 회복되지 못한 것으로 본다. 기자가 심야배송을 시작하고 4~5일차(11월13~14일, 48시간 기준)의 수면 중 수축기 혈압은 약 13.4%, 평균 동맥압(동맥에서 순환하는 피의 압력)은 17.6% 하강했다. 이에 견줘 주간배송 4~5일차(11월20~21일, 48시간 기준)는 수면 중 수축기 혈압이 17.2%, 평균 동맥압이 19.9% 내려갔다. 김 교수는 “심야배송 뒤 수면에서 나타난 13%대 혈압 하강은 정상 범위 안이지만, 같은 사람이 주간배송을 할 때보다 회복이 덜 되는 상태로 해석할 수 있다”며 “주간배송 시기 수면 중 혈압 하강은 (심야배송 때보다) 전반적으로 더 뚜렷하고 깊어, 심야의 생리적 ‘휴식 모드’가 더 강하게 작동했다”고 설명했다. 몸은 자고 있어도, 혈관과 심장은 충분히 쉬지 못한다는 의미다.
2025년 11월13일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서 류석우 기자가 배송 중 24시간 활동혈압계로 혈압을 측정하고 있다. 혈압은 30분마다 기기에서 신호가 울리면 그 자리에서 멈춰 1분 정도 안정을 취한 뒤 측정했다. 이종근 선임기자 |
류석우 기자가 신체 변화 측정을 위해 착용한 24시간 활동혈압계. 커프는 팔에 착용했고, 단말기는 크로스백처럼 끈을 달아 어깨에 걸쳤다. 이종근 선임기자 |
피부온도가 말해준 ‘낮과 밤의 충돌’
우리 몸은 낮과 밤의 주기에 맞춰 일정한 리듬을 유지한다. 심부온도(인체 내부의 중심 온도)는 보통 새벽 3~5시에 가장 낮고, 늦은 오후에 가장 높다. 반대로 손목·손·발 등 말단 부위의 피부온도는 밤에 높고 낮에 낮아지는 등 심부온도와 반대로 움직인다. 바이탈링으로 측정된 피부온도는 이러한 생체리듬 변화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기자의 심야배송 5일차 피부온도의 최고점은 새벽이 아니라 오후 1시18분이었다. 김 교수는 “심야 활동과 수면 부족으로 생체시계가 뒤틀릴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형태”라고 설명했다. 고정 주간배송을 하는 쿠팡 기사 문지훈(46·가명)씨는 피부온도의 최고점이 자정~새벽 1시로 관찰돼, 기준 시점(새벽 3~5시)과 2시간 정도 차이 날 뿐 리듬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피부온도의 ‘진폭’도 리듬 변화에 힌트를 준다. 심야배송 기사 김호준(43·가명)씨의 경우 하루 평균 피부온도와 최고온도의 차이가 6.48℃로 크게 벌어진 반면, 문지훈씨는 2.02℃였다. 기자 역시 심야배송을 할 땐 2.44℃였는데, 주간배송 시기엔 1.69℃로 줄어들었다. 이는 심야노동이 체온 리듬을 흔들고, 주간노동이 리듬을 다시 좁혀준다는 흐름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이 ‘밤에 일하면 언젠가는 ‘밤형 리듬’으로 완전히 적응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결과는 정반대의 사실을 말한다. 김 교수는 “심야노동자는 대부분 낮에 활동하도록 짜여 있는 생체시계를 유지한 채 밤에 일하는 미적응 상태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외국의 연구도 장기간 심야노동자 중 완전히 ‘밤형’으로 적응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보고한다.
김 교수는 기자가 2주간 심야·주간 택배기사로 일하며 기록한 생체신호는 한 가지를 명확히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심야노동은 수면을 흔들고, 회복을 방해하며, 생체시계를 뒤틀어 장기적인 건강위험을 높인다. 반대로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기본 리듬만 회복해도 몸은 놀랄 정도로 빠르게 안정된다. 즉, ‘피곤하다’는 느낌 뒤에는 실제로 수면·혈압·체온·신경계가 모두 뒤틀린 몸의 기록이 있었던 셈이다.
“시간 압박 있는 심야노동, 역학조사 반드시 필요”
생체리듬의 혼란은 단순히 피곤함이나 집중력 저하에서 끝나지 않는다. 김 교수는 “수면 박탈과 리듬 교란이 반복되면 교감신경 항진, 만성염증 반응, 혈압·혈당 조절의 불안정이 겹치면서 심혈관질환과 대사질환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 역시 심야 교대근무를 ‘인체 발암 가능 요인’(Group 2A)으로 분류한다. 장시간의 심야노동이 일부 암과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축적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겨레21의 실험 결과는 쿠팡의 심야배송 기사의 건강 악화가 이미 상당 부분 누적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번 실험에 도움을 준 전문가들은 심야배송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더 위험하다며, 장기적 관점에서의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전통 제조업과 달리 (쿠팡 심야배송은) 누적 효과 위험이 있기 때문에 곧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위험을 충분히 감지하지 못한 상태”라며 “정보가 충분하지 않고 독립계약자 신분이기 때문에 고위험 노동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교수(안전관리학)는 “개개인이 배송 작업으로 암에 걸렸다고 입증하기는 대단히 힘들지만, 경향성을 반드시 띨 것”이라며 “시간 압박이 있는 ‘의존형 노동’을 심야에 할 경우, 제대로 된 조사가 나오면 문제가 있을 거라고 본다. 역학조사가 반드시 필요하고, 원인 제공자(쿠팡)도 사전에 예방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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