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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잠든 곳’에 들어선 기념관… 신성일 생애 담았다

조선일보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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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잠든 곳’에 들어선 기념관… 신성일 생애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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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10년 보낸 경북 영천에
국내 첫 배우 중심 기념관 개관
2007년 배우 신성일은 “포도 맛이나 보러 오라”는 지인의 초청에 경북 영천의 포도밭을 찾았다. 마을을 둘러보던 그는 함께 간 지인에게 “여기 땅을 사서 주말에 놀러 올 찜질방을 만들자”고 했다. 작은 찜질방으로 시작했던 계획은 점점 커져 아예 눌러살 청기와 한옥이 됐다. 그곳에서 신성일은 2018년 숨질 때까지 생애 마지막 10년을 보냈다. 대구 출신인 그에게 ‘제2의 고향’이 된 경북 영천에 그의 이름을 딴 신성일기념관이 지난달 22일 개관했다. 배우의 이름을 내건 배우 중심 기념관으로는 국내 최초다.

지난 6일 신성일기념관이 들어선 영천시 괴연동 163번지 입구에서는 ‘신성일기념관 개관을 축하합니다’라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펄럭였다. ‘괴연동 주민 일동’ 명의로 된 플래카드를 지나면 그가 살던 한옥으로 접어드는 어귀에 ‘신성일, 별이 잠든 곳’이라는 안내판도 서 있다. 2008년 한옥이 착공했을 때만 해도 주민들의 거부감이 심했다. “유명인 때문에 시끄러워지는 것 아니냐”며 고깝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신성일은 산책길에 만나는 한 명 한 명에게 인사하고, 어쩌다 나눠주는 복숭아 한 쪽도 반갑게 받아먹으며 마음을 얻어갔다. 그도 점점 괴연동에 정이 들어 “여기에 영화 박물관을 지어 마을에 공헌하고 싶다”고 생전에 의지를 밝혔다. 아들 강석현(58)씨 등 유족은 한옥을 영천시에 기부채납하고, 영천시가 인근 부지까지 매입하면서 기념관 건립에 들어갔다.

지난 6일 배우 신성일이 마지막 10년을 보낸 경북 영천시 괴연동의 청기와 한옥에서 관광객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한옥 주위에 그의 출연작 사진을 담은 패널과 전신 모형이 전시돼 있다./신정선 기자

지난 6일 배우 신성일이 마지막 10년을 보낸 경북 영천시 괴연동의 청기와 한옥에서 관광객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한옥 주위에 그의 출연작 사진을 담은 패널과 전신 모형이 전시돼 있다./신정선 기자


기념관은 한옥 옆 부지에 들어섰다. 9946㎡(약 3000평) 부지에 2층 건물이다. 부지매입비를 포함해 영천시 예산 100억원이 들어갔다. 착공 6년 만에 문을 연 기념관은 가까운 대구는 물론 전라도 장수군에서 왔다는 팬들까지 관람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자전거나 산악 동호회 회원들이 한옥을 들렀다가 기념관까지 한꺼번에 둘러보는 경우가 많았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먼저 가로 3.5m, 세로 7m의 대형 사진이 맞는다. 영화 ‘맨발의 청춘’(1964) 때 모습으로, 사진 8512장을 모자이크해 만든 작품이다. 1950년 데뷔 이후 538편에 이르는 출연작을 남긴 그의 생애를 미디어아트로 보여주는 실감 영상실, ‘맨발의 청춘’ 음악다방을 배경으로 직접 영상을 촬영해 볼 수 있는 체험존, 디지털 화면 배경으로 레드카펫에 선 듯 사진을 찍어 보는 포토부스 등이 마련돼 있다. AI로 되살린 신성일 영상은 어색하게나마 고인의 목소리로 환영 인사를 전한다. 이날 미디어아트를 감상하던 영천 주민 임정희(55)씨는 “신성일은 그 시대 차은우 아니냐”며 “이렇게라도 자취를 느낄 수 있어 반갑다”고 말했다. 함께 온 임정남(61)씨는 “훌륭한 분이 동네에 계셔서 든든했는데 생전에 못 뵈어 아쉬운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렸다”고 했다.

지난 6일 경북 영천 괴연동 신성일기념관의 미디어아트 전시를 관람객들이 둘러보고 있다./신정선 기자

지난 6일 경북 영천 괴연동 신성일기념관의 미디어아트 전시를 관람객들이 둘러보고 있다./신정선 기자


인생이 곧 영화였던 그의 일상을 볼 수 있는 유품도 있다. 청룡영화상 인기상 10회 연속 수상이라는 전무후무 기록을 세웠던 트로피도 모두 전시돼 있다. 신성일이 가장 아꼈다는 트로피는 제1회 서울대 영화페스티벌에서 받은 ‘최악의 남우상’이다. “무한정 스타덤을 차지해 신인 발굴에 큰 차질을 빚고, 남자 배우는 무조건 잘생겨야 한다는 관념을 불러일으켰다”는 게 선정 이유였다. 신성일은 “실로 유쾌한 상”이라며 실제 시상식에 참석해 흔쾌히 상을 받아 간직했다.

여러 전시품마다 한국 영화사가 빼곡하다. 당시 영화계 사정이 그대로 보이는 출연계약서, 그가 수기로 작성한 출연료 수령 기록부도 있다. 교사와 공무원 월급이 몇 만원이던 시절, 출연료 65만원을 3차례에 나눠받은 기록도 꼼꼼하게 남겼다. 그와 부인 엄앵란씨가 워커힐호텔에서 올린 결혼식은 영상으로 상영된다. 당시 하객 4000명이 몰린 호사스러운 행사였다. 앙드레 김의 아들 김중도씨가 복원한 신성일의 턱시도, 엄앵란의 드레스와 티아라는 실물로 전시 중이다. 다만, 그의 출연작을 감상할 영사실이 없는 점은 큰 아쉬움을 남겼다.


경북 영천 괴연동 신성일기념관에 마련된 포토존.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처럼 화려한 배경을 바탕으로 사진을 찍어볼 수 있다./신정선 기자

경북 영천 괴연동 신성일기념관에 마련된 포토존.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처럼 화려한 배경을 바탕으로 사진을 찍어볼 수 있다./신정선 기자


이번 기념관 건립은 여러 영화인이 함께 나서 성사됐다. ‘신성일기념관 영화인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정지영 감독은 7일 본지 통화에서 “배우 신성일은 전 세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큰 족적을 남긴 영화인”이라며 “앞으로도 기념관 발전을 위해 위원회 차원에서 영천시를 돕겠다”고 말했다. 공동위원장은 정 감독 외에도 배우 장미희, 강우석 감독 등이 맡았다. 위원으로는 배우 박중훈, 이준익 감독, 배우 강하늘 등 50여 명의 영화인이 참여했다.

신성일의 유언은 “한국 영화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성일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였다. 아들 강석현씨 부부와 함께 임종을 지켰던 채희덕 전 보좌관은 “그 말씀을 하시더니 ‘그럼 전화 끊겠습니다’라고 하셨다”며 “아마도 흐릿한 정신에 마지막으로 전화 인터뷰를 하시는 줄 착각해 남기신 말씀인 것 같다”고 전했다. 아들 강석현 씨는 본지 통화에서 “아버지는 뼛속까지 영화인이셨다”며 “기념관이 영화 발전을 위해 꾸준히 기여하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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