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포커스-움츠러드는 경제관료]
◆세종청사 '각사도생'
상사 지시 녹음 등 불신 문화 만연
MZ 사무관 기재부 선호도 곤두박질
4·5급, 민간 기업으로 이직 줄이어
"사명감 갖고 일할분위기 만들어줘야"
◆세종청사 '각사도생'
상사 지시 녹음 등 불신 문화 만연
MZ 사무관 기재부 선호도 곤두박질
4·5급, 민간 기업으로 이직 줄이어
"사명감 갖고 일할분위기 만들어줘야"
강형석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의 직권면직 소식이 전해진 이달 5일 저녁,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의 분위기는 적막감이 돌 정도로 뒤숭숭했다. 경제 부처의 한 사무관은 “차관이 정무직이라고는 하지만 새 정부가 임명한 인사를 하루아침에 쫓아내는 것은 충격이었다”며 “납득할 만한 이유 설명도 없이 고위 공무원을 하루아침에 물러나게 하는 모습에 자괴감이 들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한민국 경제정책의 산실인 세종 관가가 사정(司正) 광풍에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1년 전 비상계엄의 충격이 채 가시기 전에 ‘12·3 비상계엄’에 가담한 공무원을 조사하는 태스크포스(TF)가 가동한 데 이어 이번에는 대통령 지시로 현직 차관이 옷을 벗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갑질과 비위 의혹이지만 세종 관가에서는 이를 ‘군기 잡기용 시범 케이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 부처의 한 국장급 간부는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현직 차관의 면직 처분을 알린 것은 지난 20여 년간의 공직 생활 중에서도 없었던 것 같다”며 “이제는 정책의 타당성을 따지는 것보다 예전에 추진한 정책들이 혹시나 감사원이나 수사기관의 타깃이 되지 않을까 불안하다”고 말했다. 고강도 사정 바람이 몰아치면서 ‘적극적으로 일하면 다친다’는 패배주의가 공직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권이 바뀔 때면 과거에도 인사·감찰을 통한 메시지 주기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방식이 이전보다 더 거칠어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구성돼 가동을 시작한 ‘내란TF’도 공직사회 전반에 공포감을 불러오고 있다. 급기야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 ‘소극적 가담자는 선처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렸지만 언제든 자신들이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다는 불안감이 쉽게 가시지 않는 분위기다. 실제 내란TF에 내부 투서와 진정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부처의 또 다른 사무관은 “문재인 정부 때부터 상사의 지시 사항을 메모하는 것이 기본이 됐고 최근에는 동료와의 대화도 녹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했다.
정책 주도권을 국회에 빼앗기고 소신을 갖고 일하기 어려운 문화가 만들어지면서 관가를 떠나는 ‘탈(脫)세종’ 행렬도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재경직의 꽃’이라 불리던 기획재정부의 인력 이탈은 심각한 수준이다. 과거 고위직 퇴직 후 산하기관장으로 이동하던 관행과 달리 최근에는 실무의 핵심인 팀장급(4급), 사무관급(5급) 젊은 관료들이 민간기업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올 6월 기재부의 핵심 보직을 거친 4급 서기관 팀장이 쿠팡으로 이직한 데 이어 3급 부이사관급 간부도 중고 거래 플랫폼인 번개장터의 임원(이사) 취업 심사를 통과했다. 보수적인 기재부 조직 문화에서는 전례를 찾기 힘든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젊은 사무관들 사이에서 기재부 기피 현상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해 기재부에 배치된 24명의 수급 사무관 가운데 5명은 애초 희망 부서로 기재부를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부처 중 가장 높은 선호도를 자랑하던 기재부가 정원을 채우는 데조차 어려움을 겪은 셈이다. 기재부의 한 사무관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합격자 발표가 있었던 1일에는 분위기가 더 가라앉았다”며 “동기들끼리 모이면 ‘이직 스터디’ 정보를 공유하는 게 일상”이라고 귀띔했다.
문제는 이 같은 공직사회의 동요가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내수 부진 등 시급한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정책을 입안해야 할 공무원들의 손발이 묶이면서 정책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권 교체기에 공무원 조직이 흔들릴 수밖에 없고 특히 현 상황에서는 동요가 더 클 수 있다”면서 “경제난 속에 정부가 추진하는 6대 분야 혁신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공무원이 움직일 수 있는 긍정적 출구전략과 함께 재량을 갖고 소신 있게 결정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민우 기자 ingaghi@sedaily.com유현욱 기자 abc@sedaily.com배상윤 기자 prize_y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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