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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4 시대...메모리 반도체 일본 소부장 의존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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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4 시대...메모리 반도체 일본 소부장 의존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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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대건 기자]
[사진: AGC 그룹]

[사진: AGC 그룹]


[디지털투데이 석대건 기자]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의 생산 경쟁력은 일본 소부장 기업들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2026년부터 본격화될 HBM4 시대를 맞아 한국의 일본 의존도는 오히려 더 심화될 전망이다.

HBM 제조의 전 공정에 걸쳐 일본 소부장 기업들의 지배력은 절대적이다. 웨이퍼를 얇게 연삭하고 절단하는 초기 공정은 디스코가 장비 시장의 70~80%를 장악하고 있으며, 칩과 칩을 접착하는 NCF와 EMC 소재는 레조낙이, 언더필 소재는 나믹스가 각각 글로벌 1~2위를 차지한다.

GPU와 HBM을 연결하는 FC-BGA 기판은 이비덴과 신코전기가 과점하고 있으며, 차세대 HBM4에 필수적인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는 도쿄일렉트론과 캐논이 주도한다. 포토레지스트 공정의 도쿄오카공업, 몰딩 장비의 토와까지 포함하면 HBM 생산의 핵심 공정마다 일본 기업 1~2개사가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는 구조다.

HBM의 핵심은 웨이퍼를 얇게 갈아내고 자르는 공정이다. 이 분야에서 일본 디스코(Disco)의 지배력은 압도적이다. 욜그룹 리포트에 따르면 디스코는 웨이퍼 그라인더 및 다이싱 쏘 시장에서 70~8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HBM용 초박형 웨이퍼 가공 장비는 사실상 100%에 육박한다. HBM 적층 단수가 8단에서 12단, 16단으로 높아질수록 더 정밀한 가공이 필요해 디스코 장비 없이는 수율 확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소재 분야도 마찬가지다. 레조낙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레조낙이 HBM 적층 시 칩을 보호하고 접착하는 NCF와 TIM(열전도물질) 소재에서 글로벌 상위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레조낙은 쇼와덴코와 히타치케미칼이 합병해 탄생한 기업으로, 2024년 7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컨소시엄 'JOINT2'를 주도하며 기술 개발을 이끌고 있다.

후지키메라연구소에 따르면 레조낙의 언더필 소재가 2023년 기준 글로벌 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나믹스(Namics)도 언더필 소재 분야의 주요 기업으로 HBM 공정 기업에 필수적인 파트너다.


◆2026년 HBM4 본격 양산 앞두고 기술 의존도 상승 가능성↑

엔비디아 GPU 패키징에 들어가는 FC-BGA 기판 시장도 일본 기업들이 강하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이비덴(Ibiden)과 신코전기(Shinko)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과거 이들의생산량 조절 이후 생긴 공급 부족이 지금의 AI 반도체 생산의 병목 현상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HBM4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일본 기업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HBM4부터는 기존 MR-MUF 방식에서 범프 없는 하이브리드 본딩으로 공정이 전환된다. 이 분야에서 도쿄일렉트론(TEL)과 캐논(Canon)의 본딩 장비가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테크인사이츠에 따르면 16단 이상 적층이 필요한 HBM4에서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 도입은 필수적이며, 일본 장비 없이는 양산이 어려운 상황이다.


삼성전자도 이런 현실을 인식하고 일본 요코하마에 패키징 연구 거점을 마련하며 일본 생태계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단순한 구매 관계를 넘어 기술 동맹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삼성전자는 2027년 3월 가동을 목표로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지구에 2500억원 규모의 최첨단 패키징 연구소를 건설하고 있으며, 요코하마 첨단 R&D 지구 내 대형 빌딩까지 별도로 매입했다. 요코하마시도 삼성전자를 '기업 입지 촉진 조례 인정 사업자'로 지정하고 250억엔의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첨단 패키징 기술에서 대만 TSMC와의 격차를 줄이려면, 소부장 생태계가 집적된 일본 현지에서 공동 연구개발을 추진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전략적 선택이다.



◆미국까지 진출하는 일본 소부장 기술 동맹

오히려 일본 소부장 기업들은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한 기술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레조낙이 주도하는 'US-JOINT' 컨소시엄은 2024년 7월 일본과 미국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 10개사로 출발했다.

일본에서는 레조낙과 함께 MEC, 나믹스, 알박, 도쿄오카공업(TOK), 토와 등이 참여했고, 미국에서는 애지머스인더스트리얼, KLA, 쿨리케앤소파인더스트리즈, 모지스레이크인더스트리즈가 합류했다.

여기에 일본 토판홀딩스까지 참여하며 컨소시엄 규모를 11개사로 확대했다. 토판은 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FC-BGA) 등 첨단 기판 기술을 보유했다. 올해 본격 가동될 US-JOINT는 글로벌 빅테크와 주요 반도체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차세대 패키징 기술 개발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일본 경제산업성도 2030년까지 자국 반도체 매출을 15조엔으로 끌어올리는 전략을 발표했다. 1980년대 후반 50%에 달했던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현재 10%로 떨어진 상황에서, 후공정 패키징 분야의 기술 우위를 활용해 반도체 강국 지위를 되찾겠다는 전략이다.

프리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첨단 패키징 시장은 올해 396억달러에서 2034년 825억달러로 연평균 8.5% 성장할 전망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전체 시장의 65%를 차지하고 있지만, 핵심 장비와 소재는 여전히 일본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한국이 1위지만, 그 뒤에는 일본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며 "HBM4 시대에는 일본 소부장 기업들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수준으로 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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