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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처럼’ 종묘 앞 재개발?…세계유산도 아닌 곳과 비교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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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처럼’ 종묘 앞 재개발?…세계유산도 아닌 곳과 비교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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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을 중심으로 한 종묘 권역을 남쪽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전경 사진. 국가유산청 제공

정전을 중심으로 한 종묘 권역을 남쪽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전경 사진. 국가유산청 제공


조선 왕실 사당인 종묘와 일본 메이지 일왕(1852~1912)의 사당 격인 메이지신궁(메이지진구)이 최근 입도마에 올랐다. 서울과 도쿄가 두 대표 역사 유산을 두고 판박이처럼 닮은 역사 환경 보존 논란에 휩싸인 까닭이다.



서울에서 세계유산 종묘 앞 초고층 재개발 공방이 본격화한 가운데, 도쿄에서는 근대 일본을 일으켜 세운 메이지 일왕의 사당인 시부야구 메이지신궁 부근 고층 재개발과 수림 훼손 논란이 수년째 펼쳐지고 있다.



발단은 2020년대 들어 메이지신궁 신사 쪽과 미쓰이부동산, 일본스포츠진흥센터, 이토추상사 등 개발 주체들이 연합해 외원(가이엔)이라고 하는 신사 바깥 영역 28만4000㎡(8만5000여평)에 있는 수림 지구 나무들을 700그루 이상 벌채한 뒤 인근 야구장·럭비장을 재건축하고 고층 빌딩 2동을 짓는 등의 재개발 계획을 공표하고, 이를 도쿄도가 추인하면서부터다. 앞서 2022년 유네스코 자문기관 이코모스(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일본위원회가 재개발 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수림과 경관 보호를 제언한 보고서를 냈지만, 사업주들은 눈여겨보지 않았다.



일본 도쿄 메이지신궁 내부의 기둥(도리이)과 수림의 모습. 연합뉴스

일본 도쿄 메이지신궁 내부의 기둥(도리이)과 수림의 모습. 연합뉴스


급기야 외원 재개발 프로젝트가 지난 2023년 3월 착공됐다. 이듬해인 2024년 9월, 사업주들은 시민 반발을 의식해 계획한 분량보다 100여그루 줄인 600여그루를 벌채하고, 나무 이식과 새 나무 심기로 전체 수목 수는 늘리겠다는 수정안을 도쿄도에 냈고, 그해 10월부터 일부 수목 벌채 및 이식 작업과 외원 옛길 철거 작업을 강행했다. 이후 신사 주위의 길에 늘어선 100년 넘은 은행나무 가로수 등의 역사적 경관과 녹지가 파괴되는 상황이 이어지자 주민, 전문가, 예술가, 시민 단체들의 거센 비판과 반대운동이 벌어지면서 프로젝트 작업은 순조롭게 진척되지 않았다.



평소 이곳 야구장과 가로수길을 즐겨 거닐며 소설과 수필의 글감으로도 소개했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절대 반대 입장을 밝혔고,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는 2023년 3월 숨지기 직전 도쿄도지사에게 재개발을 재고해달라고 간청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20만명 이상이 재개발 반대 온라인 서명에 참여했고, 시민단체들의 시위가 이어지면서 공기는 계속 지연되고 있다.



2022년 10월3일, 이코모스(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일본위원회가 ‘메이지신궁 외원의 보존과 계승에 대한 제언’이란 이름으로 공식 발표한 보고서의 표지 도면. 재개발로 훼손 위험에 처한 메이지신궁의 외원 권역을 담고 있다.

2022년 10월3일, 이코모스(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일본위원회가 ‘메이지신궁 외원의 보존과 계승에 대한 제언’이란 이름으로 공식 발표한 보고서의 표지 도면. 재개발로 훼손 위험에 처한 메이지신궁의 외원 권역을 담고 있다.


결국 사업주 대표인 미쓰이부동산은 지난 9월 프로젝트 완성 시점을 기존 2036년에서 1년 연기하는 사업계획 변경안을 도쿄도에 제출해 인가받았지만, 2037년까지 원만하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 많다. 사전에 재개발 계획 전반을 공개하고 시민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불신감이 만연해 있는데다, 일부 주민들이 낸 사업인가 취소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메이지신궁은 한일병합과 침략의 장본인이기도 한 메이지 일왕이 1912년 숨진 뒤 국가 신도사상 계몽과 시민 휴식 공원 마련 용도로 1920년 만들어졌다. 외원은 많은 시민들이 돈과 나무를 바치고, 직접 근로 봉사하면서 만들어 신궁에 봉헌한 공원 성격의 공간이다. 시민 소유의 공공시설이자 풍치지구란 점이 반대 운동에 더욱 명분을 심어주는 양상이다.



현지 전문가들은 이 계획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서울시의 종묘 초고층 개발안처럼 단 하나의 플랜만 제시하면서 사업을 강행하려는 점을 꼽고있다. 단순히 보존지구의 수목을 벌채하고 역사 환경을 소거하는 개발 방식이 공원 기능 정비나 내원 보호가 아니라 용적률의 축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낳는 초고층 빌딩 건설에 주력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현재 도쿄역과 주변 고층 빌딩군의 풍경. 한겨레 자료사진

현재 도쿄역과 주변 고층 빌딩군의 풍경. 한겨레 자료사진


이런 논란은 몇년 전 조선일보, 서울신문 등 국내 언론에서도 비중 있게 보도했지만, 최근 종묘 재개발 공방 사태 이후로는 일체 국내 언론에서 언급되지 않고 있다. 정작 일부 보수 언론과 서울시는 지난 2000년대 이후 진행돼온 도쿄 도심 황궁(고쿄)과 도쿄역 일대의 초고층 재개발 사업을 앞선 모범 사례로 연일 부각시키는 중이다.



상당수 전문가의 시각은 다르다. 황궁과 도쿄역 근처 고층 빌딩 개발은 20세기 초반 다이쇼 시대부터 마루노우치, 유라쿠초 일대 지역의 금융가·번화가 등에서 진행된 근대적 개념의 고층 고밀도 개발에 뿌리를 두고 있고, 1940년대 태평양전쟁 대공습 이래 도심 일대가 완전히 초토화해 사실상 오래된 역사 유산이 사멸된 도시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500년간 성역으로 존재하면서 수도 서울의 정신적·지정학적 기반이 됐고, 20세기 식민지배와 전란을 거치면서도 내부 경역이 거의 온전하게 보존된 국내 세계유산 1호 종묘와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라 비교 자체가 무리라는 것이다.



건축사학자인 김정동 목원대 명예교수는 “일본 도쿄에는 유교 국가 수도 특유의 종묘사직이 없어, 현지 연구자들은 종묘사직이 보존된 서울의 역사도시 구조를 매우 부러워하곤 한다. 세계유산도 아니고 근대기 형성된 건물인 도쿄역이나 일왕 황궁 주변의 재개발과 견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본다”고 짚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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