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12월 3일, 비상계엄으로 국회가 봉쇄되며 민주주의의 심장이 멈췄다. 촛불 시민들은 장갑차를 막아섰고, 국회의원들은 담벼락을 넘어 본회의장을 향했다. 헌법을 짓밟으려던 시도는 민주주의 시민들의 힘으로 무너졌다. 암흑 같던 계엄령은 역사로 남았다. 그 어둠 속에서 깨어난 우리는 한걸음씩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간다. 국회의사당을 에둘러가는 차량들의 환한 불빛처럼. / 사진=뉴스1 |
"어떻게 구한 세상인데, 죽은 자들이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살 만큼 살았으니 나를 총으로 쏘고 넘어가라."
"이제 우리는 다 늙은이고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만약에 발포하는 상황이 오면 우리 노인들이 가장 앞줄에 섭시다."
"국회에 가지 않는 것이 더 무서웠다."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나갔다."
지난해 12월3일 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시민들 수천명이 모였다. 택시기사들은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국회 앞으로 택시를 모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계엄이 선포된 지 불과 몇 십분만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하늘에는 헬기가 떴다. 국회 담장을 계엄군이 넘었다. 실탄은 없었다고 하지만 겉보기에는 무장한 모습이었다. 장갑차와 황토색 군차량도 눈에 띄었다. 과거 계엄을 경험한 이들에겐 언제 총소리가 들려도 이상하지 않은 밤이었다.
시민들은 맨몸이었다.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이름 모를 수많은 시민들이 그날 민주주의를 지켰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다'는 기억이 또 하나 생긴 날이었다. 비상계엄이 해제되고 이튿날 새로운 해가 떠올랐다. 밤사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했다. 하지만 분명 12월3일과 그 이후는 다른 날이었다.
이후 우리는 역사의 흐름을 함께 보고 있다. 계엄을 선포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자리에서 쫓겨났다. 우여곡절 끝에 구속됐고 재판을 받고 있다. 함께 계엄을 주도했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을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특검은 내란 관련해 첫 구형을 하면서 "내란은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라고 강조했다.
1년전 그날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이 '아직도'라도 생각할 수 있지만 사법부는 이례적인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각 재판부가 내란 청산과 종식을 위해 거의 매주 재판을 열고 있다. 정규 근무시간인 오후 6시를 넘어서까지 재판이 진행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특검법에 따라 공개된 재판 영상 중에는 하루에만 5시간 이상 진행된 재판도 수두룩하다.
재판부가 서두르고 있음에도 아직 '단죄'를 내린 곳은 없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선고가 내년 1월21일로 가장 빠를 것으로 보인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전 대통령이 내년 초 1심 판결을 받더라도 끝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대충 할 수 있는 재판도 아니다. 내란 우두머리와 내란 관련해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자들은 '되돌릴 수 없는' 처벌인 사형에 처할 수 있다. 특히 내란 우두머리는 법정형이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뿐이다.
내란 청산에는 속도가 필요하다. 너무 지체하면 피로감이 쌓인다. AI(인공지능) 시대에도 발빠르게 대비해야 한다. 이미 계엄 등으로 글로벌 흐름에 뒤처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중함도 필요하다. 죄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겪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정부는 '헌법존중 정부혁신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기관별로 조사단도 꾸렸다. 국무총리실에는 총괄 TF가 마련됐고 군, 검찰, 경찰, 기획재정부 등 12개 기관은 '집중 점검기관'으로 정해졌다. 비상계엄에 관여했던 공무원을 솎아내겠다는 건데 벌써 악의적인 투서가 난무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각 기관에 있는 TF 조사단이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한사람 한사람 꼼꼼히 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
1년전 그날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이 바라는 게 무엇일까. 그날 '죽음'을 무릅쓰고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들은 특정 정당을 위해서 국회로 달려간 게 아니다. 특정한 누구를 위해, 특정 정파를 위해 민주주의를 지킨 게 아니다. 그들은 조용한 일상에 커다란 금을 낸 내란 우두머리 등에게 무거운 단죄를 내리길 바랄 것이다. 못지않게 대한민국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딛길 바랄 것이다. 여기엔 대한민국 모두가 함께 하길 바랄 것이다.
이학렬 사회부장 tootsi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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