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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라팔 100대 사겠다” 현금 없는 우크라가 믿는 구석은

조선일보 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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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라팔 100대 사겠다” 현금 없는 우크라가 믿는 구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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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동결자산 2100억 유로 사용 방안은 EU 내 합의 못 이뤄
지상전 계속 밀리는 현 상황에서 전투기는 절실하지도 않아
러시아도 피격ㆍ손실 우려해, 최신 전투기 거의 투입 안 해
”10년간 라팔 100대 산다”지만, 1대 제작에 2~3년 소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7일 파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만나 앞으로 10년간 프랑스산(産) 4.5세대 다목적 전투기인 라팔 F4 100대를 구매하겠다는 의향 동의서에 서명했다. 두 정상은 이를 모두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했다. 우크라이나는 이에 앞서 지난달 22일에는 스웨덴의 경량 다목적 전투기인 그리펜 E 전투기를 최대 150대 구매한다는 의향서도 체결했다. 이대로만 된다면, 우크라이나는 프랑스(207대)를 누르고, 유럽에서 러시아에 이어 제2의 전투기 보유국가가 된다.

17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파리 근교 빌라쿠블레 공군기지에 라팔 전투기가 세워져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17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파리 근교 빌라쿠블레 공군기지에 라팔 전투기가 세워져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전투기를 이렇게 대규모로 사고 유지할 돈이 전혀 없다. 막대한 재정 적자를 겪는 프랑스도 원조ㆍ대여할 여력이 없다. 러시아 동결자산을 사용하겠다는 것이지만, 이에 대한 유럽연합(EU) 내 합의는 요원하다.

게다가 라팔 전투기를 생산하는 다소(Dassault) 측이 라팔 F4 한 대 제작에 소요되는 기간은 2~3년. 라팔은 지난 달 현재 233대의 주문이 밀려 있다고 밝혔다. 다소 측은 복수의 생산라인에서 앞으로 5년간 이 주문량을 소화하겠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에 팔 100대를 추가로 생산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스웨덴 사브(Saab)사의 첫 그리펜 E도 3년은 기다려야 인도된다.

2023년 7월 미디어 데이에 공개된 스웨덴 공군의 사브 JAS 39 그리펜 전투기.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그리펜 E 기종을 최대 150대 사겠다는 구매의향서를 체결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2023년 7월 미디어 데이에 공개된 스웨덴 공군의 사브 JAS 39 그리펜 전투기.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그리펜 E 기종을 최대 150대 사겠다는 구매의향서를 체결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전선에선 군사ㆍ산업적 요충지인 포크로우스크가 8대1의 병력 우세를 앞세운 러시아군 수중에 떨어지기 직전이다. 포크로우스크 점령은 러시아가 최근 2년간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거두는 최대 승리가 된다. 이 상황에서 전투기는 우크라이나에 다급한 무기가 아니다.

그래서 서방의 군사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의 전투기 대량 구매의향서 체결 기사는 뉴스의 머릿기사(headline)감으로나 적절할 뿐, 실현 가능성이나 적절성 면에선 “의문투성이”라는 지적이 많다.

◇우크라이나, 내년 봄이면 현금 고갈


라팔 구매 계획의 핵심은 자금 조달이다. 프랑스와 스웨덴 두 나라로부터 250대의 전투기를 구매하고 또 이를 운용ㆍ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막대하다.

예를 들어, 남미의 콜롬비아는 지난 15일 스웨덴의 사브로부터 17대의 그리펜 E/F를 구입하기 위해 31억 유로(36억 달러)를 지불하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전투기는 또 매년 수백만 달러의 운용ㆍ정비 비용이 발생한다. 아랍에미리트가 2021년 80대의 라팔을 계약했을 때, 총액은 장착 무기를 빼고도 160억 달러였다.

반면에, EU 관계자들은 우크라이나가 내년 봄이면 현금이 바닥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프랑스 연정(聯政)은 무려 3.3조 유로에 달하는 국가 부채와 재정 적자를 줄이려다가 계속 무너졌다. 두 나라 모두 라팔 100대를 구매할 여력이 없다.


두 나라가 기대하는 것은 EU가 EU 국가들에 동결된 약 2100억 유로의 러시아 자산을 우크라이나에 대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법적ㆍ정치적 문제가 발생하면, EU 국가 전체가 막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

◇러시아도 최신예 전투기는 투입 안 시켜

현재 러시아군은 도네츠크주의 광산 도시인 포크로우스크의 4분의 3 이상을 이미 차지해, 우크라이나군 1만 명, 러시아군 2만 명이 죽은2023년 5월 바흐무트 점령 이래 2년반만의 큰 승리를 앞두고 있다. 러시아군 17만 명이 이 도시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끝까지 버텨 빈약한 병력을 희생시키더라도 러시아군에게 막대한 병력 손실을 초래하느냐, 아니면 제2선으로 후퇴해 재정비하느냐는 선택만을 남겨 놓고 있다.


러시아군이 지난 10일 드론 공격이 불가능할 정도로 잔뜩 낀 안개 속에서 포크로우스크 시내로 진입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스크린샷. 우크라이나군도 이날 300명의 러시아군 병사가 시내로 진입했다고 밝혔다./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지난 10일 드론 공격이 불가능할 정도로 잔뜩 낀 안개 속에서 포크로우스크 시내로 진입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스크린샷. 우크라이나군도 이날 300명의 러시아군 병사가 시내로 진입했다고 밝혔다./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투기는 모두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투기는 제한된 수량의 프랑스ㆍ영국간 스톰 섀도우 공대지(空對地)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드론ㆍ미사일 요격용으로 쓰인다.

러시아 역시 Su-57과 같은 최첨단 5세대 전투기나 Su-35S 4.5세대 전투기는 거의 투입하지 않는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에 요격돼 손실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후방이나 러시아 본토에서 전폭기나 폭격기를 띄워 활공폭탄이나 미사일을 발사하지만 지금까지 약 400대가 우크라이나 방공 시스템에 격추됐다.

물론 우크라이나가 프랑스ㆍ스웨덴과 각각 체결한 구매의향서는 구매하겠다는 정치적 약속이지, 정식 구매계약서는 아니다.

닉 커닝햄 국방분석가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우크라이나의 라팔 100대 구매 의향은 프랑스를 설득해서 EU 본부로 하여금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자국에 풀도록 하려는 정치적 목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의 연구원 레오 페리아-페네이는 “현재로서는 그저 허풍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군사전문 매체 TWZ는 “라팔과 그리펜 E는 우크라이나 전력에서 가장 첨단 전투기가 되겠지만, 한 가지 전투기라도 대량 확보하는 게 실제 가능한지는 큰 의문”이라고 했다.

[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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