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아빠의 육아휴직기] < 38주차 > 육아휴직 못 쓰는 또래 아빠들의 사정
자신도 이제 다 컸다고 느끼는지 부쩍 어른들의 옷과 신발을 탐하는 아기. 어느새 폭풍 성장해서 저 옷이 맞게 되는 날이 올까봐 설레고 긴장된다. /사진=최우영 기자 |
육아휴직 초기 월 250만원을 받던 휴직급여가 7개월차부터 160만원으로 줄었다. 빠듯한 살림에 골치 아파하면서 주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래도 네가 부럽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여건 자체가 부럽다는 뜻이다.
주변에 육아휴직을 쓰는 아빠들이 늘어나고는 있다지만 사실 '정규직 월급쟁이'라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고용보험 없이 몸을 갈아 넣는 1인 자영업자들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그나마 고용보험에 가입된 직장인들도 여전히 경직된 회사 분위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못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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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직장인들보다 세금은 더 많이 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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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자영업자인 한 친구는 1년에 3일 이상 연속으로 쉬는 때가 없다. 매일 새벽에 나가 가게 문을 열고 저녁 늦게 문을 닫는다. 두 아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늦저녁이나 주말로 한정된다. 가끔 아내가 가게 앞으로 아이들 데리고 지나가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고 한다.
또 다른 자영업자 친구는 주말에만 맨정신의 아들 얼굴을 본다. 아직 아이가 너무 어려 저녁에 일찍 잠드는 탓이다. 이 친구는 "아이 얼굴을 자주 보고 싶지만 그렇다고 가게 문을 닫으면 아이 밥 먹일 돈을 못 벌지 않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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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4일 새벽 인천의 한 농산물도매시장. 아이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새벽부터 허겁지겁 출근한 아빠들이 얼마나 많을까. /사진=뉴시스 |
1인 자영업자인 한 친구는 1년에 3일 이상 연속으로 쉬는 때가 없다. 매일 새벽에 나가 가게 문을 열고 저녁 늦게 문을 닫는다. 두 아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늦저녁이나 주말로 한정된다. 가끔 아내가 가게 앞으로 아이들 데리고 지나가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고 한다.
또 다른 자영업자 친구는 주말에만 맨정신의 아들 얼굴을 본다. 아직 아이가 너무 어려 저녁에 일찍 잠드는 탓이다. 이 친구는 "아이 얼굴을 자주 보고 싶지만 그렇다고 가게 문을 닫으면 아이 밥 먹일 돈을 못 벌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친구들은 직장인의 육아휴직을 두고 "월 160만원만 받더라도 일 안 하고 몇 달만 육아에 집중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고용보험이 직장 가입자들에게 주로 혜택을 주는 데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평상시에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때에 따라 직장인들보다 더 많은 돈을 나라에서 가져가는 데 비해 돌려받는 혜택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정작 나라에서 돈을 주고 육아휴직을 허용한다면 가게가 망하지 않을까. 한 친구는 "대체 인력을 고용할 돈만 지원받으면 된다"고 답했다. 실제로 육아휴직자가 발생하는 기업의 경우 대체인력을 구하면 고용노동부에서 인건비를 1440만원까지 지원받는다. 여기에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 서울 등 일부 지자체의 별도 지원금까지 더하면 최대 400만원가량의 인건비를 더 지원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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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보험료를 내도 육아휴직은 '그림의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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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23일부터 육아휴직 기간이 최장 1년에서 1년6개월로 확대됐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0개월'이다. /사진=뉴시스 |
자영업자 친구들의 하소연에 다른 직장인 친구가 딴지를 걸었다. "그래도 너희들은 고용보험료를 뜯기지나 않지. 나는 고용보험료를 내면서도 육아휴직을 못 쓴다"는 말이 이어졌다.
최근 몇 년 동안 가족 친화적인 사회 분위기가 퍼지면서 남성 육아휴직자가 많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직 많은 기업에서 남성 육아휴직은 '명목상의 제도'로만 남아있다. 육아휴직 얘기만 꺼내도 부서장과 '담배 타임'을 수차례 가져야 한다거나, 차라리 사직서를 쓰라고 종용받는다는 무시무시한 얘기가 이어졌다.
사업주가 근로자의 육아휴직 요청을 거절할 경우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최대 5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법은 멀고 사장님은 가까운 게 현실이다. 사장까지 갈 것도 없다. 당장 중간관리자들이 육아휴직 의사를 밝힌 직원을 쥐잡듯이 괴롭히며 휴직을 못 하도록 압박을 준다고 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한 친구는 "육아휴직은 '선구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명이 시작을 해야 남들도 용기를 내서 따라 한다는 것. 아직 남성 육아휴직 선례가 없는 회사에선 그 누구도 첫걸음을 떼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이 친구는 "창사 이래 남성 육아휴직이 없는 기업을 대상으로 '첫 사례' 발생 시 축하금을 주는 식의 정책도 검토해볼 만 하다"고 바라봤다.
비정규직은 말할 것도 없다. 2년 단위로 재계약을 반복하던 한 친구는 육아휴직에 들어가며 일자리를 잃었다. 고용보험에 가입했고 1년 이상 근무했기 때문에 육아휴직은 가능했다. 그런데 육아휴직 기간 중 계약 종료일이 겹쳐 있고, 이 경우 육아휴직이 자동 해제되면서 급여도 끊긴다고 한다. 계약을 연장하면 육아휴직도 연장되지만, 사업주는 당연히도 이 친구와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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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못 벌어도 아이 돌보고 싶은 이유 "너무 빨리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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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언제 이렇게 컸지?" 자녀의 폭풍 성장에 놀라는 조진웅 배우의 연기가 일품인 보험 광고. /사진=악사 다이렉트 |
자영업자, 정규직, 비정규직 아빠들이 일손을 놓고 아이를 돌보고 싶어하는 이유는 다 똑같다. 아이가 너무 빨리 크는 게 아쉽고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게 후회된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배우 조진웅이 나온 보험사 광고가 화제였다. 자동차 뒷자리 카시트에 앉아 "아빠!"를 외치던 갓난 아이가 어느새 조수석에 앉아 심드렁한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보며 "뭐?"라고 읊조렸다. 이를 보던 조진웅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언제 이렇게 컸지?"라고 되뇌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육아휴직을 사용한 지 어느덧 9개월차에 접어들었다. 잘 일어서지도 못하던 아이는 어느새 뛰어다닌다. 초기 이유식을 먹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아빠 엄마와 거의 비슷한 메뉴를 먹고 숟가락질도 직접 해보려 애쓴다. 지난해 겨울에 입혔던 옷들을 꺼내보니 길이가 맞는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바로 옆에서 아이가 커가는 순간들을 함께 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다. 여전히 월 160만원의 육아휴직급여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마저도 누리지 못하는 친구들의 속사정을 듣다 보면 불만을 말하기도 어려워진다. 내년 2월에 육아휴직이 끝나면 저녁과 주말에만 아이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처지가 되겠지만 그전까지 이 행복을 최대한 즐기며 육아의 어려움을 이겨내야겠다.
최우영 기자 yo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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