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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아들 살해 죄송” 흐느끼던 40대…“자유 달라” [그해 오늘]

이데일리 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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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아들 살해 죄송” 흐느끼던 40대…“자유 달라” [그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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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실직한 후 아내가 가계 이끌어가
“가족이 날 무시해” 폭력·폭언 하던 40대
결국 아내·아들 둘 살해…“어차피 사형 안 하잖아”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2022년 11월 17일 수원지검 안산지청 형사2부(부장검사 김재혁)는 아내와 10대 두 아들을 살해한 40대 고모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해당 사건은 ‘광명 세 모자 살인사건’으로 불리며 큰 파장이 일었는데, 고 씨는 미리 준비한 둔기와 흉기로 아내와 아들 두 명을 살해하곤 “다중인격”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2022년 10월 25일 경기 광명시 소하동의 아파트에서 일가족을 살해한 40대 고모 씨가 범행 뒤 PC방에 간 모습. (사진=JTBC 사건반장 캡처)

2022년 10월 25일 경기 광명시 소하동의 아파트에서 일가족을 살해한 40대 고모 씨가 범행 뒤 PC방에 간 모습. (사진=JTBC 사건반장 캡처)


사건은 같은 해 10월 25일 경기 광명시 소하동의 한 아파트에서 일어났다. 고 씨(당시 45세)는 이날 오후 11시 27분쯤 119에 가족이 숨져 있다고 신고했다.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과 경찰은 흉기에 찔린 채 살해된 아내(당시 42세)와 중학생인 큰아들(당시 15세), 둘째 아들(당시 10세)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런데 외부 침입 흔적이 없었던 점에 고 씨를 추궁했고 고 씨는 가족을 죽이지 않았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다 자택 주변에서 흉기와 피 묻은 옷 등이 발견되면서 고 씨는 자신의 범행을 시인했다.

경찰은 고 씨가 아내를 아파트 밖으로 전화해 불러낸 뒤 계단을 이용해 15층 집으로 올라간 것을 확인했다. 이후 집에서 큰아들을 살해하고, 약 5분 만에 귀가한 아내와 작은아들을 향해 연이어 흉기를 휘둘렀다.

범행 직후 고 씨는 CCTV 사각지대인 아파트 현관 비상계단 옆 창문을 통해 빠져나간 뒤 흉기와 당시 입고 있던 옷가지를 몰래 버린 정황도 드러났다. 그리곤 알리바이를 위해 PC방에 가서 애니메이션을 1시간가량 시청한 후 오후 11시 27분쯤 집으로 돌아와 신고한 것이었다.


사건 전 고 씨는 건강상의 이유로 약 2년 전부터 무직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 씨의 아내는 혼자 일을 하며 가계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고 씨는 가정불화를 겪다가 자신이 가족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과장된 생각을 반복한 끝에 모두 살해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그는 다소 횡설수설한 모습을 보이거나 다중인격임을 주장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는데 수사 과정에서 “나는 다중인격이다. 내 안에는 ‘명·소심이·쩐’이 산다”며 “PC방에 간 건 소심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10월 26일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신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고 씨는 ‘가족과의 불화’를 묻는 취재진에 “제가 잘못했다”“죄송하다”며 흐느꼈다. 그런데 이틀 뒤인 28일에는 단호한 목소리로 “8년 전에 기억을 잃고 8년 만에 코로나에 걸려 기억을 찾았다”며 “제 어머니는 버려졌고, 전 ATM 기계처럼 일만 시키고 그래서 울화가 차서 그런거 같다. 죄송하다”면서 살해한 가족에 책임을 전가하는 말을 했다.

전문가들은 고 씨가 “8년 전 기억을 잃었다”고 한 발언에 대해 “횡설수설한 발언으로 형량을 줄이기 위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또 고 씨의 다중인격이라는 주장에 대해 검찰은 “통합심리분석 결과 A씨가 주장한 기억상실증과 다중인격장애 모두 발견되지 않았다”며 거짓말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고 씨가 범행을 하기 3주 전부터 고 씨의 폭언과 폭행이 늘어나자 첫째 아들 A군이 아버지와의 대화를 모두 녹음해왔다는 점이다. 고 씨는 몰랐지만 A군은 사건 당일에도 이 모든 상황을 녹음하고 있었다.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15시간의 모든 상황이 녹음돼 있었고, 휴대전화를 발견한 경찰이 정지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녹음은 멈췄다.

30여개의 녹음 파일에는 녹음기를 켠 A군이 혼잣말로 “들어가기 무섭다. 죽진 않겠지”라며 두려움을 느끼는 듯한 발언이 담겼다. 사건 당일 녹음 파일에는 고 씨가 A군을 공격해 A군이 사망하기 직전 혼잣말로 A군 흉내를 내며 “나 죽는거죠?! 그렇지”라고 말했으며, 아내와 둘째 아들까지 살해하고 나선 “아디오스 잘가!”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담기기도 했다.

일가족 살해 범인 고 씨가 2022년 10월 28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경기 안산시 단원구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뉴스1)

일가족 살해 범인 고 씨가 2022년 10월 28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경기 안산시 단원구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뉴스1)


2023년 3월 31일 열린 1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고 씨에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 측은 “범행을 자백하고 있으나 다중인격장애와 기억상실을 앓고 있다는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하는 점을 보면 진심으로 자신의 범행을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리며 “이 사건 범행의 동기, 범행의 반인류성, 피해의 중대성 등 모든 양형요소를 종합하면 법정 최고형을 선고해 영원히 격리하는 게 마땅하다”고 밝혔다.

그러자 고 씨 측 변호인은 “기억상실과 다중인격을 이야기한 것은 심신미약이나 감형 위한 주장이 아닌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말한 것”이라며 “피해자와 유족에게 감히 사과한다는 말을 드리기도 송구하나 반성하고 있고 무거운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고 씨는 이날 최후진술에서 “내 모든 일은 내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다. 항소할 마음도 없다”면서도 재판부를 향해 “잠시나마 자유를 달라. 우리나라에선 사형 집행 안 하지 않나? 내 삶이 의미가 없는데 자유를 달라”고 언급하는 등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5월 12일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배우자와 친자식을 수십 차례 망치와 칼로 살해하는 등 통상적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의 잔혹성을 보였다”고 판시했다.

이어 “고 씨가 기억상실과 다중인격 등을 주장하고 있지만 정신감정 결과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면서도 “기억상실과 정체성 혼란이라는 피고인 진술은 구체적이고, 보통의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범행에 이른 것을 보면 정신감정으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범행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고 보인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심 판결 후 고 씨는 항소하지 않았으나 검찰은 사형을 요구하며 항소했고 그해 8월 29일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1심과 비교했을 때 양형 조건의 변화가 없고, 원심 판결이 그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이에 대해 양측은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