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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위기에 돌아온 뉴진스, 누가 진정성을 이야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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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위기에 돌아온 뉴진스, 누가 진정성을 이야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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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하입 나우]
<6> 뉴진스의 어도어 복귀

편집자주

김도훈 문화평론가가 요즘 대중문화의 '하입(Hype·과도한 열광이나 관심)' 현상을 예리한 시선으로 분석합니다.


그룹 뉴진스(왼쪽부터 하니, 민지, 혜인, 해린, 다니엘)가 3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어도어, 뉴진스 상대 기획사 지위보전 및 광고계약 체결 등 금지 가처분' 심문기일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그룹 뉴진스(왼쪽부터 하니, 민지, 혜인, 해린, 다니엘)가 3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어도어, 뉴진스 상대 기획사 지위보전 및 광고계약 체결 등 금지 가처분' 심문기일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딱히 아이돌을 좋아한 적은 없다. 아이돌도 딱히 내가 타깃은 아니었을 것이다. 40대를 타깃으로 하는 아이돌은 없다. 일단 나와 아이돌 역사를 좀 되새겨보자. 입대한 해 S.E.S.와 핑클이 데뷔했다. 고참들은 유진이냐 이효리냐를 두고 경쟁을 했다. 자기들이 뭐라고 경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군대는 축구도 격하고 팬심도 격하다. 일병은 호오가 없다. 호오가 있으면 곤란하다. 속으로는 있었다. 노래로 따지자면 나는 '아임 유어 걸(I'm Your Girl)' 팬이었다. '루비(Ruby)'가 나오자 마음이 좀 바뀌었다. 두 노래가 어떤 그룹 것인지 모른다면 당신은 이미 중년을 넘어서 노년으로 달리고 있는 나이일 것이다.

30대가 되자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등장했다. 아이돌 산업이 베수비오 화산처럼 폭발해 가요계를 폼페이처럼 묻어버리기 시작한 시기다. K팝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던 시절이다. 기획사들은 타깃을 넓게 잡았다. 팬덤 장사만 하지는 않았다. 물론 우리는 H.O.T와 젝스키스 시절부터 팬덤의 위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할 수 있는지를 목격했다. 당시 10대에게는 어떤 그룹을 좋아하느냐가 정체성이었다. 다만 노래는 항상 어느 정도 대중적이었다. 앨범에 사인회 초대권이나 이런저런 것들을 랜덤으로 넣어 덤핑하는 술수를 본격적으로 부리지는 않던 시절이다. 10대 주머니 털어먹는 것만큼이나 노래가 세대를 넘어 성공하는 것도 중요했다. ‘지(Gee)’와 ‘텔 미(Tell Me)’를 흥얼거리지 못한다면 당신은 이미 노년을 넘어 요양원으로 달리는 나이일 것이다.

40대가 되면 사람은 아이돌과 좀 멀어진다. 일단 따라 부르기가 힘들다. 영어가 섞여도 힘들다. 영어 랩은 더 힘들다. 나는 지난 10여 년간 아이돌 노래 중 NCT U의 ‘일곱 번째 감각’을 가장 좋아한다. 따라 부르는 건 힘들다. 게다가 아직도 NCT U와 NCT 127과 NCT 드림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요즘 아이돌 산업은 팬덤을 중심으로 미묘하고 미세하게 진화하는 바람에 팬덤이 될 나이를 넘어선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영포티가 젊은 척하려고 아이돌 파는 거 보기 싫다고? 나는 올해 쉰 살이 됐다. 영포티는 아니다. 영포티 담론으로부터 좀 탈출하고 싶다. 어쨌든 이 글을 읽는 50대 이상 독자들이 마지막으로 외워 부를 수 있었던 아이돌 노래는? 미쓰에이의 ‘굿 걸 배드 걸(Good Girl Bad Girl)’? 엑소의 ‘으르렁’? 최근의 답이 하나 있긴 하다. 뉴진스의 ‘디토(Ditto)’다. 다들 영어는 대충 얼버무리겠지만 ‘우후우 후우’ 소리를 듣는 순간 대충 따라 흥얼거리게 될 것이다. 안 된다면 당신은 이미 요양원 갈 나이도 넘어... 그만하자. 나이 먹는 것도 서럽다.

그룹 뉴진스. 어도어 제공

그룹 뉴진스. 어도어 제공


이 글은 뉴진스에 대한 글이지만 뉴진스 이야기는 별로 없다. 그 이름을 넣어 글을 쓰는 순간 어떤 반응이 나올지 예측가능한 탓이다. 아이돌에 관심 없는 독자가 알아야 할 정보는 하나다. 한국을 뒤흔든 전속계약 소송을 벌이던 뉴진스 멤버들이 다시 소속사 하이브 산하 레이블 어도어로 복귀한다는 것이다. 축하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다른 매체 칼럼들을 좀 찾아봤다. ‘의구심’ ‘진의’ ‘온도차’ ‘진정성’ 등의 단어만 넘실거린다. 누구의 의구심? 누구가 진의를 의심하나? 온도차는 모르겠고 글의 온도가 미지근하다는 건 알겠다. 진정성이라는 단어는 참 재미있다. 오랜만에 소고기 사주는 친구 진정성도 모르는 우리가 언제부터 연예계 진정성까지 궁금해했나. 나는 내 진정성도 잘 모르는 처지라 알 길이 없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사운드트랙(OST)과 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그래미 후보에 올랐다. 기적적이다. 다만 이건 천장을 친 걸지도 모른다. K팝 전성시대인 것 같다만 지난해부터 산업 내부 사람들은 근심을 시작했다. ‘성장이 멈춘 K팝’ ‘걸그룹 산업 위축’ 같은 문장들이 지난 몇 달간 기사 제목으로 등장했다. 이런 시기에 중요한 건 드물게 노래로 세대를 결합하고 해외 시장서 드문 폭발력을 증명한 슈퍼 그룹의 귀환이다. 슬프지만 ‘K무비’는 이미 내리막길이다. 크고 치명적인 이유 중 하나는 다음 세대를 발굴하고 키우지 못해서다. ‘소녀들을 응원하자’ 이런 감상적인 소리 쓸 생각도 없다.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살려야 한다. 누가 그랬듯이, 이제 삐지지 말자. 삐질 시기가 아니다.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