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도심 한복판에 신발을 벗어야 이용할 수 있게 일본식으로 구성한 호시노야 도쿄. (호시노리조트 제공) |
포시즌스나 아만 같은 글로벌 초호화 호텔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이런 곳에 이질적이면서도 오롯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곳이 있다. 바로 ‘호시노야 도쿄’다. 지상 17층 건물로, 주변 마천루에 비하면 아담한 편. 그런데 1박에 기본형(2인실)만 수백만 원에 달하는 객실이 거의 ‘만실’인 것만 봐도 예사롭지 않다.
성공의 비결은 ‘역발상’에 있다. 호텔 콘셉트는 ‘타워형 일본 료칸’. 호텔에 들어서면 투숙객은 신발을 벗어야 한다. 로비부터 객실까지 이어지는 일본 전통 다다미 위를 맨발로 걸으며 일본 전통 료칸의 공간 경험을 마음껏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각 층에는 해당 층 숙박객만 이용할 수 있는 전용 라운지가 마련돼 차와 과자를 즐기며 계절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저녁에는 니혼슈(일본 전통 술) 시음회나 전통 음악 연주가 진행되며, 아침에는 일본 검술인 ‘격검’을 배울 수 있다. 단순 체류가 아니라 일본 문화의 정수를 체험하는 여행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압권은 최상층에 위치한 온천이다. 천장을 과감하게 뚫어 도쿄의 하늘을 바라보며 온천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됐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렇게 완벽한 비일상적 경험을 제공해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는 한 투숙객 말처럼, 호시노야 도쿄는 서양식 호텔의 문법을 따르지 않았다. 대신 가장 일본적이면서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하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 호시노야 도쿄의 성공은 호시노리조트 성과의 일부에 불과하다. 1914년 가루이자와의 작은 료칸에서 시작한 이 회사는 일본 관광 업계의 ‘게임 체인저’로 불린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호시노 요시하루 대표. (호시노리조트 제공) |
호시노리조트는 어떤 회사
111년 역사…지역 소멸 맞서다
이 회사가 지금의 위상을 얻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4대째 가업을 잇게 된 호시노 요시하루(星野佳路) 대표가 취임(1991년)하면서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미국 코넬대 호텔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경영 수업을 받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수시로 마찰을 빚었다. 결국 회사를 나와 잠시 다른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회사에 위기가 왔다. 1980년대 후반부터 버블 경제로 일본 전국에 호시노리조트의 강력한 경쟁자가 다수 나왔다. 시설이 낡은 데다 차별점이 약해 존립을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아버지는 호시노 대표를 다시 불러들였다.
회사 복귀 후 그가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안이했던 가족 경영 폐해를 끊고, 특권을 누리던 친인척을 과감하게 정리하는 일이었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경쟁력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
그는 일본 호텔 시장의 비효율적인 운영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료칸의 운영 방식을 혁신했다. 2001년 야마나시의 ‘리조나레 야쓰가타케’를 시작으로 후쿠시마 ‘반다이산 온천 호텔’, 홋카이도 ‘토마무 리조트’ 등 파산 직전의 시설들을 연이어 부활시키는 일명, ‘호시노 방식’이다.
2005년에는 가업이었던 료칸을 ‘호시노야’라는 럭셔리 브랜드로 재탄생시켰다. 그 밖에 온천 료칸 ‘카이’, 컨트리사이드 리조트 ‘리조나레’, 도심 관광호텔 ‘오모’, 자유로운 감성의 호텔 ‘베브’ 등 5개 브랜드를 통해 국내외 70여개 시설을 운영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올해 창업 111주년으로 ‘OMO5 도쿄 고탄다’ ‘OMO7 고치’ ‘카이 아키우’ 등 새로운 시설을 계속 선보였다. 인도네시아 발리, 대만, 미국 하와이, 괌 등 해외 지점도 늘리고 있다. 일본 도쿄 본사에서 기자를 만난 호시노 대표는 일본에서도 유례없이 빠른 성장을 하게 된 비결로 3가지 혁신을 꼽았다.
호시노리조트 산하 럭셔리 브랜드 ‘호시노야’의 가루이자와 호텔. (호시노리조트 제공) |
혁신 1. 상하 관계·서열 파괴
‘플랫한’ 조직 문화 구축
호시노리조트 차별점은 인사(HR) 전략, 즉 조직문화다.
호시노 대표는 “경영자가 혼자 내리는 판단”은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있지만, 크게 실패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는 조직의 안정적인 힘은 ‘건전한 토론’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직급이나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내기 쉬운 문화를 만들었다.
이 시스템은 미국의 켄 블랜차드의 ‘임파워먼트(위임)’ 이론에서 영감을 받았다. 켄 블랜차드는 단순히 권한을 넘기는 ‘방임’이 아니라,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고객 만족처럼 명확한 가치와 목표(경계)를 설정한 뒤 직원들이 그 안에서 자율적으로 일하게 만드는 것으로 요약된다. 또한 ‘역량평가(Competency Evaluation)’는 단기 성과(Performance)가 아닌, 지속적인 성과를 내는 데 필요한 잠재적 능력(Competency)을 평가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그는 이런 문화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높은 사람 신호’ 없애기부터 시작했다. 리더는 의사결정 ‘역할’을 부여받았을 뿐, ‘높은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이 조직 전체에 공유될 때, 비로소 수평적인 문화가 뿌리내린다고 판단했다. 이 철학 아래 사장실과 임원 특전을 없앴다. 그랬더니 스스럼없이 의견을 내는 문화가 정착됐다.
여기에 더해 의사결정권자를 ‘입후보 제도’로 선발하는 인사 정책도 눈길을 끈다. 회사가 관리자를 임명하는 게 아니라 특정 프로젝트를 이끌고 싶은 이라면 스스로 손을 들 수 있는 제도다. 연 2회 입후보할 수 있는데 5000여명 직원 중 적을 때는 40명, 많을 때는 70여명씩 지원한다. ‘왜 본인이 관리자 위치에 올라야 하는지’ 스스로 의지와 비전을 발표하면 해당 구성원들의 반응을 적극 반영해 회사가 최종적으로 리더를 뽑는 방식이다.
혁신 2. 현장 목소리 중시
외부 컨설팅 의존 안 해
호시노리조트는 신규 사업을 구상할 때, 외부 컨설팅 회사에 의존하지 않는다. 호시노 대표는 “외부 컨설팅 회사가 내놓는 답은 경쟁사도 똑같이 얻을 수 있다”며 “경영자는 상품·서비스의 코모디티화(Commodity: 평범하고 흔한 것으로 변하는 것)를 경계해야 하는데 그 답은 내부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호시노리조트의 수많은 지역 재생 프로젝트 아이디어는 모두 현장 직원에게서 나왔다. 그는 “그 지역의 진정한 매력은 지역에서 생활하며, 시설에서 매일 일하는 직원만이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부 직원이 스스로 고객이 돼 시설을 체험하고, 지역을 구석구석 탐방해 얻은 생생한 정보와 직감이 사업 성공의 핵심이라는 의미다. 이는 외부 데이터의 객관성보다 조직 내부의 집단 지성과 주체적인 판단을 더 신뢰하는 그의 경영 철학을 명확히 보여준다.
호시노야 가루이자와 호텔 공용 공간. (호시노리조트 제공) |
혁신 3. 소유와 경영의 분리
자산 경량화 전략으로 빠른 확장
호시노리조트는 부동산을 직접 소유하지 않는다. 리조트나 호텔 투자자가 부동산을 소유하고, 호시노리조트는 운영에만 전념하는 모델을 구축했다. ‘소유하지 않는다’는 방침은 부채도 늘지 않는 ‘에셋 라이트(Asset Light)’ 효과로 이어진다는 것이 호시노 대표 설명이다.
이런 사업 모델은 부동산 투자자와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 호시노 대표는 “이를 위해 리츠와 손잡게 됐다”고 했다. 리츠는 주식 시장을 통해 공개적으로 자금을 모집할 수 있어 빠른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또한 배당 등 요건만 충족하면 장기 보유에 적합하다.
2013년, 호시노리조트는 도쿄 증권 거래소에 호시노 리조트 REIT(부동산 투자 신탁)를 상장시켰다. 이 상품은 성장하는 관광 산업에 투자하고 싶은 기관·개인 투자자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일본 리츠(REIT) 시장 최초의 관광 특화형 상품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2025년 10월 기준 호시노리조트 73개 시설 중 23곳이 이 리츠 소유다.
호시노 대표는 “운영 회사인 호시노 리조트와 소유자인 투자자가 단기 실적에 과도하게 좌우되지 않고, ‘자산 가치의 장기적 극대화’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호시노야 도쿄 객실 내부. (호시노리조트 제공) |
하와이부터 뉴욕까지
‘호시노 방식’은 진화 중
이런 성공 방정식은 일본을 넘어 세계로 확산 중이다. 회사 측은 “호시노리조트의 해외 진출은 단순한 성장 전략이 아니라, ‘호시노리조트식 경영’의 보편성을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미국 하와이 ‘더 서프잭 호텔&스윔 클럽’이 대표 사례다. 와이키키 해변 근처에 위치한 부티크 호텔로 ‘Wish You Were Here!’라는 메시지가 그려진 수영장과 함께 레트로 감성으로 잘 알려졌다. 호시노는 이곳을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커뮤니티 허브로 만들고, 하와이 특유의 ‘오하나(가족)’ 문화를 도입, 친근한 서비스로 큰 반향을 얻고 있다.
괌에서 운영하는 리조나레 괌은 공항에서 10분 거리로 접근성이 좋다. 괌 최대 규모의 워터파크 등 하드웨어 경쟁력 외 호시노리조트가 운영을 맡으면서 비치 클럽, 올데이 다이닝 등 괌 지역 문화를 반영한 새로운 서비스를 접목해 예약률을 끌어올렸다.
한편 ‘현지 문화 경험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대해 호시노 대표는 “비즈니스 모델의 본질은 같다”고 말한다. 그는 어디를 가든 지역 고유의 매력을 발견해 세상에 없는 콘셉트로 재창조하고, 수평적 조직 문화를 통해 현지 직원이 주체적으로 시설의 매력을 높여가는 ‘호시노리조트 경영 시스템’이 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시노리조트는 미국 뉴욕 근교의 온천 료칸 개발을 추진하는 등 일본식 ‘오모테나시(환대)’의 수출을 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시노리조트 어디까지 진화
100년 후에도 존속 가능 경영 구축 중
호시노 대표는 눈앞의 이익을 넘어 “100년 후에도 존속하는 경영”을 목표로 내세웠다. 단순히 장수 기업을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과 예측 불가능한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는 방법을 찾을 능력을 가진 유연한 조직을 구축하겠다는 결의다. 그가 꿈꾸는 지속 가능성은 경영 시스템 곳곳에 녹아 있다. 호텔이라는 하드웨어를 넘어 사람, 문화, 그리고 자본이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강력한 생태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인터뷰 | ‘호시노리조트 스토리’ 저자 윤경훈 류쓰케이자이대 교수
KPI·소유·컨설팅 없는 3無 경영…혁신 비결
‘호시노리조트 스토리’는 호시노리조트의 독특한 경영 방식을 상세히 분석해 화제가 됐다.KPI·소유·컨설팅 없는 3無 경영…혁신 비결
윤경훈 교수 제공 |
Q. 기업 대부분 KPI, 즉 수치를 중심으로 성과를 관리한다. 호시노 대표는 그해 실적으로 직원들을 평가하거나 매년 목표를 세우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KPI 없는 경영’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A. 호시노리조트 목표는 ‘장기 경쟁력 강화’다. 호시노 대표는 매출이나 이익 같은 단기 실적이 개인 능력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본다. 실적은 경기 호황이나 불황, 혹은 엑스포 같은 외부 변수에 의해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런 불확실한 숫자로 직원을 평가하면, 직원들은 장기적인 가치 대신 단기 실적에 매몰되는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과감히 KPI를 없애고 ‘역량 평가’를 도입했다. 이는 결과가 아닌, 그 결과를 만드는 과정에서 직원이 발휘한 잠재력과 능력 자체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단기 실적 압박에서 해방된 직원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고객 만족이라는 본질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고, 이것이 혁신적인 서비스의 원천이 됐다.
Q. 책에서 호시노 경영 특징 중 하나로 ‘윗사람 신호 제거’를 꼽았다. 이런 수평적 문화가 자칫 비효율이나 의사결정 지연을 낳지 않는가.
A. 호시노의 수평적 문화를 모든 것을 다수결로 정하는 민주주의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호시노 대표가 말하는 핵심은 ‘건전한 토론’이다. ‘윗사람 신호’를 제거한 이유는, 리더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계급장 뗀 날것의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다. 의사결정권자라는 역할(role)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지위(rank)가 되지는 않는다. 위계가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직원들은 직책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는 ‘수평적 토론 문화’가 꽃필 수 있다. 리더는 이 토론을 촉진(facilitation)해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
Q. 대부분 기업이 객관성을 담보하려 외부 컨설팅에 막대한 돈을 쓴다. 호시노 대표는 ‘현장 직원’ 의견에 더 힘을 싣는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A. 호시노 대표는 ‘경쟁사도 똑같이 돈으로 살 수 있는 정보가 어떻게 그 기업만의 진정한 경쟁력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호시노 경영의 핵심이자 사업 재생 성패를 가르는 기준은 ‘스스로 고객을 모으는 힘(集客)’이다. 이 힘은 외부 전문가가 분석한 평균적인 데이터가 아니라, 현지의 진짜 매력을 속속들이 아는 현장 직원에게서 나온다고 본다. 직원들이 직접 조사하고, 토론하고, 답을 찾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 자체가 돈으로 살 수 없는 호시노리조트만의 강력한 조직 자산이 된다.
Q. 호시노리조트는 왜 ‘소유와 운영을 분리’하려 할까.
A. 1990년대 버블기에 과잉 공급됐던 리조트 기업들은 부동산을 직접 ‘소유’했기 때문에 막대한 부채와 시설 노후화라는 덫에 걸려 파산했다. 호시노리조트는 이 구조를 일찌감치 간파했다. 그들은 가장 잘하는 ‘운영(소프트웨어)’에만 집중하고, 부동산 ‘소유(하드웨어)’는 리츠(REITs) 같은 외부 자본에 맡겼다. 절묘한 지점은, 리츠 투자자들은 단기 차익보다 안정적인 장기 배당 수익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라는 호시노리조트 경영 목표와 일치한다. 단기 실적 압박에서 자유로운 운영사와 장기 투자를 원하는 소유주의 이상적인 조합이 불황 속 생존과 성장을 이끈 핵심 동력이다.
[도쿄 =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4호 (2025.11.12~11.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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