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가입자에 알릴 의무 간과해도
보험사 책임 없어…판결 악용 가능성
향후 보험금 분쟁 시 소비자에 불리
‘소비자 보호’ 금소법 취지도 역행
보험사 책임 없어…판결 악용 가능성
향후 보험금 분쟁 시 소비자에 불리
‘소비자 보호’ 금소법 취지도 역행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연합뉴스] |
지난 2015년 아들을 위해 상해사망보험에 가입한 한 어머니가 겪은 일입니다. 해당 계약에는 보험기간 동안 아들이 상해사고로 사망한 경우 보험사가 상해사망보험금 2억원을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보험가입 당시 아들은 운전을 하지 않았지만 몇 년 후 배달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업용 오토바이를 운행하게 됐습니다. 안타깝게도 2019년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고 어머니는 아들의 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보험사는 아들이 오토바이를 사용하게 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험계약 해지를 통보했습니다.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것이죠.
이 사건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보험계약자의 ‘알릴 의무’와 보험사의 ‘설명 의무’가 맞선 사례 중 하나입니다.
알릴 의무란?
보험 계약. [연합뉴스] |
보험계약 후 알릴 의무란 보험약관에 있는 내용으로 말 그대로 약관상 의무입니다. 일반적인 약관은 보험기간 중 피보험자(보험사고 대상자)의 직업 또는 직무가 변경된 경우, 운전 목적이 자가용에서 영업용으로 변경된 경우, 비운전자에서 운전자로 변경된 경우, 이륜차 또는 원동기장치자전거를 계속적으로 사용하게 된 경우 지체 없이 보험사에 해당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기면 보험사는 손해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직업에 따라 보험사고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실제 사고 위험이 높은 직업은 보험가입 자체가 거절되거나 가입금액에 제한이 따르기도 합니다. 사무직에 종사하는 경우와 건설현장 등 현장직이 그렇고 특히, 배를 타는 선원은 위험군으로 분류됩니다.
상법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 상법 제652조의 ‘위험변경증가의 통지와 계약해지’ 조항에 명시된 ‘통지 의무’와 같은 개념입니다.
다만, 상법은 보험약관처럼 구체적인 경우를 나열하고 있지 않고 “보험기간 중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사고 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 또는 증가된 사실을 안 때에는 지체 없이 보험자(보험사)에게 통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체 없이’는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증가된 사실을 알게 됐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가능한 한 빨리 알리라는 의미입니다.
앞서 어머니의 아들 사례는 2심 재판까지 보험사가 패소했습니다. 보험계약자에 ‘알릴 의무’가 있듯이 보험사도 보험계약자게 보험기간 중 피보험자의 직업 또는 직무가 변경된 경우 등에 대해 보험사에 알려야 한다는 설명을 해야 하는 설명 의무가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설명 의무가 간과됐다고 재판부가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연합뉴스] |
그러나 올해 8월 대법원에서 관련 판결이 뒤집혔습니다. 2심 법원까지는 보험사가 해당 약관에 대한 설명 의무를 다하지 않은 점이 부각, 보험계약자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대법원은 다른 관점에서 판단했습니다.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보험계약을 해지한다면서 보험계약자 측에 보낸 우편물 내용에 따르면 약관상 계약 후 알릴 의무 위반뿐만 아니라 상법 제652조 위반에 따른 해지권을 행사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설령 보험사가 약관에 대한 설명 의무를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보험사는 상법상 통지 의무 규정에 따라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대법원은 2심 법원이 보험사의 상법상 해지권 행사 주장에 대해 제대로 심리를 하지 않은 부분을 지적하면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 판결 이후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보험사가 약관의 계약 후 알릴 의무 조항에 대해 보험계약자에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상법에 따라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으니 사실상 설명 의무를 면제해 준 것이나 다름 없는 판결이라는 것입니다.
벌써부터 시끌합니다. 비슷한 소송에서 보험사들이 이번 대법원 판결을 보험금 지급 거절과 계약 해지의 정당성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만든 금융소비자 보호법의 취지나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과도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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