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월가 주름잡던 큰손의 심미안
베일 벗은 ‘로버트 리먼 컬렉션’
메트로폴리탄 회화 국내 첫 상륙
월가 주름잡던 큰손의 심미안
베일 벗은 ‘로버트 리먼 컬렉션’
메트로폴리탄 회화 국내 첫 상륙
후대에 물려주는 보물, 유산(heritage)이라 한다. 후대는 직계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보물은 고로 모두에게 공유된다. 누구나 조금은 선대에 빚지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 거대 금융사 ‘리먼 브러더스’를 이끈 로버트 리먼(1891~1969)이 평생 모은 미술품은 2600여 점이었다. 그가 세상을 뜬 이듬해, 14세기부터 20세기를 망라하는 유럽 예술의 정수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기증됐다. 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장엄하게 빛낸 그의 메시지는 “위대한 예술은 나만의 기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누릴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로버트 리먼 컬렉션의 가치는 1960년대 약 7500만달러 수준으로 추산됐다.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1조원이 넘는다.
갑부의 저택 밖으로 나온 거장의 걸작, 즉각적인 찬탄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일부가 처음 한국에 도착했다. 14일 개막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을 통해 내년 3월 15일까지 찬란한 위용을 드러내는 것이다. 고흐·고갱·마티스·르누아르·세잔…. 한국 관람객이 특히 사랑하는 인상주의 회화 위주로 엄선해, 로버트 리먼 컬렉션 65점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주요 소장품 16점을 긴밀히 연결하는 자리다. 맥스 홀라인 관장은 “로버트 리먼 컬렉션은 단일 작품 대여조차 거의 이뤄진 적이 없기에 이 같은 규모의 전시는 매우 특별한 시도”라고 했다.
이를테면 미국 거대 금융사 ‘리먼 브러더스’를 이끈 로버트 리먼(1891~1969)이 평생 모은 미술품은 2600여 점이었다. 그가 세상을 뜬 이듬해, 14세기부터 20세기를 망라하는 유럽 예술의 정수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기증됐다. 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장엄하게 빛낸 그의 메시지는 “위대한 예술은 나만의 기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누릴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로버트 리먼 컬렉션의 가치는 1960년대 약 7500만달러 수준으로 추산됐다.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1조원이 넘는다.
미국 금융계를 호령한 생전의 로버트 리먼. /베이커 도서관 |
갑부의 저택 밖으로 나온 거장의 걸작, 즉각적인 찬탄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일부가 처음 한국에 도착했다. 14일 개막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을 통해 내년 3월 15일까지 찬란한 위용을 드러내는 것이다. 고흐·고갱·마티스·르누아르·세잔…. 한국 관람객이 특히 사랑하는 인상주의 회화 위주로 엄선해, 로버트 리먼 컬렉션 65점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주요 소장품 16점을 긴밀히 연결하는 자리다. 맥스 홀라인 관장은 “로버트 리먼 컬렉션은 단일 작품 대여조차 거의 이뤄진 적이 없기에 이 같은 규모의 전시는 매우 특별한 시도”라고 했다.
조부가 설립한 회사를 미국 4대 투자은행의 반열에 올려놓은 남자. 163㎝의 단신이었으나 “눈썹 한 번 치켜올리는 것만으로도 수백만 달러를 모을 수 있던” 냉철한 투자자. 물론 그는 금수저였지만 그가 물려받은 진짜 유산은 심미안(審美眼)이었다. 역시 저명 컬렉터였던 부친 필립 리먼과 함께 유럽 전역을 누비며 눈높이를 높였고, 예일대 졸업 후 한국·중국·일본 등을 여행하며 아시아 미술에도 깊은 조예를 쌓았다. 허영과 차익 실현을 위해 창고에 쌓아두고 소장 목록을 과시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을 방에 걸어두고는, 혹여 상할까 결코 불을 켜지 않았을 정도로 그는 컬렉션에 진심이었다.
부자들의 그림 사랑은 대개 주머니 사정에서 비롯되고는 하지만, 안목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로버트 리먼은 흔히 ‘현대 미술’로 불리는 흐름을 적극 받아들인 1세대 미국 컬렉터이기도 하다. 팔랑이는 ‘귀’ 대신 그는 전적으로 자신의 ‘눈’을 믿었다. 전쟁이 끝난 1940년대 후반 유럽행이 재개되면서, 인상주의 사조에 매료됐고 본격적인 수집을 시작했다. 1948년에는 고흐의 ‘룰랭 부인과 아기’를 손에 넣었는데,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최초의 고흐 작품 구매(‘사이프러스 나무’)보다 1년 빠른 것이다. 인상주의 풍경화가 알프레드 시슬레 ‘밤나무 길’, 점묘법 선구자 폴 시냐크 ‘클리시 광장’ 등 이 시기 그가 택한 진귀한 미감을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로버트 리먼 컬렉션은 액면가 혹은 단순한 개인의 취향을 넘어, 수집가가 어떻게 인류의 보화(寶貨)를 계승하는지 보여주는 명징한 사례다. 전국 공공 미술관에 초고가의 수집품을 무상 기증해 한국 현대 미술의 영토를 넓힌 ‘이건희 컬렉션’, 역시 소장작 수천 점을 기부해 오늘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매년 500만명 이상이 찾는 세계적 명소로 이끈 ‘JP 모건 컬렉션’처럼, 그 공익적 효과는 값을 매기기 힘들 정도. 이번 전시 출품작을 살펴본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는 “자칫 묻히거나 훼손될 수 있었던 작품을 보존하고 전시·기증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는 컬렉터 덕에 미술품은 사회적 자본이 될 수 있었다”며 “물론 개인적 욕망도 있었겠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명감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인상파 풍경화가 시슬레 '밤나무 길'(1878). /메트로폴리탄박물관 |
로버트 리먼은 1957년 소장품 293점을 프랑스로 보내 인상주의의 성지로 불리는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대형 전시를 개최하는 등 꾸준히 예술적 환희를 전 세계에 나눴다. 1962년에는 컬렉션이 대거 보관돼 있던 자신의 뉴욕 저택을 재단장해 방문객을 맞이할 수 있도록 했고, 1967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이사회 의장이 됐다. 이듬해 예일대학교는 “우리 문명의 생활·문화·예술 발전을 증진했다”며 그에게 명예 인문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돈의 부침(浮沈) 속에서 리먼 브러더스는 2008년 파산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림은 여전히 건재하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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