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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연료 탑재 어디서?…'원잠 승인' 명시했지만 '빈칸'이 핵심

중앙일보 이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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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연료 탑재 어디서?…'원잠 승인' 명시했지만 '빈칸'이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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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기자회견장에서 한미 팩트시트 타결과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기자회견장에서 한미 팩트시트 타결과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미가 14일 발표한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에는 “미국은 한국이 핵추진잠수함(SSN·핵잠, 원자력추진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했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한국의 핵잠 도입과 관련한 정상 간 구두 합의를 문서화했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지만, 핵잠 연료의 공급 장소·방식 등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은 ‘빈칸’이 핵심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는 디테일은 실무 부처 선으로 넘기겠다는 뜻으로, 실무 협상 결과에 따라 이번 성과가 선언적 수준에 그치느냐 실질적 진전을 보느냐가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 회담 공동 설명자료’(팩트시트)에 관한 브리핑에서 “핵잠 건조 장소는 한때 어디서 건조하느냐가 문제로 제기된 적이 있지만, 우리 입장을 설명했고 그게 반영이 됐다”면서 “원잠(핵잠) 전체를 한국에서 짓는 것을 전제로 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팩트시트 상 핵잠 관련 조항은 “미국은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했다. 미국은 이 조선 사업의 요건들을 진전시키기 위해,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해(including avenues to source fuel),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만 돼 있다. 건조 장소나 연료 조달 방안 등 구체적인 추진 방향을 알 수 있는 단서는 포함되지 않았다.

대통령실이 밝힌 ‘국내 건조’의 의미도 해석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한국에서 선체를 만들어 이를 미국으로 보낸 뒤 연료를 탑재한다는 것인지, 혹은 연료·소형 원자로 등 추진체를 포함한 전체 건조 과정을 한국에서 진행하는 것까지 미 측이 동의했다는 의미인지는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성락 대통령실 안보실장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팩트시트 타결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위성락 대통령실 안보실장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팩트시트 타결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위 실장은 “우리가 배를 여기서 짓고 미국으로부터 연료를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반면 미국 입장에선 핵연료 이전은 농축 우라늄의 국외 반출이라는 비확산 문제와 연동된 문제다. 미국 내 다수 부처가 관여하고 있어 이견 조율이 쉽지 않을 수 있다. 미 원자력법 제91조는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특수 핵 물질의 생산·보유에 대해 미 에너지부와 국방부(전쟁부) 등의 통제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한·미 간 핵물질 이용 및 기술 이전에 관한 규정을 담은 한·미 원자력 협정 문제는 미 국무부가 다룬다. 이들 부처와의 디테일 설정이 남은 과제로 거론되는 이유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핵연료 조달 방식과 책임, 미국 핵추진 체계 기술의 이전 범위, 원자로·선체 설계 및 건조 분담, 핵 안전 규제 기관 마련 등 난제가 산적해 있다”면서 “특히 미국은 핵추진 체계와 연료 관련 기술을 극도로 엄격히 관리하고 있어 ‘승인’과 ‘건조’ 사이에는 상당한 기술적·법적 장벽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팩트시트 타결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범 정책실장, 이 대통령,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이규연 홍보소통수석. 뉴스1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팩트시트 타결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범 정책실장, 이 대통령,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이규연 홍보소통수석. 뉴스1


이번 팩트시트에는 “미국은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며 한국의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와 관련한 내용도 담겼다. 다만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란 단서를 달았다.

이를 두고 대통령실은 “우리의 농축·재처리에 대한 미 측의 공개적인 협조·지지는 최초”(사후 참고자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 8월 첫 한·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으로부터 ‘큰 틀의 지지’는 확보했다는 게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다만 해당 조항은 ‘민수용 권한 확대’를 명확히 하고 있다. 한·미가 이번 합의를 통해 한국의 자체 핵잠 연료 조달, 즉 군사적 용도의 우라늄 농축 권한은 차단한 것이라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이 경우 미국은 한국이 핵잠 연료에 대한 자체 농축 권한은 포기하는 대신 해당 조항을 미 측이 제공하는 완제품만 탑재시키기 위한 근거로 삼으려 할 수 있다.



위 실장도 “우리가 농축 재처리 권한을 갖는 것을 핵 잠재력을 늘렸다(키운다)라고 연결하는 걸 철저히 배격한다”라며 선을 그었다. 이는 비확산 체제 위반을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여론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해당 조항은 ‘현행’ 원자력 협정을 전제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미 국내 입법 절차 등에 따른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대통령실은 선을 긋고 있지만, 이 경우 한국의 자체 농축을 통한 핵잠 연료 공급의 길을 열어둘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 역시 실무 협의를 통한 밑그림을 어떻게 그려 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이번 성과에 대해 “좌표, 방향성을 얻은 것”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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