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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돈·사랑에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연극 ‘도그 워커의 사랑’

매일경제 구정근 기자(koo.jungge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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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돈·사랑에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연극 ‘도그 워커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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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를 응시하는 DAC 강동훈 작가 신작
1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


DAC Artist로 지난해 선정된 강동훈 극작가의 연극 ‘도그 워커의 사랑’ 포스터 이미지 [두산아트센터 제공]

DAC Artist로 지난해 선정된 강동훈 극작가의 연극 ‘도그 워커의 사랑’ 포스터 이미지 [두산아트센터 제공]

두산아트센터의 신진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 ‘DAC 아티스트(DAC Artist)’에 선정된 강동훈 작가의 신작 연극 ‘도그 워커의 사랑’이 1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 무대에 오른다.

DAC Artist는 공연 예술 분야의 40세 이하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 선정하여 신작 제작, 작품개발 리서치 및 워크숍, 해외 연수 등 다양한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도그 워커의 사랑’은 재벌가의 딸 소영이 어머니 숙례의 죽음으로 미국에서의 정신과 의사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면서 시작된다. 소영은 “이제 준비가 된 것 같다”며 남편과 이혼하고 직장을 정리하며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

그는 어머니의 강아지를 돌보기 위해 고용한 20대 청년 하민과 사랑에 빠진다. 큰 키와 잘생긴 얼굴을 가진 하민은 소영이 이상적으로 그려온 남자의 전형이다. 손쉽게 사랑에 빠진 그녀의 삶은 처음엔 활기를 되찾는 듯하지만, 곧 다시 불안과 권태로 가라앉는다.

연극은 소영의 현실을 다루는 ‘낮’과 숙례의 회상을 중심으로 한 ‘밤’이 교차하며 구성된다. 낮의 장면에서는 사랑을 통해 다시 살아보려는 시도를, 밤의 장면에서는 자본과 욕망에 매인 인생을 쇼처럼 풀어놓는다.

‘밤’의 숙례는 벨벳 가운을 입고 에코 가득한 마이크를 쥔 채 키치한 조명 아래서 자신의 삶을 회고한다. 통통 튀는 음악과 화려하고 들뜬 무대는 한때 고도성장기의 거품 가득한 들뜬 열기를 전한다.


1950년대부터 이어지는 숙례의 성공담에는 한국 경제사에 대한 작가의 풍자적 시선이 배어 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낮’의 권태와 ‘밤’의 욕망이 맞물리며 교차한다.

‘낮’과 ‘밤’을 잇는 장치로 밤의 숙례가 던진 소품을 낮의 소영이 이어받는 연출이 사용된다. 숙례를 연기하던 배우가 낮의 장면에서는 강아지로 등장해 모녀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이어주는 점도 흥미롭다.

강동훈 작가는 두산아트센터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흔히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랑과 돈의 의미를 다시 탐구해보고 싶었다”며 “작품을 준비하며 한국의 경제사를 많이 읽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돈과 사랑은 결국 삶의 허무를 비추는 배경에 머문다. 두 요소 모두 인물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작가가 꾸준히 천착해온 ‘삶의 허무’라는 주제의식이 이어진다.

극은 전반적으로 느릿한 호흡으로 흐른다. 새로운 출발을 꿈꾸지만 점차 불면에 시달리며 예민하게 변해가는 소영의 일상은 권태의 감각을 세밀하게 드러낸다. 숙례의 독백은 때로 모호하고 비밀스럽게 흘러 극의 리듬을 늦추기도 한다.

작가는 작품 말미에서 실제 주변 인물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는데, 이야기의 모호함에는 자전적 흔적을 감추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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