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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조선소 가던 날…“절대로, 다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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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조선소 가던 날…“절대로, 다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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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재영

일러스트레이션 김재영


‘한화오션 내 우수 중소기업 취업지원’, 기술교육원 모집 공고 포스터 내용 중 일부다. 틀린 말은 아니다. ‘조선소 내’에서 그나마 괜찮은 업체가 기술교육원에서 사람을 뽑아간다. 하지만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면, 가장 흔한 일자리조차 조선소의 그나마 괜찮은 업체보다 낫다. 요즘 매일 신문 지면을 호재로 장식하는 조선소가 처한 현실이었다.



기술교육원 6주차 월요일엔 업체 설명회가 있었다. 조선소 노동을 제일 큰 단위로 쪼개면 내업과 외업으로 나뉘었다. 내업은 공장 안에서 하는 일이고 외업은 야외에서 하는 일. 임금이야 둘 다 최저임금이지만 노동 강도는 차원이 달랐다. 공장 안에서 하는 일이라고 쉽겠냐만 외업은 건설 막노동 수준이었다. 당연히 대부분 내업을 원했다. 그러나 내업 회사 모집 인원은 고작 2명뿐이었다. 일이 없어서 업체가 사람을 안 뽑는다더라. 배 주문은 잔뜩 받았는데 철강 자재가 들어오질 않아 당장 할 일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더욱이 설명회에 참여한 업체 중 두곳은 임금체불로 뉴스에 난 회사였다. 아무래도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설명회가 끝나고 쉬는 시간. 두 자리뿐인 내업은 기술교육원 성적 1등과 2등의 몫이었으므로, 외업을 할 처지에 놓인 교육생들은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와중에 기숙사 동기 배씨는 침착했다. “원래 기교원이 좀 운이에요. 어느 땐 직영 뽑아갈 때도 있고, 취업 알선도 안 해주는 때도 있고.” 반면 아직 어린 찬도 당황해서 어찌할지 물었다. 용접을 배워보려고 했는데 외업은 용접을 잘 안 시켜준다고 들었다. 이러면 거창에서 거제까지 온 이유가 없다. 동요하는 모습이 눈에 확 보여서 마치고 남문 치킨집으로 데려갔다. 단지 그뿐이었다. 내가 무슨 없는 자리 만들 권력이 있나. 다른 좋은 회사를 알려줄 인맥이 있나. 그저 치맥 한번 사주고 다독이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마지막인 7주 차 금요일엔 257기 교육생끼리 자체 회식이 있었다. 마침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규탄 대회를 하는 날이었다. 마침 교육원 해단식이 점심에 끝나서 잠깐 구경 삼아 기숙사 반대편인 서문으로 향했다. 비장한 포스터의 글귀가 무색하게 참석 인원은 스무명이 안 되었다. 광활한 조선소 규모에 비하면 초라한 규모. 하지만 노조원 중 그 누구도 주눅 든 기색은 없었다. 스스로 옳은 말을 하고 있다는 확신, 내가 절대로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 당당함이 느껴졌다. 부끄러움이 많아 같이 앉아서 팔뚝질까진 못 하고, 시위를 주도하고 있던 이김춘택 사무장과 짧게 근황과 인사를 나누었다. 현장에서 곧 뵙게 될 듯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뒤돌아선 지 몇분 후. 아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원청에서 천현우가 하청 노조랑 접촉한 사실을 인지했으므로 얼른 자리를 벗어나라고 했다.



소름이 돋았다. 노조 탄압을 이렇게 대놓고 한다고? 일개 교육생한테까지 압력 행사를 한다고? 심지어 이 과정이 이토록 순식간에 이루어진다고? 불합리를 넘어 기괴한 상황 앞에 그저 조심하겠다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놀라서 잠깐 심호흡한 뒤 그대로 남문을 나와서 회식 장소로 향했다. 다들 돈 없는 교육생 처지라 명륜진사갈비 외엔 대안이 없었다. 고기 굽는 동안 대화가 많이 오가진 않았다. 7주란 시간은 끈끈한 우애가 생기기엔 너무 짧았다. 낮이라 술잔이 오가지도 않아서 회식보단 정보 교환 미팅에 가까웠다. 마냥 형식적이진 않지만 큰 감흥도 없었던 시간을 보내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사부작사부작 방을 정리하기 시작할 무렵 배씨와 찬도 도착했다. 짐을 빼서 각자 숙소로 옮길 시간. 배씨는 근처 빌라에 임시 월세를 구했다. 교육원 성적이 좋았던 찬은 사내 기숙사가 제공되는 회사에 입사했다. 마침 내가 차를 가지고 온 터라 각자의 집에 얼마 안 되는 짐을 내려다 주고 옥포동의 중식집으로 갔다. 독한 고량주와 코가 찡한 마라샹궈가 들어가자 비로소 제대로 된 회식 분위기가 됐다. 술김에 하나둘 실토하기 시작한 우리들의 속사정은 암담했다. 꽤 오랫동안 최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하리란 점.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힘든 노동 강도를 버텨내야 한다는 점. 유일한 희망인 정규직은 사실 거의 뽑지도 않는다는 점까지. 주관 하나 안 섞인 건조한 사실 앞에서 나 또한 지극히 현실적인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일단은 될 때까지 해봅시다. 각 안 나오면 빨리 손 텁시다. 그리고 절대로, 다치지 맙시다.”



돌아보니 지극히 짧았던 7주였다. 조선소의 기술교육원은 훌륭한 설비에 못 미치는 운영으로 엇박자를 내고 있었다. 기술교육원에서 보낸 시간은 사실상 교육이 아니라 그저 현장으로 떠밀기 위한 몸풀기 과정 수준이었다. 물론 ‘손기술’은 교육보다 현장에서 훨씬 빨리 늘 여지가 있음을 안다. 문제는 대부분 초보 기능공에겐 현장에서 기술을 발휘할 기회가 잘 안 온다. 높은 기량이 필요한 현장 기술은 대체로 되돌리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실수하면 바로잡기가 무척 까다롭다는 얘기다. 다른 직군보다 훨씬 초보를 꺼릴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조선소는 ‘당장엔’ 숙련 노동자를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다. 아직 현역 기술자들이 꽤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용접을 배우러 온 교육생은 취업하고 잡일만 하다가 질려서 관두고 만다. 현재 조선소는 조선업이 정점이었던 시절의 기술자들과 같은 후발 주자를 양성할 생각이 없다. 대체 왜 그럴까. 비용과 효율의 문제라도 쳐도 석연찮다. 지금이야 베테랑 기술자들 동원해서 어찌어찌 배 만든다 치자. 이들이 다 은퇴하면 다음 대안이 뭘까. 로봇? 넓고 질서정연한 공장이라면 모를까. 복잡하고 비좁은 배 안을 누비며 일할 로봇이 쉽게 만들어질까. 외국인 노동자로 몽땅 대체하기? 상당수가 한국에서 몇년 일하다가 나가버릴 텐데 숙련 노동자가 남겠는가. 이른바 빅3 조선소,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에 묻고 싶다. 아직도 숙련 노동자가 현장에서 저절로 나오기만 바라는가. 이제 조선소에 버티고 앉아 있을 청년은 거의 없다. 청년들은 이제 기량이 늘면 알아서 임금도 늘려준다는 주먹구구식 약속을 믿지 않는다. 기량이 늘 수 있는 사다리를 놔줘야 한다. 부디 대형 조선소가 긴 안목의 인재 양성을 도모하길 바랄 뿐이다.



천현우 | 창원시에서 여러 회사 전전하며 10년간 제조업 노동자로 일했다. 서울 성수동 미디어플랫폼 얼룩소(alookso) 등에서 2년 반 일하다 다시 경남으로 돌아왔다. 최근까지 거제 조선소에서 일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민간위원을 했다. 산문집 ‘쇳밥일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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