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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민 | 사회정책팀 기자
“인공지능(AI) 때문에 너무 골치 아파요. 학생들이 전부 인공지능을 써서 과제를 해 오니까….”
2023년 1인 가구의 주거 형태를 취재하기 위해 찾은 스웨덴에서 홀로 사는 30대 여성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고등학교 교사인 그에게 “요새 스웨덴 고등학교 현장은 어떠냐”는 다소 포괄적인 질문을 던지자, 단번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당시 챗지피티(ChatGPT)가 출시된 지 1년이 조금 안 됐을 즈음으로, 생성형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와 기대감이 막 커져가고 있을 때였다.
메일 작성과 번역 등 출장 준비를 할 때 챗지피티의 도움을 크게 받으며 준비한 입장에서도, 스웨덴 교사의 말은 조금 놀라웠다. 한두명이 아니라 교사가 문제라 느낄 정도로 많은 학생이 일상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2년 전만 해도 생경했기 때문이다. ‘역시 어린 학생들이 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네’라는 생각과 ‘이런 식이면 자신이 배우고 성장할 수 없을 텐데’란 생각이 동시에 스쳤다. 스웨덴 교사는 “숙제를 내주면 전부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해 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숙제를 모두 없애고, 학교에서 실시간으로 시험처럼 과제를 완성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인공지능 부정행위’가 연세대와 고려대 등 대학가를 뒤흔들고 있다. 연세대는 600여명이 수강하는 ‘자연어 처리(NLP)와 챗지피티’ 강의에서, 고려대는 1400여명이 듣는 ‘고령사회에 대한 다학제적 이해’ 강의에서 시험 시간에 학생들이 인공지능을 활용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모두 비대면 대형 강의로,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고 온라인으로 시험을 치는 수업이다. 2년 전 들었던 스웨덴 고등학교 교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집에서 해 오는 숙제를 내주니 전부 챗지피티로 완성해 온 스웨덴 고등학생들과 현장이 아닌 온라인 시험을 치면서 챗지피티를 쓴 한국 대학생들의 맥락은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대학가의 인공지능 부정행위 사건에 대해 들었을 땐 2년 전처럼 생경하지 않았다. 그만큼 2년 사이 인공지능이 우리 삶에 더 가까이 들어와 익숙해졌기 때문일 거다. 누군가 강조하듯 ‘인공지능 윤리’, ‘학습 윤리’의 문제일 수 있지만, “인공지능을 알아야 한다”, “인공지능을 잘 활용해야 성공한다”, “앞으로의 미래는 인공지능”이라는 말을 최근 2년 동안 숱하게 들어온 학생들에게 비대면으로 충분히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를 쓰지 않는 건 ‘바보’가 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느껴졌을지 모른다.
기술이 발전하고 우리 생활로 들어오는 흐름은 막을 수 없다. 세상에 드러난 사례가 대학 몇곳의 비대면 강의일 뿐, 수많은 학교에서 수많은 학생이 과제와 시험을 수행하며 인공지능을 숨 쉬듯 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정학과 시험 무효로 이들을 엄하게 꾸짖어도 잠깐일 수밖에 없다. 이제 필요한 건 단순히 ‘사용 금지’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일상이 된 시대에 ‘어떻게 배우고, 가르치고,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배움의 방식이 바뀌는 시대에, 교육도 학생들을 모아놓고 같은 내용을 주입한 다음 ‘정답’을 쓰게 하는 방식에서 ‘탐구’를 가르치고 이를 평가하는 쪽으로 진화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공지능도 더 이상 부정행위의 수단이 아니라, 사고력 확장의 도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sj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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