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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에 울려퍼진 ‘세상은 요지경’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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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에 울려퍼진 ‘세상은 요지경’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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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호 감사원 감사위원이 지난 11일 최재해 감사원장 퇴임식에서 휴대전화기로 ‘세상은 요지경’ 노래를 틀면서 “영혼 없는 것들”이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최 원장이 윤석열 정부 시절의 감사 운영 전반을 점검하는 ‘감사원 운영쇄신 태스크포스(TF)’를 꾸린 점 등에 대한 불만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요지경’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확대경을 장치하여 놓고 그 속의 여러가지 재미있는 그림을 돌리면서 구경하는 장치나 장난감” “알쏭달쏭하고 묘한 세상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돼 있다.



아름다운 연못이라는 뜻의 ‘요지’(瑤池)는 중국 신화 속 신선들이 살았다는 상상의 땅 곤륜산에 있는 연못이다. 주나라 5대 왕인 목왕이 요지에서 여신 서왕모를 만났다고 전해진다. ‘요지경’은 그만큼 신비하고 다양한 장면을 보여주는 거울(鏡)이다. ‘세상은 요지경’은 배우 신신애(1953년생)가 1993년 발매한 1집 앨범의 타이틀곡이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 (…)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는 해학적 가사와 독특한 멜로디가 특징이다. 압권은 신신애의 무표정 얼굴과 ‘이판사판춤’이 합쳐진 파격적 퍼포먼스로, ‘엽기 트로트’라 불렸다. 앞서, 김정구가 1939년 발표한 동명의 곡이 있었고, 해방 후 그가 ‘세상은 빙글빙글’이라는 곡명으로 다시 발표했는데, 신신애의 노래는 그 가사와 곡조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 노래는 발표되던 해 한국방송(KBS) ‘가요톱10’에서 4위까지 올랐다.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 신승훈 등이 활약하던 때임을 고려하면 대단한 인기다.



유병호 감사위원은 윤 정부 시절 감사원 사무총장을 지낸 실세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국가통계 조작 의혹 사건’ 등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표적 감사를 주도했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인 2021년 11월 임명된 최재해 원장은 윤 정부 때 감사원의 역할이 ‘대통령 국정운영 지원’이라는 취지로 발언해 비판을 샀다. 그랬던 최 원장이 정부가 바뀌자 윤 정부 시절의 감사원을 점검하겠다고 했으니 유 감사위원 눈에는 영혼 없어 보였을 수 있겠다. 하지만 감사원의 독립성·중립성 훼손에 맨 앞에 섰던 인물이 누구인가. 유 감사위원이 최 원장을 떠나보내며 ‘세상은 요지경’을 틀고 소란을 피운 것이야말로 요지경 같고 엽기적이다.



황준범 논설위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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