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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미국 정치까지 알아야 하나…셧다운, 내년 2월 ‘더 큰 폭풍’ 될듯 [홍길용의 화식열전]

헤럴드경제 홍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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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미국 정치까지 알아야 하나…셧다운, 내년 2월 ‘더 큰 폭풍’ 될듯 [홍길용의 화식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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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오바마케어 보조금 연장 표결 부결되면
중간선거 불리한 민주당 예산안 다시 반대할듯
실적발표·대법원 관세 판결과 셧다운 겹칠수도
확률 매우 높아 글로벌 금융시장 벌써부터 긴장
“어리석은 사람은 일이 이뤄지고 나서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눈치채지 못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일이 이뤄지기 전에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다 (愚者闇成事, 智者睹米形)” – 사기(史記) 조세가(趙世家) 호복기사(胡服騎射)

국내 투자자의 미국 투자가 보편화되면서 이젠 미국의 경제는 물론 정치 상황까지 이해해야하는 시대가 됐다. 역대 최장 41일간 진행된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Shutdown)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11월 10일(현지시간), 미 상원은 2026년 1월 말까지 정부 운영 예산을 지원하는 단기지속 결의안(CR, Continuing Resolution)을 60대 40으로 통과시켰다. 법안 명칭에서 읽히듯이 길어야 80일짜리 ‘미봉책’에 불과하다. 오바마케어(ACA, Affordable Care Act) 보조금 연장이라는 핵심 쟁점이 여전히 불씨로 남아있어, 이르면 연말부터 미국 정치권이 더 크게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셧다운 일단 중단됐지만, 성사되기 어려운 ‘조건부 타협’
이번 CR 가결은 8명의 민주당 및 무소속 의원이 당 지도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찬성표를 던진 결과다. 공화당은 랜드 폴(켄터키) 의원만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이번 CR은 연방정부 지출을 2026년 1월 30일까지만 승인하는 내용이다. 내년 2월 전에 새로운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또다시 셧다운 사태가 재연된다.

애초 민주당이 예산안 통과를 막아선 이유는 올해 연말로 종료되는 ACA 보조금 연장 문제 때문이었다. 셧다운을 종결하기 위해 상원 공화당 지도부는 12월 중순에 ACA 보조금 연장에 대한 표결을 진행하겠다는 약속만 내놨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러한 공화당의 ‘조건부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표결을 하더라도 상원 과반(53석)을 장악한 공화당이 반대하면 오바마케어 보조금 연장은 무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당 일부 상원의원들이 공화당의 제안을 받아들인 배경에는 내년 11월 중간선거에 대한 현실적 고려가 깔려 있다. 셧다운이 장기화될수록 유권자들의 피로감이 누적되고, 이는 재선을 앞둔 의원들에게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경합 지역구 출신 의원들에게는 ‘정부 마비 사태를 방치했다’는 비판이 치명적일 수 있다.

트럼프 게리멘더링 ‘선수’에…민주당, 중간선거 ‘험난한 여정’
미국 의회는 2년마다 상원 3분의 1(33석)과 하원 전체 의석을 새로 선출한다. 현재 공화당은 상원(53석)과 하원(219석) 모두에서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원 선거에 대비해 공화당이 집권한 주들에게 선거구 재조정(mid-decade redistricting)을 주문하고 있다. 공화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다시 그려 의석을 늘리겠다는 일종의 ‘선수(先手)’다. 민주당도 이에 맞서 자신들이 집권한 주에서 선거구 조정을 진행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공화당이 하원에서 4~5석의 추가 우위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5석은 과반을 좌우할 만한 상당한 의석 수다.

민주당은 상원 선거에서도 고전이 예상된다. 내년 11월 상원 선거 대상은 33개 주이며, 현재 의석 분포는 민주당 13석, 공화당 20석이다. 민주당(현재 45석)이 상원 과반(51석)을 차지하려면 자신들의 13석을 모두 방어하면서 동시에 공화당 의석 6석을 빼앗아 와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경합 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은 민주당 의석 중 5~6석, 공화당 의석 중 2~3석이다. 빼앗기는 커녕 지키기도 쉽지 않다.

민주당이 하원이든 상원이든 공화당 우위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여론전이 필요하다. 오바마케어와 셧다운이다.

이러한 구도에서 셧다운은 트럼프 행정부와 여당인 공화당에게 정치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번 셧다운 초기에는 책임론이 민주당(32%)과 공화당(35%) 사이에 비슷하게 분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런데 셧다운이 장기화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의회의 순수 지지율(Net Approval)은 민주당보다 더 크게 하락했다. 특히 무당파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공화당에 대한 책임론(48%)이 민주당(32%)보다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셧다운이 장기화될수록 공화당에게 정치적 부담이 가중되며, 셧다운 종결이 공화당에게도 시급한 정치적 필요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오바마케어 중단 시 2200만 명 직격탄…공화당도 타격
*본 이미지는 인공지능(AI)으로 생성되었습니다

*본 이미지는 인공지능(AI)으로 생성되었습니다



내년 2월 셧다운이 재발하거나 ACA 보조금 연장안이 상원에서 부결될 경우, 그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케어 보조금이 만료되면 약 2200만 명의 보험료가 평균 114% 급등(연간 888달러에서 1904달러로)하고, 약 400만 명은 아예 보험을 잃을 것으로 추산된다. 보험료가 두 배 이상 오르거나 보험 자체를 상실하는 상황이다.

셧다운이든 오바마케어 중단이든, 정치적 책임은 트럼프 행정부와 집권 공화당이 더 민감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ACA 가입자의 57%가 공화당 하원 지역구에 거주하고 있어, 오바마케어가 중단되면 중간선거 판도가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번 양보(?)로 다음에는 더 강하게 셧다운을 무기로 공화당에게 오바마케어 연장을 압박할 명분을 확보했다.

실제로 올해 11월 선거에서 민주당은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뉴욕시장 선거에서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 후보가 승리했고, 뉴저지주에서는 주지사직과 함께 주의회 다수당 지위를 유지했다. 버지니아에서는 애비게일 스팬버거(Abigail Spanberger) 후보가 주지사로 당선되며 주의회 다수석도 확보했다. 이러한 결과는 민주당에게 내년 중간선거에 대한 희망을 주는 동시에, 공화당에게는 경고 신호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관세로 거둬들인 돈을 국민들에게 나눠주겠다고 밝힌 것은 셧다운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민주당으로 넘기려는 속셈으로 볼 여지가 크다.

실적시즌과 겹쳐… ‘이중 리스크’
지금까지 연방 직원 무급휴직을 동반한 주요 셧다운은 1980년 이후 총 11차례 발생했다. 이 가운데 연방정부 운영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장기간(10일 이상) 진행된 경우는 1995~96년(21일), 2013년(16일), 2018~19년(35일), 그리고 이번 2025년(41일) 등 4번에 불과했다. 앞선 3차례 셧다운이 주식시장(S&P 500)에 미친 영향은 대부분 일시적인 단기 변동성 증가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 10월과 11월에 걸친 사상 최장(41일) 셧다운은 미국은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에까지 큰 상처를 남겼다.

내년 2월에 셧다운이 재발한다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고,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셧다운 기간 중에는 연방정부가 발표하는 고용, 소매판매, 주택, 인플레이션 등 핵심 경제지표가 공개되지 않는다. 시장 참여자들에게는 치명적인 정보 공백이다.

특히 2026년 1월 30일 CR 만료 시점은 2025년 4분기 기업 실적 발표 시즌과 정확히 겹친다. 주요 정부 통계가 ‘깜깜이’인 상황에서 기업 실적이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거나 가이던스(향후 실적 추정치)가 하향 조정될 경우, 투자자들은 정치적 불확실성(셧다운 장기화 리스크)과 경제적 불확실성(실적 악화)이 결합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설상가상…트럼프 관세 소송 대법원 판결까지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s)’가 위법인지를 다투는 연방 대법원 판결도 내년 초 나올 가능성이 크다. 대법원의 주요 판결은 보통 회기 종료 시점인 다음 해 6월이나 7월에 나온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이번 사안을 신속처리(fast-track)하기로 결정했다. 11월 5일 구두변론에서 대법원 판사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권한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르면 올 연내, 늦어도 내년 1~2월에 판결이 나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대법원이 1·2심 법원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광범위하게 관세를 부과한 것이 위법이라고 판결하면, 연방정부는 최소 1000억 달러 이상을 기업들에게 환급해야 한다. 관세를 지렛대로 재정을 보강하려던 트럼프 행정부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달러 가치와 금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국 내년 2월은 셧다운 재발 가능성, 오바마케어 보조금 만료, 기업 실적 발표 시즌, 그리고 관세 소송 대법원 판결이라는 네 가지 리스크가 동시에 터질 수 있는 ‘완벽한 폭풍(perfect storm)’의 시점이 될 수 있다. 미국 정치권과 금융시장은 이미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글로벌 금융시장도 셧다운 재개 가능성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셧다운은 미국의 채권시장과 외환시장을 거쳐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11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증시는 셧다운 종료 기대에 강한 상승세로 출발했지만 CR 내용과 민주당의 반대 입장이 알려지면서 오후 들어 상승 분 대부분을 반납했다. 11일 미국 증시도 보합에 그쳤다.

코스피는 올들어 11일까지 71% 이상 오르며 글로벌 증시 상승률 1위를 기록 중이다. 내년 전망도 나쁘지 않다. 5000선을 넘어 6000선도 가능하다는 예상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내년 초 미국 정치 상황에 불확실성이 커진다면 낙관이 쉽지 않다. 12일 코스피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외국인들은 하루만에 순매도로 돌아섰다. 달러인덱스는 11일 하락했다 12일 다시 상승세다. 달러 강세에 대한 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