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10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항소 포기 외압 의혹에 선을 그었다. 의견 표명을 했을 뿐 특정 결론을 지시한 적 없다는 게 정 장관의 주장이다. 우상조 기자 |
노만석(55·사법연수원 29기)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대장동 개발비리 1심 판결에 대한 항소를 포기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이진수(51·29기) 법무부 차관과의 통화였다고 설명한 것으로 11일 파악됐다.
노 대행은 지난 10일 대검찰청 소속 과장들과의 비공개 면담에서 “이진수 차관과 항소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검찰 스스로 항소 포기하는 방안 등 몇 가지 선택지를 제시받고 결정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특히 공판·수사팀의 항소 의견에 대해 이 차관은 법무부 장관에게 수사지휘권 발동을 요청할 수 있다는 점까지 언급해 항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검은 정진우(53·29) 서울중앙지검장의 결정과 공판·수사팀의 의견에 따라 항소할 예정이었으나 법무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란 최후 압박에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 설사 중앙지검이 항소를 강행했더라도 항소 취소를 지휘할 수도 있다.
노 대행은 이 차관이 제시한 선택지들의 내용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고 한다. 다만 이 자리에서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선택을 할까 하는 후회가 남는다”며 항소 포기가 실책이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노 대행은 이날 “용산·법무부와의 관계를 생각해야 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결국 노 대행은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과 법무부의 항소 반대 의견 사이에서 ‘윗선’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공판·수사팀의 의견을 묵살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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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만 표명했다"는 정성호, 차관이 대신 '항소 불허' 전했나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은 대장동 사건 항소장 제출 시한 마지막 날인 지난 7일 이진수 법무부 차관으로부터 항소에 대한 우려를 전달받았다고 내부 구성원들에게 설명했다. 연합뉴스 |
이 차관이 노 대행에게 항소 포기를 압박한 건 지난 7일 수사·공판팀 검사들이 작성한 항소장에 정진우 중앙지검장이 결재한 오후 6시 이후인 오후 8시쯤이라고 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 10일 출근길에 “7일 오후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왔다 갔다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보고가 왔을 때 ‘신중하게 합리적으로 잘 판단했으면 좋겠다’는 정도로 의사 표현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 직후 이 차관이 노 대행에 정 장관의 뜻을 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 장관은 “법무부 장관 취임한 이래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과 사건과 관련해서 통화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하지만 이 차관이 노 대행에게 직접 항소에 대한 우려를 전하고 지휘권 발동까지 거론한 건 사실상 대검을 향한 법무부 차원의 압박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검찰 내부에선 법무차관의 권한과 업무 특성상 이 차관이 노 대행에게 항소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것은 장관이나 대통령실의 지시였을 것이란 의심이 커지고 있다. 장관의 승인 없이 차관이 주요 사건에 대한 항소 여부를 독단적으로 결정해 대검에 통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사퇴할 경우 2012년 이후 13년 만에 검찰 수장이 내부 반발로 자리에서 물러난 사례가 된다. 뉴스1 |
이에 대해 이 차관은 항소 포기와 관련 중앙일보에 “최종 결정은 대검찰청과 중앙지검이 상의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항소장 제출 시한이었던 지난 7일 노 대행과 통화를 한 사실이 있는지를 묻는 말엔 “법무부와 대검의 의사소통 과정에 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이 차관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지자 최근 법무부 소속 검사들에게도 “대검에 항소를 포기하라고 한 적 없다. 항소 포기는 대검이 자체적으로 결정한 사안”이라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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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 요구 직면한 노만석…휴가 내고 거취 고심
노 대행은 검사장·부장검사·평검사에 이르기까지 검찰 내부에서 사퇴 요구가 빗발치자 이날 하루 연차 휴가를 내고 자택에서 칩거하며 거취를 고심했다. 실제 노 대행은 전날 면담 자리에서 사퇴를 요구하는 검사들에게 “하루이틀만 시간을 좀 달라. 정리하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전날 일선 18개 검찰청의 검사장과 20명의 지청장, 평검사인 대검 연구관 12명 등은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해 연쇄적으로 노 대행의 사퇴를 요구했다.
한 대검 간부는 “어제 검사들과 연이어 면담하며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는 걸 느끼셨고, 사의 표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시간을 좀 달라는 의미 자체가 서둘러 정리하고 사퇴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행이 사의를 표명할 경우 2012년 한상대 전 검찰총장 이후 13년 만에 내부 반발로 검찰 수장이 물러나는 결과가 된다. 지난 7월 1일 심우정 전 검찰총장의 사퇴 이후 검찰 조직의 1, 2인자인 검찰총장과 대검 차장검사 자리가 동시에 공석이 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대검 차장검사는 총장이 공석일 때 총장 권한대행을 맡는다. 대검 차장검사까지 공석이 되면 차순길 대검 기획조정부장이 ‘대행의 대행’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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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개입설 확산…국민의힘 “민정·법무부에 대장동 변호인 포진”
노 대행의 칩거에도 불구하고 전날 “용산·법무부와의 관계를 생각해 (항소하지 말라는 의사를) 따라야 했다”고 밝힌 데 따라 용산 개입설의 후폭풍은 이어졌다. 곽규택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의 비서관 4명 중 3명, 법제처장, 법무부 장관 보좌관, 심지어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재명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고 공세를 폈다. 봉욱 민정수석 아래 검찰과 소통 업무를 하는 이태형 민정비서관이 대장동·대북송금 사건 등 변호인 출신이고, 전치영 공직기강비서관(공직선거법), 이장형 법무비서관(대북송금) 등도 다른 사건 변호인 출신임을 지적한 것이다. 조상호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역시 대장동 변호인 출신이다.
이에 대해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이날 SBS 유튜브에 출연해 ‘검찰의 항소 포기를 대통령실이 진짜 몰랐느냐’는 질문에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에게 다 물어봤다”며 “사전에 이걸 계획한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정진우·석경민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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