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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도사’ 돼가는 학생들… AI 시대 못 따라가는 대학들

조선일보 최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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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도사’ 돼가는 학생들… AI 시대 못 따라가는 대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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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커닝이 부른 대학 교육 논란
연세대학교 중간고사에서 인공지능(AI)를 사용한 대규모 부정행위 정황이 발견돼 논란이 일고 있다.사진은 1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정문 모습./뉴스1

연세대학교 중간고사에서 인공지능(AI)를 사용한 대규모 부정행위 정황이 발견돼 논란이 일고 있다.사진은 1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정문 모습./뉴스1


“600명이 온라인으로 시험을 치라는 건 대학이 부정행위를 방조한 것 아닌가.”

“AI 시대, 거대한 사회 실험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최근 연세대와 고려대의 비대면 대규모 강의 중간 고사에서 ‘챗GPT’ 등을 활용한 ‘집단 부정행위’가 적발되면서 ‘AI 시대 대학의 교육 방식’에 대한 갑론을박이 대학가에서 거세지고 있다. 부정행위는 학생의 잘못이 맞지만, AI 시대에 챗GPT 활용을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부터 국내 최고 명문대들이 수백 명 대상 대규모 온라인 강좌를 운영하며 객관식(단답형) 시험을 치르는 것이 시대 흐름에 맞느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문제가 불거진 건 연세대의 ‘자연어 처리(NLP)와 챗GPT’라는 교양 수업의 중간 고사다. 해당 교수는 수강자 600명에게 온라인 사이트에 접속해 중간고사를 치르게 했고, ‘커닝 여부’를 알아볼 수 있게 시험 치는 장면을 스스로 영상으로 찍어 제출하게 했다. 그런데 추후 확인 결과 수십 명이 챗GPT 등 생성형 AI를 이용해 부정행위를 한 정황이 드러났다. 대학 측은 부정행위를 자수한 학생은 해당 시험 성적을 0점 처리하고, 자수하지 않으면 유기 정학 처분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담당 교수는 시험 전에 ‘모든 시험은 전자기기, AI, 책, 자료를 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공지했다.

그래픽=김현국

그래픽=김현국


하지만 대학가에선 이 수업이 생성형 AI의 원리를 다루는 ‘자연어 처리와 챗GPT’ 수업인 것을 감안할 때 AI 사용을 막은 것이 아이러니하다는 반응이 많다. 서울 지역 대학의 한 교육학과 교수는 “요즘 학생들이 AI를 워낙 많이 쓰기 때문에 시험도 단순히 AI만 활용해서 풀 수 없는 문제를 내려고 노력하는 추세”라면서 “특히 AI의 원리를 배우는 수업에서 ‘AI를 쓰지 마라’고 한 것은 놀랍다”고 말했다.

한 사립대 교수는 “온라인 시험 방식은 학생들의 윤리 의식에만 기대기는 힘들다”면서 “오픈북(자료 참고 허용)으로 진행할 게 아니라면, 오프라인에서 시험을 치게 하고 대학 측이 책임지고 감독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수(교육학과)는 “지금 대학생들은 AI를 활용해 과제를 하는 것을 본인이 정보를 입력해 만든 새로운 결과물이라고 인식한다”면서 “교수들도 이런 변화에 맞춰 수업과 시험 방식을 바꿔야 하는데 상당수 대학이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대형 강의 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집단 부정행위’가 발생한 고려대의 ‘고령사회에 대한 다학제적 이해’라는 수업은 수강생이 1400명이 넘는 온라인 공개 수업(MOOC)이었다. 온라인 강의를 시청하고 시험도 객관식 문제를 온라인으로 푸는 방식으로, 교수 12명이 돌아가며 수업한다. 이번 중간고사에서 학생 수백 명이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답을 주고받는 부정행위를 한 것이 발각됐다.

대학가에선 1400명이 넘는 수강생 규모를 두고 “사이버대 얘긴 줄 알았다” “사고력이 중요한 시대에 단순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 방식은 맞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온라인 수업은 코로나 시기 늘어난 후 지금도 상당수 대학에서 운영하고 있다. 대형 강의 역시 늘어나는 추세다. 고려대의 경우 수강자 201명 이상 대형 강의가 2023년 32개에서 2024년 79개로 급증했다. 교육계에선 “이젠 AI가 모든 답을 내놓는 시대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AI의 답변을 놓고 토론할 수 있는 소규모 수업이 필요한데, 국내 대학들은 거꾸로 ‘비용 효율’ 때문에 대형 강의를 늘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챗GPT 로고 이미지./연합뉴스

챗GPT 로고 이미지./연합뉴스


학생들은 ‘AI 도사’가 되어가는데 AI 사용 가이드라인이 없는 대학이 많은 것도 문제로 꼽힌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작년 6월 전국 131개 대학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생성형 AI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는 대학은 30곳(23%)뿐이었다. 연세대는 ‘생성형 AI의 사용 여부 및 허용 범위는 담당 교수의 수업 운영 방침에 따라 결정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서울 사립대의 한 대학원생은 “수업 초 강의 계획서 등에서 AI 사용 범위나 이를 어겼을 때 처벌 규정을 알려준 교수는 없었다”면서 “학생이 질문하면 보통 ‘통째로 베끼지만 마라’고 애매하게 말해줘서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경전 경희대 교수(빅데이터응용학과)는 “이제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AI로 커닝을 하지 마라’고 호소만 할 게 아니라 AI 시대에 걸맞은 커리큘럼과 교육 방식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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