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칩 시대 주역 노리는 ‘AMD’
최중혁 팔로알토캐피탈 대표 |
무엇보다 실적 이후 이어진 대형 파트너십 연쇄 발표가 한몫했다. 오픈AI와의 6GW(기가와트) 규모 7조 달러대 그래픽처리장치(GPU) 공급 계약, 오러클과의 50만 개 MI450 칩 배치, 미국 에너지부의 차세대 슈퍼컴퓨터 구축, IBM과의 양자컴퓨팅 협력 등이 불과 두 달 새 일어났다.
AMD의 부상은 우연으로 볼 수 없다. 명확한 전략,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인공지능(AI) 시대의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이해한 결과다. 이제 AMD는 단순한 반도체 회사가 아닌 글로벌 AI 인프라의 핵심 구축자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반세기 ‘인텔 그림자’에서 출발
AMD는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에서 인텔 출신 엔지니어 8명이 창업한 회사다. 창업자 제리 샌더스가 내건 슬로건은 ‘더 나은 기술, 더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1970년대 IBM PC에 들어가는 중앙처리장치(CPU)를 납품하며 성장했지만, 1990년대 들어 인텔의 시장 장악 이후 점유율이 20% 아래로 추락했다. 2006년 그래픽 반도체 기업 ATI를 54억 달러에 인수하며 GPU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당시 무리수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 |
전환점은 2014년 리사 수 최고경영자(CEO)의 취임이었다. 2012년 입사한 리사 수는 파산 직전이던 회사를 고성능 컴퓨팅(HPC)과 AI 중심 구조로 재편했다. 라이젠 CPU, 에픽 서버 칩, 라데온 GPU를 부활시키며 AMD는 수익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되찾았다. 이후 서버 제조업체인 ZT시스템스 인수, AI 소프트웨어 최적화 기업인 브리움 인수, AI 추론 칩 스타트업 언테더의 AI 핵심 인력 영입을 통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끌어올리며 오늘의 ‘AI 드라이브’를 준비했다.
엔비디아의 벽… 반격의 서막
AMD의 ‘라이젠(Ryzen) AI PRO’ 프로세서 |
AMD의 부상에도 현실은 엄혹하다. AMD와 엔비디아는 AI 붐 이전까지만 해도 매출이 비슷했다. 하지만 2024년 엔비디아의 매출은 1305억 달러(회계연도 기준)로 증가한 반면, AMD는 258억 달러에 머물렀다. AI 관련 매출만 보면 엔비디아가 약 1000억 달러, AMD는 50억 달러로 무려 20배 차이가 난다.
성능 면에서도 격차가 명확하다. AMD의 MI300X는 초당 3000개에 못 미치는 토큰을 처리하는 반면, 엔비디아의 B200은 초당 1만1000개 이상의 토큰을 처리한다. 심지어 엔비디아의 이전 세대 H100조차 MI300X보다 높은 처리량을 보여 준다.
AMD의 ‘인스팅트(Instinct)’ GPU |
더 중요한 것은 총소유비용(TCO)이다. 클라우드 컴퓨팅 제공업체 코어위브의 시간당 대여비용만 보면 B200은 약 18.5달러, MI300X는 8달러로 표면상 MI300X가 저렴해 보인다. 그러나 토큰 100만 개당 처리비용으로 계산하면 MI300X는 0.8달러, B200은 0.3달러다. 성능 대비 비용 효율은 B200이 훨씬 뛰어나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경쟁사 제품을 공짜로 준다고 해도 총소유비용 관점에서 엔비디아의 AI GPU가 더 저렴하다”고 말한 이유다.
시장 성장-공급 병목이 주는 기회
흥미로운 사실은 AI 반도체 시장에 대한 전망이 빠르게 상향 조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3분기 수 CEO는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 시장(TAM)이 2023년 450억 달러에서 연 60% 성장해 2028년 5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1년 전 ‘연 50% 성장, 2028년 4000억 달러’로 예상했던 전망을 대폭 상향한 것이다. 불과 1년 만에 시장 전망을 1000억 달러나 올릴 만큼 AI 반도체 시장의 성장세가 강력하다는 의미다.
추론용 AI 칩의 연평균 성장률이 8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AI 훈련시장뿐 아니라 추론시장도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는 뜻으로, AMD가 진입할 새로운 시장 기회가 존재함을 시사한다.
특히 엔비디아의 공급 병목 현상은 AMD에 의도치 않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엔비디아 제품의 공급이 여전히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객사들은 엔비디아 의존도를 조절하고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생겼다.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대형 하이퍼스케일러들이 AMD 제품 채택을 확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엔비디아가 손님이 북적거리는 대형 푸드코트라면, AMD는 아직 입점 가게 수가 적고 손님도 드문 소규모 푸드코트에 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수장이 업계에서 능력이 입증된 전문가이며, 단골 고객도 존재한다는 점이 AMD를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한다.
투자은행(IB)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JP모건은 “AMD는 AI 하드웨어 밸류체인의 두 번째 축(Second Pole)으로 자리 잡았다”고 했고, 골드만삭스는 “엔비디아 독점을 완화할 유일한 대항마”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역시 “AI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와의 공존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AMD의 강점과 도전 과제
AMD의 강점은 분명하다. 첫째, 포트폴리오의 다양성이다. AMD는 CPU, GPU,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적응형 시스템온칩(SoC) 등 다양한 반도체 제품을 생산해 클라우드 기업들이 여러 워크로드를 처리할 때 통합솔루션을 제공한다.
둘째, 고객 맞춤형 반도체(ASIC) 설계에서 드러나는 우수한 설계 능력이다. AMD의 엔지니어링팀은 인텔의 최고 인재를 대거 영입했다. 셋째,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와의 긴밀한 협력이다.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인 AMD는 TSMC의 최신 공정을 가장 먼저 활용한다.
그러나 도전 과제도 명확하다. 우선 엔비디아와의 경쟁이다. 엔비디아의 GPU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90% 이상이며, 자사 소프트웨어 플렛폼인 쿠다(CUDA) 생태계의 진입 장벽도 높다. 오픈AI, 오러클 등 일부 거대 고객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점도 우려 요소다. 또 하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망의 안정성이다. AMD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부터 HBM을 공급받고 있으나, 수요 폭증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AI의 두 번째 장 열릴까
엔비디아는 여전히 AI 반도체의 제왕이다. 왕관은 무겁고 성벽은 두껍다. 그러나 시장은 다극화로 움직이고, 그 균열의 틈새에서 AMD는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월가는 이제 AMD를 진지하게 주목한다. 50년 이상 인텔의 그림자 속에서 도전자로 살아온 AMD는 이제 AI 시대의 필수 파트너로 거듭나고 있다.
AMD는 개방형 생태계(ROCm), 가격 경쟁력, 안정적 공급이라는 세 가지 무기를 앞세워 ‘탈(脫) 엔비디아’ 흐름의 중심에 서 있다. 수 CEO는 “AI는 특정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AMD는 AI의 민주화를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AI의 첫 페이지는 엔비디아가 썼다. 그러나 두 번째 장의 주인공은 AMD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월가의 시선은 이미 그 ‘다음 장’을 향하고 있다.
필자(최중혁)는 미국 미시간대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은 뒤 삼성SDI America, SK Global Development Advisors 등을 거쳐 미 실리콘밸리 소재의 사모펀드 팔로알토캐피탈(Palo Alto Capital)을 설립해 운용하고 있다. ‘트렌드를 알면 지금 사야 할 미국 주식이 보인다’ ‘2025-2027 앞으로 3년 미국 주식 트렌드’ 등의 저자다.
최중혁 팔로알토캐피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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