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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희의 환경칼럼] ‘1.5도 재앙론’이 안고 있는 문제

조선일보 한삼희 환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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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희의 환경칼럼] ‘1.5도 재앙론’이 안고 있는 문제

서울맑음 / 3.7 °
지구 기온은
이미 1.5도 넘고 있는데
‘1.5도=기후 지옥’이라 하면
대중의 공감 얻을 수 있겠나

2035 NDC가 터 잡고 있는
비현실 가정 되돌아볼 필요
2021년 10월 27일, 스위스 론빙하에서 한 남성이 지구 온난화로 인한 빙하가 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단열 폼으로 덮는 작업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스위스 빙하는 폭설과 서늘한 여름에도 불구하고 부피의 1%를 잃었다./AFP연합뉴스

2021년 10월 27일, 스위스 론빙하에서 한 남성이 지구 온난화로 인한 빙하가 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단열 폼으로 덮는 작업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스위스 빙하는 폭설과 서늘한 여름에도 불구하고 부피의 1%를 잃었다./AFP연합뉴스


정부가 유엔에 제출할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5 NDC)를 2018년 배출량 대비 53~61%로 결정했다. 하한 ‘53’과 상한 ‘61’의 수치는 둘 다 ‘1.5도 억제 목표’에서 나온 것이다. 우선 ‘53’ 숫자는 2018년 유엔 기후과학기구(IPCC)의 ‘1.5도 보고서’에서 출발했다. 보고서는 ‘지구 기온 상승치를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억제하려면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뤄야 한다’고 분석했다. 우리 탄소중립기본법(2021년 제정)은 그 보고서 취지를 받아 ‘1.5도 억제’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명시했다. 그에 따라 온실가스를 2018년부터 2050년 제로까지 일직선으로 줄여가는 경로를 택할 경우 2035년엔 2018년 배출량에서 53%를 감축한 상태여야 하는 것이다. 상한의 ‘61’은 2023년 유엔의 ‘전 지구 이행 중간 점검’에서 나온 값이다. 그때까지의 감축 실적을 감안할 경우 1.5도 억제와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선 2035년까지 2018년 배출에서 61%는 줄여야 한다고 계산했던 것이다.

문제는 지구 기온 1.5도 억제가 물 건너간 목표라는 사실이다. 지난 6월 발표된 기후 과학자 54명의 국제 협동 연구(2024 지구 기후변화 지표)에 따르면 작년 지구 기온은 이미 단년도(單年度) 값으로 1.52도 상승했다. 10년 평균치로도 2030년대 전반기 1.5도를 넘어설 것이 확정적이다. 논문은 또 1.5도 도달까지 남은 ‘탄소 배출 여유량’은 1300억t뿐이라고 했다. 현재의 배출 추세로 3~4년 후면 소진된다. 1.5도 상승은 이미 기후 시스템에 장착된 결과인 것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지난달 28일 인터뷰에서 “1.5도 지구 가열화(global heating)를 막는 데 실패했다”고 했다. 구테흐스는 “인류가 기후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라타 있다”고 해왔다.

지구가 현재 1.5도를 넘었거나 넘는 과정에 있는 만큼 이제부터 정말 ‘기후 지옥’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인가. 미래 기후 상황을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구테흐스가 반복적으로 얘기해온 것처럼 “인류가 존재론적 위협에 직면했다”고 하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기후는 1.5도 절벽에서 갑자기 수직으로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경사면을 따라 서서히 하강하고 있는 쪽에 가깝지 않을까.

1.5도를 기후 붕괴의 임계점으로 너무 낮게 설정한 것은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구 기온이 1.5도를 넘어 1.6도, 1.7도가 된 다음에도 ‘기후 지옥’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기만당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품게 되지는 않을까. 그 단계가 되면 기후 목표치를 1.7도나 1.8도, 또는 2도쯤으로 늦춰 잡아 새로 각오를 다져야 하는 것인가. ‘2도는 정말 마지노선’이라는 주장이 나온다면 사람들은 늑대 소년의 우화를 떠올릴지 모른다. ‘2050 탄소 중립’ 구호는 또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1.5도 이전엔 2도 억제가 일반적으로 거론됐다. 그런데 2015년 파리협정 채택 과정에서 섬나라 국가들과 아프리카 저개발국을 중심으로 “2도는 부자 나라들의 목표일 뿐 가난한 국가들의 안전 범위를 벗어난다”며 1.5도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다분히 정치적 논리였는데, 결국 파리협정은 ‘2도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가능하면 1.5도까지 낮추는 노력을 해본다’는 애매한 목표 설정으로 귀착됐다. 그랬던 것이 2018년 1.5도 상승과 2도 상승의 충격을 비교해보는 IPCC의 ‘1.5도 보고서’가 나오면서 1.5도 목표가 대세가 됐다.

1.5도가 이미 지나가버린 목표라는 사실은 세계의 전문가들이 공유하는 부분이다. 다만 내놓고 말하는 걸 꺼린다. ‘목표치 조정’을 거론하는 순간 ‘패배주의자’라거나 ‘회의주의자’라는 공격 화살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이산화탄소는 축적성을 갖는다. 따라서 어느 단계부터는 기후와 생태계에 되돌리기 힘든 충격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 그게 1.7도일지 또는 2도나 2.5도일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가는 게 맞다. 하지만 이미 깨졌거나 곧 깨질 것이 분명한 1.5도라는 비현실 목표에 집착해 무모한 시나리오를 짜는 것은 정책의 적실성과 신뢰성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빌 게이츠가 얼마 전 ‘기후 전략의 잣대를 기온이 아니라 인간 복지로 설정하자’는 취지의 글을 올려 반향을 일으켰다. 종말론적 기후 전망 때문에 단기적 탄소 감축에만 매몰되면 실제 인류 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 더 효과적인 대책들이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공감이 가는 문제 제기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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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희 환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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