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 기자 |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0일 '대장동 개발비리'에 연루된 민간업자들 1심 판결에 대해 "성공한 재판이었다. 합당한 결과를 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검찰의 항소 포기 사흘 만에 내놓은 공식 입장이다.
정 장관은 이날 오전 출근길에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 앞에서 “정의의 관점이나 형평의 관점, 그리고 수사 과정의 문제점을 봤을 때 이 판결이 항소할 사유가 있냐”며 이같이 말했다. “법원 판결에 대해 법리적인 해석의 관점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수사 결과에 대해 법원에서 제대로 판단했다”는 게 정 장관의 설명이다. 항소 포기 결정에 대한 검찰 내부의 반발이 평검사부터 검사장급으로 확산하며 논란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오히려 항소 포기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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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 포기' 외압 의혹…"지침 준 바 없다"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논란의 핵심은 대검찰청이 수사ㆍ공판팀 검사들과 결재권자인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의 의견을 묵살한 채 항소 포기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법무부ㆍ대통령실 등의 외압이 있었는지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10일 검찰 연구관들과의 비공개 면담에서 항소 포기와 관련 법무부에서 우려를 표했고, 그 결과 법무부와의 관계를 고려해 항소를 포기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연합뉴스 |
정 장관은 항소를 포기하라는 직접적인 지시나 지휘권 발동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법무부 장관에 취임한 이후 구체적 사건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지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면서다. 다만 정 장관은 “검찰 사무에 관한 감독권자이기 때문에 (대장동 사건도) 보고를 받았지만 지침을 준 바는 없다”면서도 “사건의 맥락들을 보며 ‘이런 걸 참조했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의견을 제시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 장관은 대장동 1심 판결에 대한 항소와 관련 총 세 차례의 보고를 받았다. 첫 보고는 지난달 31일 1심 판결 직후였는데, “항소 여부는 알아서 판단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서울중앙지검에서 대검에 항소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전달한 이후 정 장관 역시 같은 내용을 보고받았다. 이에 정 장관은 “신중하게 판단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항소장 제출 기한 마지막 날인 지난 7일 “일선 부서에서 항소하려고 한다”는 대검의 마지막 보고를 받은 정 장관은 재차 “신중하게, 종합적으로 잘 판단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정 장관은 의견을 제시했을 뿐 항소 여부에 대한 직접적인 지시는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대검은 “신중하라”는 의견을 사실상의 지시로 받아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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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만석 "법무부에서 여러 우려 전달"
이와 관련,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은 지난 9일 입장문을 통해 “나의 책임 하에 내린 결정”이라면서도 “법무부의 의견을 참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선 물밑에서 법무부 차원의 항소 포기 압박이 있었거나 최소한 노 대행이 항소에 반대하는 법무부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졌다.
실제 노 대행은 이날 대검 연구관들과 비공개 면담을 갖고 항소 포기 이유에 대해 “법무부에서 항소 포기에 대한 여러 우려를 전달해 왔다. 일선 검사들의 노고를 잘 알고 있지만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노 대행은 “법무부에 항소하겠다는 의사를 보고했지만 (한소 시한일인) 7일 오후 5시까지도 답이 없었다. 법무부에 연락했더니 정 장관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들어갔다며 기다려달라 했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그는 “오후 8시쯤 법무부에서 항소하면 안 된다는 연락이 왔다”고 대검 연구관들에게 항소 불허 의사를 전달받았다는 사실을 설명했다고 한다. 특히 그는 “용산하고 법무부는 항상 염두에 두고 생각해야 한다”는 언급도 했다. 다만 그는 “이 일(항소 포기)에 대해서 그런 건 아니고 모든 일에서 그래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도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 장관은 이날 대장동 사건 자체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그는 “정상적이지 않은 사건이고 정치적 사건”이라며 “수사 과정의 협박 증언까지 나오며 (항소하면) 오히려 더 정치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이른바 ‘대장동 패밀리’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남욱 변호사가 지난 7일 “(검사가) 배를 가르겠다고 말했다. 그렇게까지 얘기를 들으면 구속된 상태에서 검사들 수사 방향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고 법정에서 증언한 내용을 토대로 검사의 강압 수사 의혹을 문제삼은 것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항소포기가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지적에 대해 "무슨 관계가 있냐"고 말했다. 연합뉴스 |
이와 관련, 정 장관은 “당사자 중 한 사람이 법원에서 아주 엄청난 폭로를 했다. 수사 과정의 문제점을 좀 들여다봐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감찰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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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방탄' 지적에 "대통령과 무슨 상관"
정 장관은 항소 포기가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지적에 대해선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은 2023년 3월 이 대통령이 대장동 개발 특혜의 최종 책임자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 등을 적용해 기소했다.
하지만 정 장관은 오히려 “이 사건과 이재명 대통령이 무슨 관계가 있냐”며 연관성을 부인했다. 이어 “법원이 대통령과 관련해서 그 어떤 판결 이유에서도 설시한 바가 없다”며 “만약 대통령을 고려했다면 또 다른 판단과 다른 의견을 낼 수 있었겠지만, 법무부 장관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말한 의견”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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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억원 받지 못하게 됐다는 건 사실과 달라"
정 장관은 검찰의 항소 포기로 대장동 일당의 부당이득 7814억원을 환수할 방법이 사라졌다는 지적에 대해선 “이미 민사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관련한 입증을 제대로 하면 돈을 받을 수 있다”며 “7000억원을 받지 못하게 됐다는 건 전혀 사실과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역시 성남도시개발공사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민사 소송이 시작된 것은 사실이지만, “관련 형사사건(대장동 개발 특혜·비리) 결과 대기”를 이유로 지난해 5월 이후 재판 절차가 중단된 상태다.
정진우·김성진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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