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장마가 계속되고 있는 지난달 16일 경북 상주시 한 논의 벼가 비바람에 누운 가운데 벼 이삭에서 싹이 트는 수발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연합뉴스 |
박진도 | 충남대 명예교수·국민총행복전환포럼 이사장
정부는 2028년부터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을 본격 시행하기 위해 내년부터 2년간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농어촌 소멸과 지역 간 격차 심화를 완화하고 균형발전의 마중물이 되길 기대하지만, 시범 단계부터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며 본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우선, 시범사업을 공모 방식으로 추진하면서 지역 간 불필요한 경쟁과 갈등이 발생했다. 자치단체장의 정치적 성향이나 재정 여건에 따라 온도 차가 컸고, 69개 대상 군 가운데 20개 군은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선정된 7개 군을 제외한 지역의 반발도 적지 않다. 본사업을 전제로 한 시범사업이라면 단순 추첨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굳이 공모를 택해 농촌 사회의 혼란을 키운 것은 중앙 부처의 권위적 관행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업 설계다. 이 사업은 군 단위로 해당 군의 읍·면 주민 모두에게 월 15만원을 지급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대상 지역을 인구감소지역 89개 시·군·구 중 69개 군으로 한정하면서, 54개 도농 통합시의 농촌 지역이 전부 배제됐다. 예컨대 인구 6만6000명의 홍천군은 읍·면 모두 포함되는 반면, 삼척시는 인구가 6만932명으로 홍천군보다 적은데 ‘시’라는 이유로 모든 주민이 배제된다. 그 결과 홍천읍 주민 3만3807명은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는데, 삼척시의 노곡·가곡·신기면은 각 인구가 700명도 안 되지만 ‘시’라는 이유로 빠진다. 행정안전부의 인구감소지역에 포함되지 않은 54개 도농통합시(전남 나주·광양시 등)의 농촌 지역도 마찬가지다. 이런 불합리한 기준은 정책 취지에 맞지 않으며, 본사업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제외 지역의 반발은 불가피하다.
재정 구조도 비현실적이다. 사업비는 중앙정부 40%, 광역단체와 기초자치단체가 각각 30%씩 부담하게 되어 있으나, 시범 단계에서는 광역도 중 경기도만이 부담 의사를 밝혔다. 전남도(16개 군)나 경북도(10개 군) 등 광역도가 본사업에서 10여개 군을 지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산이 마련되더라도 도내 시 지역의 반발이 뒤따를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농어촌 기본소득으로 농촌 사회 전체가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도올 김용옥 선생과 나는 2021년 10월 ‘농산어촌 개벽대행진’ 이후 인구감소가 심각한, 인구 3000명 이하 지역 모든 주민에게 ‘농어촌 주민 수당’(국토·환경·문화· 지역 지킴이 수당) 형태로 지급하고, 점차 인구 5000명 이하로 확대할 것을 제안해 왔다. 같은 농어촌 지역이라 해도 읍과 면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읍 지역은 도시적 생활 기반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 생활에 큰 불편이 없지만, 면 지역은 인구 감소로 공동체조차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생활 기반이 열악하다. 인구가 3000명 이하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육, 의료, 쇼핑, 교통 등 최소한의 사회적 서비스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 군 단위 지급은 도농 통합시의 농촌 지역을 배제하고, 면 단위 지급은 읍 주민이 제외되는 문제가 있으나, 한정된 예산 속에서는 ‘소멸 위기 대응’이라는 목적에 맞춰 가장 취약한 면 지역부터 시작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은 지방에 도로를 내는 보조사업이 아니다. 이 사업은 단순한 복지사업이 아니라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이라는 국가적 과제에 대응하는 국책사업이다. 그럼에도 지방비 매칭을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 대부분의 광역도 재정자립도는 20%대, 군 지역은 10% 안팎이다. 지역 절반은 자체 재원으로는 공무원 인건비조차 충당하기 어렵다. 지방비라 해도 결국 지방교부세로 충당되는 만큼, 지방소멸대응기금과 지역상생기금을 활용하고 낭비적 국고 보조 사업 조정 등을 하면 중앙정부가 전액 국비로 전환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같은 지역 내 읍·면 간 형평성 문제도 완화할 수 있다. 면 지역의 기본소득은 읍 지역의 소비로 이어져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은 충분한 공론화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어 왔다. 제한된 지역에 선별적으로 지급하면서 ‘농어촌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이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지급 대상, 지방비 부담, 지급 금액과 방식 등 쟁점이 많다. 지금이라도 국무총리 소속 ‘농어촌 주민수당 위원회’를 설치해 전면 재설계를 추진해야 한다. 이 사업은 농촌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국가 균형발전의 향방을 좌우할 중대한 정책이다. 성급한 추진보다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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