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5일 경남 김해시가 최근 화포천습지 과학관 개관식을 하면서 방사한 황새 중 1마리가 폐사해 논란이 인다. 사진은 행사 당시 황새들이 보관돼 있던 케이스. 연합뉴스 |
10월 15일, 김해시 화포천습지과학관 개관식에서 천연기념물 황새 세 마리가 방사됐다. 그중 한 마리가 케이지 문이 열리자마자 날갯짓도 못 한 채 고꾸라졌고 결국 폐사했다. 현장은 잔칫날 분위기였지만, 강한 햇볕에 참석자들에게는 우산이 제공될 정도로 뜨거운 날이었다. 반면 케이지 위에는 직사광선을 가릴 차양막 하나 없었다. 인간들을 위해 나온 황새들은 약 1시간 40분 동안 뜨거운 햇빛 아래 그대로 갇혀 있었다. 현장에서는 아무도 이상을 감지하지 못했다.
방송 화면에는 관계자가 건강 이상 증세를 보이는 황새의 부리를 잡아 케이지 밖으로 억지로 끌어내는 참담한 장면도 그대로 잡혔다. 힘없이 늘어진 생명을 억지로 꺼내는 그 모습은 잔인하기까지 했으며, 국민적으로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돌발적 사고가 아니다. 예견 가능한 명백한 인재(人災)다.
조류는 체온 조절 능력이 제한적이어서 고온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면 체온이 급상승하고 탈수와 순환기 장애가 일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수의사로부터 신체검사나 최소한의 조치(체온 측정, 호흡수 확인, 물 공급, 냉각 조치)가 없었다면 이는 명백한 방치다.
법적으로도 이런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동물보호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동물을 혹서에 방치하거나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한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야생동물에게 물이나 먹이를 주지 않고 방치하는 행위를 학대로 규정한다. 직접 폭력을 가하지 않아도 고통을 예견하면서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바로 법이 금지한 학대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수의학계의 침묵이다. 대한수의사회를 비롯한 전국 수의과대학 중 그 어느 곳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공식적 문제 제기나 윤리적, 비판적 논평조차 나오지 않았다. 생명 윤리의 최전선에 있어야 할 전문가들이 눈치 보고 침묵한다면 부검조차 형식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 무너질 것이다. 수의학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생명의 고통을 감지하고 예방하는 ‘생명 존중’의 감수성에 기반한다. 수의사들의 침묵은 또 다른 방치이며, 학대의 연장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책임 떠넘기기가 아니라 수의학적 관점에서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는 일이다. 황새가 케이지에 갇혀 있는 시간 동안 어떤 진료 행위와 관찰이 이루어졌는지, 관련 기록부터 먼저 공개해야 객관적 상황 판단이 가능하다. 행정 보고서 몇 장으로 사건을 덮는다면 다른 동물들도 같은 이유로 쓰러질 것이다. 부검의 목적은 책임과 처벌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는 행정 체계를 복원하는 데 있다. 황새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수의학의 기본인 ‘생명 존중’의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에 사는 동물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