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왼쪽)과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 /뉴스1 |
검찰은 사건 수사 검사와 공판(재판) 담당 검사의 의견을 우선시해 기소와 항소를 결정한다. 지휘부 판단을 받는 절차가 있지만 지시가 부당하거나 불법 소지가 있으면 담당 검사가 기소나 항소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대장동 일당에 대한 항소 포기 과정에선 어떤 검사도 ‘내 책임으로 항소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대장동 사건을 수사한 검사는 검찰 내부 글에서 “공판팀이 만장일치로 항소 제기를 결정했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장과 4차장 검사도 대검에 항소 승인을 요청했다. 그런데 대검에서 허락하지 않자 중앙지검 지도부도 ‘어쩔 수 없다’며 입장을 바꿨다고 한다. 항소장 접수 마감 직전까지 공판 검사가 검찰 직원들과 법원에서 대기하고 있었지만 지휘부를 포함한 누구도 항소할 용기를 내지 않은 것이다.
대장동 항소 관련 지휘부는 검찰총장 대행, 대검 반부패부장, 서울중앙지검장, 4차장 등이다. 전부 ‘항소하지 말자’고 한 것은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을 건드렸다가 불이익을 당할까 봐 권력 눈치를 살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 대장동 수사 검사들은 정권 교체 후 좌천돼 항소 권한이 없다.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지만 공판 검사는 지휘부가 반대해도 항소장을 접수할 수 있다. 내부 징계 대상은 되겠지만 불법 행위는 아니다. ‘항소 포기’ 하루 만에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이 사표를 냈다. 항소장에 도장을 찍고 사표를 던져야 책임을 지는 모습인데 중앙지검장은 그 반대로 했다.
문재인 정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은 당시 청와대 핵심 인사들의 기소를 놓고 중앙지검장과 충돌했다. 그러자 담당 차장 검사가 전결로 기소를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검찰이 청와대 반대에도 대통령 인척을 구속해 기소하기도 했다. 과거 검찰은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고 실제 그런 행태도 보였다. 그러나 권력이 연루된 사건에 자리를 걸고 기소와 항소를 밀어붙인 검사도 적지 않았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페이스북에 이번 사태를 “검찰 자살”이라고 규정하며 “다 끝나고 나서 징징대는 현 담당 검사들도 처벌받아야 한다”고 했다. 부당한 지시를 받고도 순응하는 검사들만 남았다면 그런 검찰 조직은 없어져도 아쉬울 게 없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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