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내 잠을 맡기고 떠맡는 일
불안을 껴안아 함께 잠재우는 일
영혼에서 영혼으로 이어지는 잠처럼
사랑하는 두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잠들까요. 군인처럼 둘 다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워 잠들지는 않을 것 같네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팔베개를 해 주는 모습이라거나, 두 사람이 마주 본 채 꼭 끌어안고 있다거나…… 이 시에 등장하는 것처럼 등 돌려 누운 한 사람을 다른 사람이 마찬가지로 등을 세워 꼭 끌어안고 있다거나 하지 않을까요.
사랑을 어떤 모양의 글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저는 이 시 ‘??’를 보여줄 용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지막이 낭독도 해줄 수 있겠죠. 사랑은 사람과 사람이 함께 같은 잠자리에서 자는 모습이에요. 한 사람만 한 사람을 안아주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안겨주고 안아주는 거예요, 라고.
연인이 보여주는 대부분의 모습을 귀여워하고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모습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역시 잠든 모습을 골라야겠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취약한 상태로 세상 모르고 꿈을 꾸고 있나 싶고, 그만큼 나를 믿나 나를 편안해하나 내심 뿌듯해지기까지 하거든요. 마찬가지로 내 잠든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가 없는가, 내 잠을 맡길 수 있는가 없는가가 연인을 사랑하는가 아주 많이 사랑하는가, 우리 사이가 더 갈 수 있겠는가 아닌가 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차가운 빗소리에 뼛속이 젖는” 그런 추운 밤에 연인의 품에서 잠든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시간인 줄,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점점 더 알아가게 됩니다. 일찍이 저는 잠을 무시하는 말을 들으며 자라온 사람이거든요. 잠은 죽어서 자라, 깨어서 많은 일을 해라….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저 역시, 한때 스스로 굉장히 똑똑하고, 세상이 쉽고, 남의 속이 훤히 보인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로 똑똑했다기보다 굉장히 어리석고, 세상이 어려운 것을 보고도 못 볼 정도로 눈이 밝지 못했고, 남이 보여준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있던 어린애였지요. 몸만 컸지, 법적으로만 성인이었지, 사실은 미취학 아동만큼이나 어리숙한 상태였던 겁니다. 저 시를 놓고 보니 참 더 그렇습니다. 남들보다 뭐든 다 늦게 배우긴 했지만, 사랑마저 좀 늦게 배웠거든요. 그래서 그때 했던 사랑은 이 시의 사랑처럼 고요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나랑 만나는데 잠이 오니? 너 잠이 와? 이런 상태였죠. 자는 시간 아까워! 더 많이 놀자! 더 많이 말하자! 더 많이 사랑하자! 하고. “영혼을 포개 안고” 잠드는 시간이 얼마나 중한지 모르고요.
이제는 잠든 연인을 다정하게 지켜볼 수 있게 됐으니, 그때보다 조금 나아졌나 싶습니다. 하나 달라지지 않은 점은 사랑을 하면, 굉장히 가난한 느낌이 든다는 거예요. 뭔가 더 주고 싶고 더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늘 텅텅 빈 상자 같은 느낌이에요. 나 스스로가 모자란 듯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처한 상황 혹은 연인과 내가 함께 맞이한 순간이 우리의 사랑을 보살피기에 더없이 허약한 느낌이 들기도 하죠. 쓸모와 용도를 찾겠다며 일단 쌓아둔 빈 상자들이 비를 맞아 뭉개지고 있는 것처럼요. 비를 맞아 뭉개지고 있으니 서로 더 질척질척 엉겨 붙기는 하는 것 같은데 이게 우리가 바라던 그런 사랑은 아닌 것도 같고요. 지금 이거 맞나? 싶은 순간들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아파서 앓아누워 있을 때, 사실은 사랑하는 사람의 품마저 거추장스럽고 피곤하게 느껴지는 아픈 날, 그래도 혼자 있기는 싫은 날, 어쩐지 서러운 날, 누군가 날 안아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누군가의 품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좀 낫지요. 그러고 있노라면, 가난해서 늘 물음표투성이인 제 사랑이 아주 못난 사랑은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사랑은 느낌표보다 물음표가 어울리는 것이 맞겠다 싶어져요. 어디로 가야 하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알 수 없어 불안한 한 영혼을 마찬가지로 나도 어디로 가야 할까? 어떻게 살면 좋을지? 알 수 없어 불안한 한 영혼이 끌어안고 있는 거예요. 모로 누운 두 사람처럼 물음표가 두 개 겹쳐져 있는 모습을 보면 이제 이 시가 떠오르시면 좋겠습니다.
실은 이 시에 영향을 받아 쓴 시가 한 편 있습니다. 첫 시집에 실린 시인데, “춤추는 이를 사랑하려면 함께 춤 춰야겠지/ 영혼으로”(‘새집’)로 시작되는 시입니다. 리영 리의 시에서 최정례의 시로 그리고 김복희의 시로, 연인에서 연인에게로 영혼에서 영혼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잠이 이어집니다.
김복희 시인 l 2015년 등단. 시집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 ‘희망은 사랑을 한다’ ‘스미기에 좋지’ ‘보조 영혼’ 등이 있다. 2024년 현대문학상 수상.
이제 그 무엇도 아닌 ‘사랑’을 들을 차례. 작가들이 숨어 애송하는 연애시의 내막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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