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파前 철근 절단 ‘취약화 작업’ 도중 붕괴
상부부터 잘라야 하는데 하부 작업한 흔적
보일러타워, 건축물 분류안돼 관리 무풍지대
상부부터 잘라야 하는데 하부 작업한 흔적
보일러타워, 건축물 분류안돼 관리 무풍지대
7일 울산 남구 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매몰자 수색 및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2025.11.7/뉴스1 |
“곧 구조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조금만 힘내세요.”
6일 오후 3시 30분경 울산 남구 한국동서발전 내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 현장. 구조대원들은 붕괴 사고가 발생한 지 1시간 20분 만에 구조물에 팔이 낀 채 발견된 김모 씨(44)를 구조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붕괴 위험 때문에 5인 1조로 현장에 투입된 구조대는 2차 붕괴 사고를 막기 위해 일일이 손으로 거미줄 처럼 얼키고 설킨 구조물을 들어올리며 구조를 시도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바닥의 흙과 자갈을 손으로 파내며 김 씨와 계속 대화하며 의식을 잃지 않게끔 노력했다.
김 씨에게 진통제와 물도 건네가며 13시간 동안 사투를 벌였지면 새벽이 되면서 기온이 낮아지자 김 씨의 의식이 흐려져갔다. 결국 7일 오전 4시경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의료진은 끝내 53분 뒤 사망 판정을 내려야했다. 소방 관계자는 “김 씨는 의식을 잃으려고 할때마다 살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어떻게든 버텨내려 했다”며 “결국 눈 앞에서 구조자를 살려내지 못했다”며 황망해했다.
● ‘거미줄’ 철근 더미 손으로 파헤쳐가며 수색
6일 오후 울산 남구 용잠로 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에서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가 발생해 소방 당국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2025.11.6/뉴스1 |
잘게 부서진 유리섬유가 바람에 날려 노란 가루가 뿌옇게 흩날리는 사고 현장에선 유압 절단기가 금속 구조물을 자르는 소리와 수색을 위해 상공을 날아다니는 드론 소리가 울려퍼졌다. 2차 붕괴 위험 탓에 대형 중장비 대신 일일이 수작업으로 구조해야 하다보니 속도가 붙지 않으면서 매몰자를 찾는 데 난항을 겪었다. 여전히 실종자 2명의 위치가 파악되지 않은 이날 시신만 2구 수습됐다. 나머지 1명은 현장 의료진이 사망 판정을 내렸지만 접근이 어려워 아직 수습하지 못했고, 결국 이날까지 사망자만 3명으로 집계됐다. 소방당국은 실종자가 살아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구조 골든타임인 사고 발생 72시간이 경과되는 9일 오후 2시경까지 수색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소방당국은 현장 브리핑에서 “철근, 돌, 다른 물건들을 헤쳐서 매몰자를 구조해야 해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밝혔다. 구조대는 음향과 매몰자 탐지기, 열화상 카메라 등 탐지 장비로 매몰자 위치를 확인한 뒤 철근과 철 구조물을 자르고 땅을 파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구조를 시도하고 있다. 붕괴 위험 탓에 구조대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수십 명을 동시에 투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사고가 난 보일러 타워 5호기 양 옆에 있는 4호기와 6호기도 붕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철거공사 담당인 코리아카코는 지난달 26일 사고가 발생한 화력발전소 인근 부지에서 시험 발파를 진행했다. 코리아카코 관계자는 7일 통화에서 “하나당 1kg짜리 6개로 (시험 발파)했다”며 “시험 발파 작업은 해체 계획서대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업체 측은 아직 정확한 붕괴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 “하부 약해진 건물 올라가 상부 작업”
7일 울산 발전소 붕괴현장 드론 수색영상. 울산소방본부 제공 |
이번 사고는 발파 전 취약화 작업을 하던 도중 발생했는데, 전문가들은 사고 원인으로 사전 작업이 부실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취약화 작업은 철거 전 구조물이 쉽게 무너지게끔 지지대 역할을 하는 철근 등을 미리 잘라놓는 공정을 말한다. 통상적으로 안전을 위해선 상부에 먼저 취약화 작업을 진행하고 하부 작업에 들어가지만 이번 현장의 경우 하부 먼저 취약화 작업이 진행됐을 수 있단 설명이다. 최명기 서울디지털대 건설시스템공학과 객원교수는 “현장 사진을 보면 하부에 취약화 작업을 진행한 흔적이 보인다”며 “작업 순서가 틀려 위험해진 건물에서 공사가 진행됐다면 문제”라고 분석했다. 손기영 울산대 건축공학과 교수도 “아직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지만 구조물 하중을 분산하는 사전 작업 자체가 덜 이뤄진 게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보일러 타워가 일반 건축물이 아닌 공작물로 분류돼 사실상 관리 사각지대였던 점도 드러나 이번 사고가 ‘인재’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축물 관리법상 건물을 철거·해체할 땐 지방자치단체에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공작물은 관련 법령이 없어 허가 의무가 없다. 공작물은 땅 위에 세워졌지만 사람이 상시 머물수 없는 인공 구조물을 의미한다. 이번 사고로 무너진 보일러 건물을 포함해 댐, 담장, 광고판 등이 공작물에 해당된다. 사고 지역을 관할하는 울산 남구 관계자는 “해당 건물이 공작물이다보니 철거 해체 전 허가를 받아야 하는 관련 법령이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고 원인 등을 파악하기 위해 수사에 착수했다. 울산경찰청은 사고와 관련해 형사기동대장을 팀장으로 과학수사계, 디지털포렌식계 등 전문 인력을 포함해 70명 규모의 수사전담팀을 구성했다. 고용노동부 등 관계기관과 협업도 진행한다. 전담팀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염두에 두고 철거작업을 맡았던 원·하청업체 간 계약 관계, 구체적인 작업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다.
울산=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울산=최창환 기자 oldbay77@donga.com
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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